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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상황,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응급실이야기 150828] 응급상황과 심폐소생술 #1

오늘은 일상생활 중 만날 수 있는 응급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합니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응급상황을 직접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길을 가다 사고를 목격하게 되기도 하고 내 가족의 응급상황에 당황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저도 여러분도 살면서 언제 어디선가는 응급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얘기죠.


남이 어려움에 처해진 상황에서 도움을 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착하냐 악하냐로 구분되는 문제일까요?
아니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필요한 것일까요?


먼저 오래전 있었던 일에 대해 고백부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대생 시절을 거치고 막 의사가 되어 처음으로 환자와 대면하던 인턴 시절 어느 날, 밤 시간에 운전을 하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8차선 도로 한편에 차량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모여든 사람도 없고 경찰도 견인차도 없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서 얼핏 보기에 사람이 길가에 주저앉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의사라면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 차량을 멈추고 환자가 있는지, 있다면 생명에는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어야 하죠. 하지만 당시에 저의 모습은 의사가 된지  며칠 안된, 자신감 없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잠시 고민했지만 도저히 차를 세우고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서지 않더군요. 부끄럽지만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그 기억이 저를 상당기간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차를 멈췄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이유.  자신감의 부재 때문일 겁니다. 이후 응급의학과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고  일상생활 중 목격하는 응급상황에서의 대처가 달라지더군요.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경련을 일으킨 분께 도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바로 앞 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 남성이 갑자기 어어 소리를 내며 눈이 풀리더니 바지에는 소변이 흘러내리고 손발을 떠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주위에 앉아 있던 분들이 깜짝 놀라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지하철 안은 작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경련 하는 남성의 턱을 들어 기도 유지를 하고 호흡할 수 있게 한 뒤, 119 상황실로 출동 요청을 했습니다. 이동중인 지하철에서는 119 대원의 출동이 어렵다 하여 다음 역에서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남성을 열차 밖으로 옮겼습니다. 다행히 경련을 마친 환자는 천천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고 잠시 후 도착한 119 대원들께 안정된 상태로 인계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응급상황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지하철에서도, 언제 어디서도, 응급상황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위기탈출 넘버원> 등 TV 프로그램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생활 속 응급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떡이나 고기 같은 음식을 먹다가 기도 폐색이 발생하는 경우인데요, 실제 응급실에서도 이 같은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일요일 오후, 119 상황실에서 심폐소생술 준비를 해 달라는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무엇인가를 먹다 구토하더니 쓰러져 급히 이송 중이라는 연락이었습니다. 간혹 기력이 많이 떨어지는 고령의 노인이나 뇌경색 환자가 씹기 어려운 음식을 먹다 질식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긴장한 상태로 앰뷸런스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현장에서 환자를 이송 중인 119 대원이 직접 응급실로 전화 연결을 해 왔는데, 환자의 상태는 다행히 심폐소생술 상황까지는 아니고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도착한 할아버지는 목을 잡고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의식은 명료하게 있는 상태였습니다. 동행한 손자 얘기로는, 자신은 컴퓨터를 하느라 다른 방에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화장실에서 구토를 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심하게 구토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시기에 119에 신고했다고 했습니다.


119 대원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하임리히법(이물에 의한 기도 폐색을 해결하기 위해 시술자가 환자의 등 뒤에서 명치를 두 주먹으로 감싸 안고 힘을 주어 압박해 기도 내 이물 제거를 시도하는 방법)을 수차례 시행하였으나 반응이 없어 바로 이송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도착 당시 정상에 비해 낮은 혈압과 빈맥, 낮은 산소포화도를 보이고 있었지만 바로 이어진 산소마스크와 수액치료로 곧 생체 징후는 안정화되었습니다.


119 대원이 시도했다는 하임리히법, 응급실 간호사들의 시범으로


한숨 돌리고 다시 할아버지 상태를 확인하니 할아버지는 목이 계속 불편하다고 호소했습니다. 후두경으로 혀를 밀어내고 목 안을 들여다보니 목젖 뒤쪽으로 검은 이물질이 보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구토하면서 나온 이물질이 아직 남아 있었나 보구나.


하며 긴 포셉을 이용해 이물질을 잡아당겼습니다.


어? 이거 이상한데?


그 이물질은 끝을 모르고 목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 꺼내고 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큰 다시마 줄기. 폭은 3cm, 길이는 7cm에 달하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난 후에야 할아버지는 목이 편해졌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가 불편한 할아버지께서 큰 다시마를 먹다가 제대로 씹지 못해 그냥 삼켰고, 그것이 목에 걸리면서 후두연축이 발생해 구토를 심하게 하면서 의식을 잃은 듯했습니다.


다행히 다시마 줄기가 얇고 길다 보니 식도에 붙어 기도를 막지 않아, 토사물이 기도로 들어가 발생하는 흡인폐렴만 생기고 큰 변 없이 응급실에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그 큰 이물질을 꺼내는 동안 후두연축이 재발하지 않은 것도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목에서 그 큰 다시마 줄기가 나올 줄은...


이후 연락을 받은 아드님이 놀란 얼굴로 응급실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자칫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뻔 한 큰 위기였지만 다행히 생명에 지장 없이 폐렴만 발생한 정도로 일단 위기를 넘기게 되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숨을 헉헉대며 긴장한 낯빛이 역력했던 아드님은 그제야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흡인폐렴으로 인한 낮은 산소 수치 때문에 항생제 치료 및 집중치료를 위해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그 큰 다시마가 목에 걸렸는데도 큰 탈 없이 생명을 붙잡고 계셨던 할아버지니 폐렴도 잘 이겨내실 거라고 환자와 가족들을 위로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150828 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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