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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Mar 02. 2024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feat. 조앤 롤링의 하버드대 축사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작년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하고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아침 출근길마다 보던 광고 문구다. 이 질문은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커다랗게 쓰인 글씨가 머릿속에 맴돌며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냐고 묻는데, 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영화에서 처럼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불기 몇 초 전, 말도 안 되는 역전 슛이 들어가고 모두가 질거라 생각했던 약체팀이 최강팀을 꺾는 그런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선수들 뿐만 아니라 그 광경을 목격한 관중들과 라디오로 전해 듣던 이들마저 미친 듯이 환호하며 아드레날린을 뿜어 내는 그런 순간?


 내게는 그런 류의 순간은 없었다. 국가 대표는 물론이고 학창 시절 학교를 대표해 뭔가를 해본 적도 없으니 말이다. 물론 오래전 김연아 선수의 경기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대리만족과 국부심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나의 영광의 순간은 아니지 않은가. 학창 시절에는 시험을 잘 보거나, 노력해서 준비한 무언가가 좋은 결실을 냈을 때, 잠시나마 영광 비스무리한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취업 뽀개기를 마지막으로 이런 성취감의 기억조차 멀어져 갔다. '당신이 가장 성취감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이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유독 '영광의 순간'이란 말 앞에 위축이 된 건 그 단어 자체가 주는 모호성 때문이 아닐까도 싶어 큰 애 책상에 꽂혀있는 두꺼운 국어사전을 뒤져 봤다.


영광(榮光) : 자랑스럽고 빛나는 명예  <상을 받는다면 더없는 영광입니다>

영광스럽다 : 아주 자랑스럽다.  <네가 학교 대표로 미술 대회에 나가게 되다니 정말 영광스러워>


 내가 헷갈려했던 성취감의 순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미심쩍어 옥스퍼드 영영사전을 찾아봤다.


Glory :  great success that brings somebody praise and honour and makes them famous  

   (영광 : 칭송과 명예를 가져다주며 누군가를 유명하게 만드는 대단한 성공)

   <He came home a rich man, covered in glory.> (그는 영광에 뒤덮인 채(?) 부자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칭송과 명예를 가져다주며, 누군가를 유명하게 만드는 대단한 성공이 영광이라니... 영광의 순간을 묻는 질문 앞에 말문이 막혔던 내가 순간 납득이 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의 인터뷰 질문도 아니고, 범인에게 영광의 순간을 묻는 것이 이토록 부적절한 일이라는 것도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큰 애가 네 살 무렵, 근처 키즈카페를 갔다가 들른 모교에서의 경험이 문득 떠올랐다. 유모차를 끌고 오랜만에 방문한 고등학교는 주말의 한산함과 아련한 추억이 버무려져 퍽 운치 있었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혼자 교정을 어슬렁 거리는데, 건물 외벽에 걸린 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Dream high, Fly high!' (크게 꿈꾸고, 높이 날아라!) 공부하기에 바빴던 그 시절에 이런 문구를 보았다면 나는 별생각 없이 보고 지나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며 학구열을 불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키즈카페에서 아이와 한바탕 각축전을 벌인 뒤 이 문구를 마주하니, 요상한 이질감에 나는 멈춰 섰다. 저 문구가 당연했던 세계에서 내가 겉도는 것인지, 나의 세계와 동떨어진 듯한 저 문구가 현실을 겉도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 가능한 높은 자리에 올라,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력을 펼치는 사람이 되어라.'가 그 플래카드의 속 뜻이자 대다수의 K 학생, 그것도 나름 상위권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열공의 이유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써낸 장래희망들은 이 말을 꽤 닮아 있었다. 국가고시에 통과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갖거나, 고위 정치 관료나 기업의 전문 경영인이 되는 뭐 그런 것. 이 학생들에게 영광의 순간이 언제일 것 같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사법시험에 패스한 때나, 의대 진학에 성공한 때, 기업에서 초고속 승진을 해 임원이 되는 순간을 말하지 않을까? 으레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걸 가문의 영광으로 쳐주곤 했으니.


 어제 남편의 석사학위 졸업식을 참석하며 나는 다시금 영광의 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캠퍼스를 가득 메운 상기된 얼굴들과 축하의 꽃다발들. 시댁 쪽 식구들이 다 와서 남편을 축하해주는 걸 보니, 남편의 Y대 석사학위 취득은 가문의 영광이 되는 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해리포터에 나올법한 가운을 입은 교수님이 졸업생들에게 졸업모자를 씌워 주고, 학과장님은 사회에 나가서도 이 대학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생활하라는 축사를 건넨다. 졸업한 지가 하도 오래되어 잊고 있었는데, 축사를 들으며 나는 새로이 떠올리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의 입학과 졸업이 자부심과 긍지가 되는 나라라는 것을. 열공해서 SKY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대다수 젊은이들의 공통된 꿈이자 대다수 부모들의 열망이라는 것을. 내가 그것에 관심을 두고 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거나 사라지는 무언가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그런 류의 영광의 순간이 영 탐탁지 않다. 어쩌면 내가 Y대 모 학과장님의 졸업 축사보다 조앤 롤링의 하버드대 졸업 축사에 더 공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연설은 통으로 옮겨 놓기엔 꽤 긴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통으로 옮겨놓고 외우고 싶을 정도로 울림이 있다.



 사실, 저는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졸업하던 당시에 제가 알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졸업 이후 지금까지 21년 동안 제가 깨달은 소중한 교훈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답을 얻었습니다. 우선 여러분의 학문적 성취를 기념하는 이 감격스러운 날, 저는 실패하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로 이제 '현실 세계의 삶'에 막 발을 들여놓게 된 여러분께 저는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실적인 삶을 시작하는데 상상력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이 모순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마흔둘이 된 지금, 지금 나이의 절반인 스물한 살 졸업식 당시를 되돌아보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21년 전 저는 제가 품고 있는 야망과 제 가족들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소설을 쓰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신 제 부모님께서는 제가 갖고 있는 지나친 상상력은 흥미롭고 독특하기는 하나, 주택융자금을 갚고 노후 연금을 모으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여기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직업학교에 가기를 원하셨고, 저는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저는 현대 언어를 전공한다는 절충안을 찾았는데, 이제 돌이켜보니 그 절충안은 부모님이나 저나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해결책이었습니다. 부모님께서 학교에 저를 데려다주시고 자동차가 학교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기가 무섭게 저는 독일어를 포기하고 고전 문학부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부모님께 고전을 공부한다고 말씀드린 기억은 없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아마 제 졸업식 날 그 사실을 알게 되셨을 겁니다. 부모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 가운데 대기업 중역이 되는 데 있어서 그리스 신화보다 더 무용지물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부모님을 조금도 원망하거나 비난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된 것이 부모님 탓이라고 원망하는 태도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버려야 합니다.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스스로 잡는 순간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자신이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본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 부모님께서 는 제가 가난으로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셨을 뿐인데, 제가 부모님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도 저도 가난을 겪었고, 가난이라는 것이 그리 달가운 경험은 아니라는 데에 저도 동의하는 바이니까요. 가난하면 삶이 두렵고 버거워지며 때때로 심한 우울증을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헤어 나오는 것, 그것은 진정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이지만 가난 자체를 낭만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가 여러분 나이에 가장 두려워한 것은 가난이 아리나 실패였습니다. 여러분 나이에 저는 학교 강의는 거의 출석하지 않고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소설을 썼습니다. 저는 학교 공부를 등한시했지만 시험을 통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고, 몇 년 동안 저와 제 친구들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을 성공의 척도로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처럼 젊고 재능 있고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어려움이나 가슴 아픈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제가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재능과 지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으론부터는 자유롭지 않으니까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아무 어려움 없이 순탄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버드를 졸업한다는 사실에서 저는 여러분이 실패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하는 욕망 못지않게 여러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요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최고의 평판을 지닌 대학에서 공부한 여러분이 실패라고 여기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성공이라고 여길지도 모릅니다.


 결국 무엇이 실패인지는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실패가 무엇인지를 규정짓지 않으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성공과 실패의 기준에 좌지우지됩니다. 졸업한 후 겨우 7년 만에 제 삶은 어느 모로 보아도 대단히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결혼 생활은 얼마 못 가서 파탄이 났고 저는 졸지에 직장도 없이 자식을 키우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숙자를 제외하고는 현대 영국사회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부모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셨던 것, 제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고, 통상적인 기준에 비추어볼 때 제 삶은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의 삶보다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실패가 달가운 경험이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시 네 삶은 너무나도 암울했고, 해리포터 성공 후 언론에서 제 삶을 일컬어 동화 같은 인생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런 동화 같은 인생에 제게 찾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어두운 삶이 계속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터널 끝에서 빛을 보게 되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일 뿐 현실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왜 실패를 하면 얻는 것에 대해 말하려 하느냐고 물으시겠죠? 바로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벗겨내 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실패한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제가 가진 모든 열정을 제게 가장 소중한 한 가지에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소설 이외에 다른 것에 성공했었다면 제가 진심으로 원했던 일에서 성공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제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마침내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런 엄청난 실패를 겪고도 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딸이 곁에 있었고, 제게는 낡은 타자기 한 대와 원대한 꿈도 있었습니다. 제가 추락할 때 부딪혔던 딱딱한 바닥을 주춧돌 삼아 그 위에 제 삶을 다시 튼튼하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겪은 정도로 엄청난 실패를 겪게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누구나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극도로 몸을 사리고 조심하면 실패를 면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 없어도 삶 자체가 실패입니다. 실패함으로써 저는 시험을 통과해서는 얻을 수 없었던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저는 저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실패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제가 의지가 강한 사람이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보석보다도 소중한 친구들이 제 곁에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실패를 겪고 나서 더 강인하고 현명해지면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우리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끈끈한 지는 시련을 겪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를 깨닫게 되는 것은 진정 소중한 선물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저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그것은 제가 얻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도 가치 있는 소득이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스물한 살이던 때로 되돌아간다면 저는 젊은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삶이란 무엇을 얻고 성취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여러분이 갖춘 자격요건, 화려한 이력서가 여러분의 인생은 아닙니다. 제 연배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앞으로 그런 사람들을 수 없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삶은 힘들고 복잡하고 우리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겸허히 받아들이면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제가 상상력의 중요성을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야기로 삼은 이유는 제가 삶을 다시 추스르는 데 상상력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잠들기 전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시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는 주장은 제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만, 제가 경험한 상상력의 가치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상상력이 갖는 가치입니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으로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상상력은 모든 발명과 혁신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상상력의 가장 큰 위력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입니다.


 제 삶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경험 가운데 하나는 제가 해리포터를 쓰기 전에 한 경험입니다. 물론 이 경험이 해리포터 내용에 많이 녹아들어 가긴 했지만 말입니다. 제가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얻은 직장에서의 경험입니다. 20대 초반에 저는 런던에 있는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본부에 있는 연구부서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점심시간에는 짬짬이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코딱지만 한 제 사무실에서 독재정권 하에서 탄압받는 사람들이 서슬 시퍼런 권력의 눈을 피해 몰래 밀반출한 편지들을 읽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자기 나라의 상황을 바깥세상에 알리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다급하게 손으로 휘갈겨 쓴 편지들이었습니다. 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사진을 보았는데, 이 사진들은 실종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저희에게 보낸 사진이었습니다. 저는 즉결심판과 처형, 납치와 강간 등에 대해 증인들이 직접 쓴 기록도 읽었습니다.


 제 동료들 가운데는 과거에 정치범이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지 권력자와 다른 의견을 표명할 용기가 있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하고 망명한 이들이었습니다. 우리 사무실을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는 정보를 제공하려는 사람들도 있었고, 고국에 남겨둔 가족친지나 친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저는 고문당한 한 아프리카 인을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당시 제 나이보다 많지 않았고 고국에서 겪은 고통의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한 증언을 카메라에 녹화하는 동안 끔찍한 기억에 대한 두려움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그는 저보다 키가 30 센티미터 가량 컸는데 마치 아이처럼 나약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증언 녹화를 마치고 저는 그를 지하철까지 안내해 주었고 잔인 무도한 정권에 삶이 산산 조각난 이 젊은이는 깍듯이 제게 악수를 청하고는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한 번은 텅 빈 사무실 복도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닫힌 어느 사무실에서 고통과 두려움에 찬 비명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소리는 아마 제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비명소리가 흘러나온 사무실 문이 열리고, 연구직 여직원이 머리를 내밀더니 따뜻한 음료를 갖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른 그 청년에게 막 비보를 전했던 겁니다. 그가 고국의 정권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을 한 데 대한 보복으로 정권이 그의 어머니를 처형한 것입니다. 20대 초반에 그 일을 하면서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정부가 나라를 통치하고 국민 누구나 법적 대리인을 선정하고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말입니다.


 매일매일 저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극악무도한 폭력을 가하는지 그 증거를 보았습니다. 제가 보고 듣고 읽은 이런 끔찍한 내용들 때문에 저는 말 그대로 악몽까지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인간의 선한 면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직원들은 그들 자신의 신념 때문에 고문을 당하거나 투옥된 경험이 없지만 그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함께 힘을 모아 위기에 처한 생명을 구하고 속박당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주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안정된 삶이 보장된 보통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자신들이 알지도 못하고 평생 만날 일도 없을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씁니다. 그러한 일에 조금이나마 제가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제가 한 그 어떤 경험보다도 저 자신을 겸허하게 만들고 고무시켜 주었습니다.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이해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 이해할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제 소설 속의 가상의 마법의 힘과 마찬가지로 이는 도덕적으로 중립성을 띤 능력입니다. 어떤 이는 이러한 능력을 다른 사람을 이해하거나 공감하는데 쓰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종하는 데 쓸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이러한 상상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는 편을 택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상의 경계선 안에서 편안하게 사는 편을 택하고 자신이 지금과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어떠했을지 느껴보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비명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고 속박당한 이들이 갇혀있는 감옥을 들여다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남의 고통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다가도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저보다 악몽에 덜 시달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부럽다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그렇게 자기만의 협소한 공간 안에서 살다 보면 정신적인 광장공포증에 시달리게 되고 이 증세로 인해 나름대로 엄청난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상하지 않고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더 많은 괴물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타인과의 공감을 거부하는 행위는 진짜 괴물들이 힘을 휘두를 능력을 갖게 만듭니다. 우리가 스스로 악을 행하지는 않아도 악이 행해지는 상황을 외면하면 악의 공모자나 다를 바 없습니다. 열여덟 살 때, 그때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제가 발을 들여놓은 고전 문학부 건물 복도 끝에서 제가 얻은 수많은 깨달음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의 저자인 플루타르크(Plutarch)의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우리가 내면에서 성취하는 것이 우리 외면의 현실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정말 놀라운 구절입니다만, 이 말의 진리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매일 수없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와 바깥세상이 연결되어 있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오늘 하버드를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탁월한 지적 능력을 지녔고 성실하며 훌륭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남다른 위치에 서있고 따라서 여러분이 짊어진 책임도 남다르다고 봅니다. 여러분의 국적조차도 여러분을 남다른 위치에 서게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대다수는 세계 유일한 강대국의 국민입니다. 여러분이 행사하는 투표권, 여러분이 삶을 사는 방식, 여러분이 정부에 압력을 넣고 저항하는 방식은 미국 국경 너머 멀리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이 사실이 여러분이 가진 특권인 동시에 짊어져야 할 책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께서 여러분의 위치와 영향력을 바탕으로 힘없는 사람들을 돕는 길을 선택한다면, 여러분께서 힘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겠다는 선택을 한다면, 여러분께서 여러분만큼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을 지녔다면, 여러분의 가족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도움으로 더욱 나은 삶을 살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분께서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여러분을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세상을 바꿀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거의 끝나갑니다. 여러분께 제가 바라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스물한 살 때 이미 갖고 있던 것입니다. 졸업식 날 제 곁에 있었던 친구들이 지금까지 평생 친구로 남아있습니다. 그들은 제 아이들의 대부와 대모가 되어주었고 곤경에 처할 때마다 제가 도움을 청할 수 있었던 친구들입니다. 제 소설 속의 악당들의 이름을 이 친구들의 이름을 따서 지었는데도 저를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을 정도로 너그러운 친구들입니다. 졸업식 날 우리는 다시는 오지 않을 학창 시절을 함께 한 소중한 경험으로 똘똘 뭉쳐 우리의 끈끈한 우정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중에서 누군가가 훗날 영국 수상 자리에 오른다면 그날 같이 찍은 사진이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계산도 하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가 지금까지 지녀온 우정 못지않은 우정을 간직하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오고 여러분께서 오늘 제가 드린 말씀 가운데 한 마디도 기억하지 못하시더라도 세네카(Seneca)가 한 말만큼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네카는 제가 직장에서의 승승장구라는 목표를 내팽개치고 고대 현인들의 지혜를 찾아 고전 문학부 복도를 내달을 때 마주쳤던 로마의 현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길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점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여러분께서 내면이 충만한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적 성취나 화려한 이력서가 우리의 인생은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누군가 '당신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나요?'라고 묻는다면 그녀는 어떤 대답을 할까? 모르긴 몰라도,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성취에 관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직장에서의 승승장구라는 목표를 내팽개치고 고대 현인들의 지혜를 찾아 고전 문학부 복도를 내달렸다는 그녀의 소신 있는 삶. 그 삶의 궤적 속에 켜켜이 쌓여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남몰래 숨을 고르며 보낸 시간 가운데 빛났던 어떤 순간들이 아닐까? 나는 질문을 바꿔본다. 대중으로부터 칭송과 명예를 가져다준 대단한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그 누구도 모르고 당신만 아는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냐고 말이다.


당신만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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