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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고생의 교통사고

[응급실이야기 150901]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 #2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내 아이가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소식은 그 경중을 떠나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일 겁니다. 간혹 부모님이 함께 오지 못하고 사고로 다친 환아와 가해자만 병원에 도착해서 먼저 치료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교통사고로 다쳐서 응급실에 와 있습니다.


라고 전화로 설명하려 하면 보호자는 갑작스런 소식에 너무 당황해서 대화가 어려워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 사고로 다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뒤에 친구를 태운 채 아파트 옆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부딪혔습니다. 다행히 병원에 실려가 저는 찰과상을, 친구는 뇌진탕을 진단받고 별 탈 없이 퇴원했지만, 그 날 부모님께 걱정을 많이 끼쳐 드렸지요. 그땐 몰랐지만,      응급실에서 아이의 사고, 특히 교통사고로 다친  보게 되면 당황한 부모의 마음이 가깝게 전해지곤 합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 사고로 다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늦은 밤, 119 상황실로부터 보행자 교통사고 환자가 실려 가고 있는데 상태가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보행자 교통사는 차량의 속도와 무게에 의해 엄청난 힘을 전달받으면서 손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몸의 각 부분에 외상이 심하고 다량의 출혈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미 현장에서 심정지가 왔다면 좋은 경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마음 단단히 먹고 수액 준비와 기관 삽관 준비를 하고 대기하던 응급실 의료진이었지만, 도착한 환자의 상태를 보자 안타까움에 절로 탄식이 나왔습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얼굴 쪽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심폐소생술을 받으면서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119 대원에 따르면 환자가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던 중, 환자를 보지 못하고 지나가던 승용차에   다친 것 같다 하였습니다.


환자 상태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마에 큰 상처가 있고 양쪽 눈은 부어있으면서 동공은 반응이 없었습니다. 양쪽 다리에선 골절된 뼈로 인해 출혈이 있었고 이마저 순  좋지 않아 출혈량이 줄어든 상태였습니다. 뇌출혈과 다리 골절로 인한 저혈량 쇽이 추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랴부랴 기관 삽관과 다량의 수액을 공급하면서 심폐소생술을 지속했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심박동은 돌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빠른 수술을 통한 지혈만이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보호자 연락을 시도하면서 대학병원 전원 문의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말 그대로 일분일초가 급했습니다. 주위 대학병원에 중환자실이 부족하다 하여 전원 갈 병원을 결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다가, 다행히 한 병원에서 환자를 받아주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원무과로부터 환자의 아버지께 연락이 닿았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의식은 없었지만  혈압이 유지되어 전원준비를 마쳐갈 때쯤, 환자  응급실에 도착습니다. 저는 이 절망적인 소식을 전하기 앞서 큰 숨을 들이쉬어야 했습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도록 한 뒤, 처음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상황부터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안 좋으니 마음 단단히 먹으셔야 한다고, 이제 긴 싸움을 시작하셔야 할 것 같다고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흥분서 화를 감추지 못습니다.    놈은 어디 있는 거냐며 저를 밀쳐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보호자가 어디 있을까요?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상황이라 잠시 흥분이 가라앉기를 기다습니다.


잠시 후, 따님의 얼굴을 확인한 아버지는 오히려 침습니다. 대학병원으로 전원 하여 수술 등 처치를 시도해야 한다는 설명에 동의하고 앰뷸런스에 탑승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병동에 있던 당직 선생님께 응급실을 부탁해놓고 저도 전원에 같이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인공호흡 백을 짜며 달린 20여분의 시간이 그날따라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 날, 다행히 별 탈 없이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긴 사투를 벌일 환자와 아버지를 응급실에 두고 나오면서 저는, 가슴이 갑갑해져 옴을 느꼈습니다. 이송에 참여했던 기사님과 의료진들은 차마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며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그날따라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


전날 정신없이 환자를 보다 의국회의를 마치고 퇴근을 준비하던 아침이었습니다. 한 교복을 입은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학생이 보행자 교통사고를 당해 119 대원과 함께 소생실로 실려 들어왔습니다. 외부로 보이는 출혈은 없었지만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환자는 횡설수설 하고 있.


헌데 이상한 것은 팔다리, 가슴과 배에  상처는 없는데 배가 약간 불러있고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혹시 부딪히면서 간이나 비장이 손상을 입어 혈복강(배 안쪽에서 출혈이 발생한 상태)이 발생하지 않았나 걱정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급히 초음파 기계를 옮겨와 응급 외상 초음파(focused assessment sonography in trauma, FAST)를 시행하였습니다. 헌데 초음파에 나타난 것은 출혈 소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궁 안에 잠든 듯 누워있는 태아였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다들 놀랐지만 일단 진정하고 태아의 심박동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아의 심박동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모르니 일단 배를 납으로 가린 채 머리 CT를 촬영하기로 했고, CT에는    약간의 뇌내출혈만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연락해 도착한 산부인과 의료진은 다시 한번 초음파를 시행하였고 역시나 '태아는 24주 크기에 심장은 멈춰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아직 학생인 환자가 임신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낳으려고 준비 중이었는지, 아니면 혹시 임신 사실에 절망해 자살을 생각했던 건 아닌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아직 보호자는 찾지 못했고 환자는 머리를 다쳐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빛을 보지 못하고 변을 당한 태아는 아직 뱃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우선 치료는 진행해야겠지요. 산부인과에서는 이미 심장이 멈춘 태아의 만출을 위해 유도분만 약물을 달기로 했고 환자는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입원해 뇌내출혈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 생활에 뗄 수 없는 필수 소비재가 되어버린 자동차. 하지만 편리함 뒤에 큰 위험과 고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주위에서 교통사고 피해자가 생기고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학생이 등하교중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 대부분 보행자 교통사고여서 안타까움을 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응급실 의료진의 고생도 고생이지만 환자와 가족들의 슬픔과 예상되는 긴 투병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 말로 다 못할 슬픔은 응급실 의료진에게도 오래도록 큰 충격이 됩니다.


150901 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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