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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노벨문학상은 필요없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것은 그의 베스트셀러 '1Q84'를 통해서다. 소설가로서의 그의 유명세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그의 소설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에 매번 감탄하던 내가 '일본 소설에까지 감탄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도 안되는 자존심(혹은 애국심?)을 내세운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1Q84'를 읽게 된 것은 "'1Q84'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바치는 오마주"라는 책 소개를 우연히 접하고 나서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타나는 그의 통찰력에 크게 감탄했었던 나는 ''1984'에 바치는 오마주'를 한번 읽고 싶어졌다. 그렇게 책을 사서 펼친 것이 바로 올 5월이었다. 


"어디 한번 나를 소설의 세계로 빠져들게 해줘봐!"


오랜만에 장편 소설의 첫 장을 펼치면서 흥분된 마음으로(하지만 여전히 오기를 부리며)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나 혼자 신경전을 펼쳤던 것도 잠시, 어느 새 나는 아오마메, 덴고와 함께 소설 속을 걷고 있었다. 방대한 3권의 소설을 단숨에 독파했고, '1Q84'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한 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노르웨이의 숲'을 사서 읽었다.

'노르웨이의 숲'을 다 읽고 나자 이제는 그의 이야기가 아닌 그의 실제 생각이 알고 싶어졌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그의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당연하게도) 그의 소설보다 그의 생각은 더욱 나를 매료시켰고, 지금 나는 그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손에 쥐고 있다. 그만큼 그가 글로 써낸 그의 이야기들은 흡인력이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아쿠타가와상을 타지 못했는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그는 문학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왜 아쿠타가와상(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타지 못했는가'라는 서적이 출간될 만큼 그의 문학상 수상에 대한 일본 문학계의 관심은 지대했고, 그가 상을 타면 타는 대로, 못타면 못타는 대로 수많은 평론가들이 그와 그의 소설을 논했다.  하지만 정작 문학상에 대한 그의 생각은 명료했다.  '(문학이라는 것은)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다. 그러니 일률적으로 논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그의 소설에 빠져든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쾌감을 느낄 정도의 재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재미로 치자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대표작 '쥬라기 공원')의 작품들이 최고였다. 그렇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읽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흡인력을 가득 머금은 그의 '필력'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이 스토리가 부실하다거나,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1Q84'만 해도 특별한 상상력이 가미된 뛰어난 스토리의 소설이었다. 다만, 그의 소설의 힘의 원천이 스토리와 상상력을 뛰어넘는 필력에 있었다는 의미이다. 스토리보다 필력이 더 돋보이는 그의 소설은, 아마도 굉장한 의미와 세상을 관통하는 통찰력이 담긴 문학을 찾는 일부 문학평론가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 소설이었을 수도 있다. 

또 덧붙여 설명하자면, 무라카미의 소설에 통찰력이 없다거나 사회상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얘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로 '노르웨이의 숲'은 "현대인의 고독과 청춘의 방황을 선명하게 포착한 현대 일본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면보다 그의 필력이 훨씬 돋보이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의 '오리지낼리티'가 바로 그의 소설을 읽는 이유


그는 독자들의 평가 중에 '오리지낼리티가 있다'라는 칭찬을 가장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만의 색깔이 분명하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그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무라카미만의 표현 방법이 있고, 스타일이 있으며, 심지어 그만의 웃음 코드가 있다. 소설을 읽는 도중 뜬금없이 피식하게 만드는 유머 코드는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재미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노벨상은 필요없다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뮤지션인 밥 딜런이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언론에서는 책이 아닌 다른 장르가 문학상을 받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에서부터, 해마다 후보에 오르지만 수상을 하지 못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한국의 고은 선생의 아쉬움을 대신 달래주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다면 정말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상을 타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많은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사랑은 노벨문학상(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내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에 버금가는 상을 받은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노벨문학상이 외면한다고 해서 그의 '오리지낼리티'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은 것은 아니며, 그의 소설로부터 책 읽는 기쁨을 받는 독자가 그 기쁨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이미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이 필요 없는 작가이다. 이것은 무라카미 하루키뿐만 아니라 읽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기쁨을 줄 수 있는 작가라면 모두 적용되는 얘기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 / SBS 화면캡처


올해 초, 제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드디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상에 대한 기쁨보다 환경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언급했다. 아마도 그의 수상 여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게다. 만약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면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히지 않을까?

"문학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뭐, 여기서 이런 말씀을 드려봤자 그걸로 어떻게 된다든가 할 일도 아니겠습니다만."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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