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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Dec 29. 2023

인생샷 포기하고 인생 반미 얻은 날

베트남 여행 2 - 하노이 기찻길 그리고 반미

하롱베이 당일 크루즈를 다녀온 날, 버스를 타고 하노이에 돌아오니 저녁 7시 반 정도가 되었다. 피곤했지만 바로 호텔로 가서 잠들기엔 아쉬운 시간이라, ‘인생샷’ 명소로 알려진 기찻길 카페거리를 구경하러 갔다.


하노이 도심을 가로지르는 좁은 기찻길 양쪽으로,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가면 1층 또는 2층에 앉아 음료를 마시다가 코앞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기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에는 기찻길 위에 서서, 양쪽으로 이어지는 예쁜 카페들의 배경과 함께 ‘인생샷’도 찍을 수 있는 장소다.


그런데, 가기 전부터 마음에 살짝 걸렸던 부분이 있었다. 기찻길 카페로 들어가는 방법들을 검색해 보면, 꽤나 모호했다는 점이다.


'운 좋게 들어갔다', '카페 주인과 연락이 닿아 들어갈 수 있었다', '공안이 없어서 갈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인지 애매한 후기들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어찌어찌 들어가서 기차가 지나는 것을 무사히 보았기에, 일단 가면 뭐든 방법이 있을 거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사정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 일단 기찻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는 방법은 아예 막혀있었다. 공안이 지키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당황스러웠던 건, 갑자기 우리 주위를 둘러싼 호객행위 때문이었다.


"우리 카페는 이쯤 있어. 같이 가자!"

"우리 카페 전망 좋아, 데려가줄게."


카페의 이름을 제대로 알려주는 곳은 거의 없었고, 그저 지도 위에 대충 표시한 카페의 위치와 화소 낮은 사진들을 자꾸만 앞다투어 보여줄 뿐이었다. 그렇게 모호한 상황이니, 아무나 무턱대고 쫓아가기에는 너무 찜찜했다. 우리 말고도 몇몇 서성이는 일행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호객행위에 당황한 것 같았다.


공안 앞에서 대놓고 하는 걸로 보아, 기찻길을 통해서만 들어가지 않으면 공안도 막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관광객들이 카페로 들어간다면, 결국에는 기찻길로 나와 사진을 찍고 커피를 마실 것이기 때문에.


다음날 오전에 찍은 철문 사진. 우측 옆에 사람들이 있어서 피해 찍었다.


결국 우리는 호객행위를 모두 거절하고, 계속 뒤쫓아오는 사람들도 피했다. 그런데도 왠지 그들이 우리를 계속 따라오는 것 같았는데, 알고 보니 우리가 피해 들어선 골목이 카페 직원들이 손님을 데리고 들어가는 바로 그 길목이었던 것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철문이 하나 있었다. 기찻길 안전 관련해서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하나 붙은 작은 철문이 바로, 기찻길 카페들로 들어갈 수 있는 관문이었다.


하지만 그 문 또한 자유자재로 열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페 직원인지 뭔지 모를 사람들이 문을 붙잡고 서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들이 데려가주는 카페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따라가겠다고 하면 문을 열어 데리고 가주고, 그냥 혼자 가려고 하면 아예 안 들여보내주는 식이었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장소로 낯선 사람을 쫓아가면서까지 기찻길을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고자 하는 카페에 전화를 해 주인에게 데리러 와줄 것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예상치 못한 과도한 호객 행위에 질려 땀범벅이 되었으므로 굳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밖에서 예쁜 기찻길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하고, 우리는 자리를 떴다.



원래 계획은 카페에 가서 음료를 마시며 간단히 요기를 하는 것이었으나, 움직이기만 하고 카페 진입에는 실패했으므로 배가 고팠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했다. 우리 호텔은 성 요셉 대성당 근처에 있었는데, 그 근처에는 반미 맛집이 많았다. 엄마도 나도 반미를 딱히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지만, 빨리 간단히 먹고 쉬고 싶었으므로 달리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도 가장 평점이 높았던 곳이 그 시간까지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란이 들어간 것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것을 하나씩 주문하고 시원한 레모네이드도 한 잔 주문해 기다렸다. 반미는 금방 완성이 되었지만 레모네이드는 주문을 받고 난 뒤 짜서 만들어줘서 꽤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이미 늦은 시간이라 그날 만들어둔 양이 다 나가서 새로 만들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샌드위치 두 개와 레모네이드 한 잔을 들고, 드디어 호텔로 들어갔다. 오전 5시 반에 나와 저녁 8시 반이 되었으니, 15시간만이었다.


배가 고파 방에 들어서자마자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반미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반미가 이렇게 맛있는 메뉴라는 걸, 나도 엄마도 그 순간 처음 알게 되었다. 납작하고 바삭한 빵 안에는 속이 알차게도 들어있었다. 빵 자체도 너무나 맛있었는데, 안에 들어간 계란도 돼지고기도 모두 고소하고 맛있었다. 수제 레모네이드 역시 최고였다.


기찻길을 버리고 반미를 먹으러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반미는 우리가 가장 관심이 없었던 메뉴였기에, 이날 만약 기찻길로 들어갔다면 이 여행에서 반미는 없었다. 이미 다음날 먹을 음식들은 다른 걸로 다 정해두었으니까. 기찻길 인생샷을 포기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인생 반미였다.


역시 여행에서 얻을 것을 내가 미리 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얻는 기쁨, 그 순간들이 나를 계속 여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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