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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크 Feb 07. 2021

미디어 스타트업
좌충우돌 #1

2018년과 2021년의 '좋은 매체'

2018년 8월 작은 매체에 입사했다. 2013년부터 기자 생활을 하다 2016년 다른 업계, 직군에 몸담았으니 2년 만이었다. 기자를 그만 둘 당시만 해도 몹시 진절머리가 났던지라 돌아올 줄은 몰랐었다. 게다가 내 기준으로 좋은 매체라 보기 힘든 미디어에 합류할 거라곤 단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입사 후 대표와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바뀌고,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채널 몇 가지가 늘었다. 특별한 방향성이나 마일스톤, 계획은 없었고 매 순간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제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었다. 콘텐츠 완성도를 높이고 일정한 주기로 발행해야 했다.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프로세스를 정착시키는 것도 필요했다. 화려한 스타트업 대상 컨퍼런스나 네트워킹 행사 등에서 늘 등장하는 조언은 딱히 떠올랐던 적이 없다. 계획보다는 실행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렇게 매일 닥치는 일을 최선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데 골몰하다 보니 꽉 채운 2년이 흘렀다. 늘 최선은 아니었을지라도 다행히 큰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고 지켜지고 있다. 매 해, 1년이 다르다는 말을 온 마음과 몸으로 수긍한다. 


나는 요즘 우리를 미디어 스타트업이라 소개한다. 기가 막힌 IT 서비스를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고, 갓 차렸다고 말하기에는 업력이 생각보다 긴 회사지만. 적어도 내게는 스타트업이다. 지난 2년을 돌아보니 스타트업의 문법으로 일했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 같으니까.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서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의 일을 복기해 본다. 하루가 멀다고 조급해지는 나를 달래주고 싶어서.


대표님은 뭘 하고 싶으세요?


오퍼를 받은 후 대표와 면담에서 질문을 했다. 예상 밖의 질문이었는지 조금 당황하고, 잠깐 고민하는 듯 했다. 답변은 소박했다. 이쪽 업계의 재능 있는 기자들이 좋아하는 일 하며 생활도 가능한 매체를 만들고 싶다. 그 '좋아하는 일'에는 자신의 취향도 포함됐을 것이다. 


나는 좋은 매체를 만들고 싶다 했었다. 정말 막연한 바람이었다. 솔직히, 지금도 누군가 내게 '좋은 매체가 무엇이냐' 물어봐도 명확하게 답변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좋은 매체'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는 있다. 책임감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미디어. 누군가 특정 기사를 짚어 비판하거나 질문을 건넸을 때 바로 답변을 할 수 있다면, 그게 책임감 아닐까.


미디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요즘은 특히 더 그렇다. 물론 정기간행물 승인을 받은 제도권 언론사가 되려면 5인 이상 사업체여야 하지만, 누구든 채널만 있으면 자신을 미디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이슈화가 필요하니 논조가 강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로 브랜드를 먼저 알리곤 한다. 보통 이런 콘텐츠는 책임감이 없다. 당연히 있기가 어렵다. 책임감 있는 콘텐츠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말초적인 재미도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까.


지금 돌아보면 운이 좋았다. 당시 회사가 주력하던 플랫폼이 어느 정도 팽창하는 시기였고 적당히 말초적인 콘텐츠도 만들어야 했었으니까. 독자는 충분한 공수가 들어갔다는 전제 하에 '있어 보이는' 콘텐츠를 환영하지만, 말초적인 재미의 콘텐츠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필요는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생리를 잘 몰랐다. 정확히는 알았지만, 하고 싶지 않았고 잘 하지도 못했다. 미디어 사업의 흐름을 분석해본 적도 없다. 그래서 막연히 '좋은 매체'를 만들고 싶다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나 했겠지. 유치하다고 생각한 문법의 콘텐츠를 개선하는 데 집중했고 누군가 보기에 '있어 보이는' 콘텐츠를 생산하려 했다.


2년 전 '좋은 매체'를 만들고 싶다 답변했던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쪽 업계의 미디어는 바뀌어야 한다고. 그런데 구체적이지는 않았다. 막연히 혁신,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을 뿐 무엇이 변해야 하고 어떻게 바꿀 것인지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적어도, 우리가 지금 당장 무엇을 바꾸어야 할 지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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