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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Jan 17. 2024

내가 하노이에 다시 가게 될까

베트남 여행 4 - 하노이를 떠나며

하롱베이에 대한 글에도 이미 충분히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베트남은 내 모든 여행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련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하노이 공항에서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굉장히 설렜다.


하노이에 도착하니 떠오른 기억은, 친구와의 주말 하노이 나들이었다. 당시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며 머물렀던 지역은 하노이 시내에서는 꽤 떨어져 있어서 평일에는 거의 숙소 주변에만 있었고, 비로소 첫 주말이 되어서야 하노이를 구경하러 나갔다.



우리는 하노이 시내에서의 첫 끼로 KFC를 골랐다. 일주일 내내 담백한 베트남 음식을 먹다 보니 기름진 음식이 먹고 싶어진 것이다. 베트남 음식도 맛있지만, 아무래도 매 끼니 지정된 곳에서만 먹다 보니 조금 지겨워진 시점이었다.


하노이 어디에 있던 KFC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로터리 같은 곳에서 길을 건너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건너편에서는 KFC 간판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바로 앞에는 오토바이들이 수도 없이 연이어 지나가고 있어 함부로 건너가지를 못했다. 시간이 한참 흐 뒤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디뎌보니,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우리를 피해 갔던 신기한 기억이 있다. 2주간의 봉사활동 기간이 끝나갈 때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도 머뭇거림 없이 길을 자신 있게 건널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도 ‘오토바이들로 복잡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15년 뒤에 다시 찾은 하노이는 그때보다도 더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하노이 안에서 가장 평화로운 기억으로 남아있던 곳이 호안끼엠 호수였는데, 그곳마저 부산스러웠다. 하필 우리가 간 날 마라톤에 콘서트에, 온갖 행사를 진행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찻길에서 겪은 호객행위부터, 거리를 걷기 힘들 정도의 교통상황까지. 쉴 틈 없이 빵빵거리는 소리는 괴로워도 그나마 참을 수 있었지만, 걷는 것 자체가 힘들 줄은 몰랐다. 도로는 사람을 태운 오토바이들이 점령하고 있었고, 인도는 세워둔 오토바이들과 식당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길 위에 작은 상과 의자를 놓아두고 식사를 하게끔 해둔 식당들이 많았던 것이다. 인도 위를 걷다가도 그런 식당을 마주치면 도로로 다시 내려가야 했고,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면 또 황급히 인도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15년 만에 왔으니 달라지는 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갔을 때 느꼈던 낯보다도, 15년 후 다시 가서 느끼는 낯섦이 더 크다는 사실은 묘하게 서운했다. 결국 하노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동안 ‘내가 하노이에 다시 오게 될까’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하지만 성요셉 대성당의 반짝이는 야경 속에서 차분함을 느끼며, 기가 막힌 반미와 쌀국수를 먹으며, 하노이는 어쩌면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버린 옛 친구와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오 만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점차 공통점이 없어지고, 대화거리가 줄어다. 그렇지만 친구라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안부를 전하듯, 언젠가 또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러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내 모든 여행의 시작이 하노이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다시 안 올 이유들을 찾는 와중에도, 언젠가 그리워할 것들이 생겨나버리고 말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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