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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국내 최초&유일 헬프엑스 여행기②: 남미편

행복의 세로축을 상상하는 여행 (feat. 아마존)

2016년 유럽으로 첫 번째 헬프엑스 여행을 다녀오고 3년이 흘렀다.

그 동안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이 서서히 차오르고 있었다.

'다시 헬프엑스를 떠나고 싶다. 이번엔 좀 더 많은 나라에서, 좀 더 오래 살아보고 싶다!'


'안정되고 싶은 나'와 '떠나고 싶은 나'가 계속 충돌했다. 

뼛속까지 K장녀인 정체성이 날 붙잡았다. 어서 자리 잡아야지, 부모님은 늙어가시고 동생도 아직 자리를 못 잡았잖아, 부모님께 드리던 생활비는 어떻게 할래, 한 번 더 회사 그만 두면 커리어가 어떻게 될 지 몰라… 심지어 그때 난 준공무원이었다. 월급은 쥐꼬리였지만 무척 안정적인.


3년이 조금 넘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연남동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하다가 말 그대로,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 안의 컵에 가득 담긴 물에 마지막 한 방울이 퐁당,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이 주르륵, 흘러넘쳤다. 

인생 한번 뿐이다. 해보자.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지? 동남아시아는 언제든 갈 수 있잖아, 가장 먼 남아메리카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남아메리카에도 헬프엑스 호스트가 있을까? 아, 헬프엑스 웹사이트에 찾아보니, 영어권처럼 많지는 않지만 있었다! 그리고 그 몇 없는 호스트들의 자기소개가 더더욱 흥미로웠다.     


남아메리카에서 헬프엑스로 만난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


잉카족의 후예인 페루 원주민 '넬슨'과 그의 형 '크리스티앙'.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들과 함께 페루 우아라스의 3300미터 산 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산다. 크리스티앙은 '파차마마(대지의 여신)'을 섬기는 샤먼이다. 나는 크리스티앙이 제사 때 쓸 약물을 '와츄마'라는 선인장에서 추출해내는 걸 도왔고, 그들이 애지중지 기르는 라마들을 돌보는 일 등을 도왔다. 


아마존 정글에 가보고 싶었는데 정글에도 호스트가 있었다. '앤'이 운영하는 프랑스 공동체가 아마존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앤 또한 남미를 사랑해 거기에 터를 잡은 프랑스인으로, 일종의 작은 마을을 만들어 생태수련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난 정글 속 오두막에 벌레를 예방하는 페인트칠을 하고 요리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콜롬비아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두 호스트, '후안'과 '다니엘' 또한 흥미롭기론 둘째가라면 서럽다. 농사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농사를 생각하면 안 된다. 대지의 생명력이 어마어마한 남아메리카의 식생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고, 심지어 '다니엘'은 그냥 친환경이라고 이름 붙이면 서러울 정도로 완전한 퍼머컬처 농법(지속가능농법)으로 자신의 밭을 디자인하는 농부였다. 그는 자신의 집을 '인생학교'라고 이름 붙이고 전 세계에서 헬퍼를 받아들였다. 몇 년 동안 그의 집에 다녀간 헬퍼만 300여 명이 넘었다. 그는 한 자리에 모인 세계인들과 대화 나누며 지식을 확장하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기'를 추구했다. 




내가 헬프엑스로 남미를 여행하며 만난 건 이런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내가 유럽에서도 엿봤던 ‘행복하고, 재미있고, 현명한 삶’의 의미를 더욱 확장시켜줬다. 유럽에서의 헬프엑스 여행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 즉 행복의 가로축을 그렸다면 남미에서의 헬프엑스는 거기에 더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 즉 행복의 세로축을 상상하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2차원이 아닌 3차원에서, 아니 더욱 다양한 차원과 각도에서 다양한 존재들과 ‘나’의 관계를 가늠해보게 되면서 나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처럼 무한으로 확장되었다가 순식간에 다시 ‘1’로 수렴하는 것 같았다. 어리둥절해졌다. 왜, 예전엔 이런 걸 몰랐지? 왜 아무도 안 가르쳐줬지?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감각들을 우리는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 걸까. 

      

남아메리카 헬프엑스의 경험은 <당신이 모르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책을 내고 무엇이 좋으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데, 가장 좋은 건 활자로 변치 않게 새겨진 당시의 생각과 깨달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들은 책이라는 형태로 내 곁에 남아 나를 지킨다. 지킨다는 건, 살아가는 데 길을 잃지 않게 방향을 제시한다는 말이다. 


http://aladin.kr/p/MP5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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