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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작가들(15) - 정유정

어둠 속에서 건져 올린 인간의 진실

by 세잇

첫 만남, 신선한 충격

정유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난 건 『7년의 밤』을 통해서였습니다. 그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갑자기 햇빛을 본 것처럼 눈이 부시면서도 어지러웠죠. 그녀의 소설은 독자를 편안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들죠.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진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정유정 작가를 '내가 사랑한 작가들'의 열다섯 번째로 호명한 것은, 그녀가 보여주는 용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그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 본성의 가장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끄집어내는 탁월한 통찰력에 대한 깊은 경외감 같은 게 솟아오르죠. 그녀의 소설들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우리 안에 잠재된 악의 씨앗과 생존 본능, 그리고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인간의 존엄을 예리하게 해부합니다. 마치 메스를 든 천재 외과의사처럼,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주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과연 그 어둠에서 자유로운가?"



악의 기원을 파헤치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화두는 단연 '악(惡)'입니다. 특히 『7년의 밤』과 『종의 기원』은 그 악의 뿌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데요. 『7년의 밤』에서 작가는 한순간의 우발적인 사고가 어떻게 한 가족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복수와 파멸의 연쇄 고리를 만들어내는지 숨 막히게 그려냅니다. 오영제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광기 어린 집착과 최서원이 짊어져야 했던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굴레는 악이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운명의 덫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죄책감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다'라는 작품 속 문장은 정유정의 인간관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녀는 인간이 저지른 죄와 그에 따른 응보, 그리고 용서와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권선징악의 논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인간의 숙명이며, 그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역설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어지는 『종의 기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넘어 '태어나는' 가능성까지 탐구합니다. '괴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이러한 그녀의 철학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 반대의 가능성도 제시합니다. 사이코패스 유진의 내면을 따라가며 작가는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 여기는 범주 밖의 존재가 어떻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감옥

정유정 작가의 작품 세계는 비단 거대한 재앙이나 선천적인 악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완전한 행복』에서는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공간, 즉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피어나는 뒤틀린 욕망과 집착을 파헤칩니다.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가정의 이면에 숨겨진 병적인 사랑과 통제 욕구는 독자들에게 소름 끼치는 공포를 선사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 상대방을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작품 속 문장은 우리가 믿고 있던 사랑의 순수성에 균열을 가합니다. 주인공 유나는 남편과 아이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데, 이는 사랑이 때로 얼마나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형태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가족 간의 사랑이 때로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랑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들이 얼마나 은밀하고 잔혹한지를 드러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과 소유욕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완벽은 대상을 사랑하는 법이 아니라 대상을 배치하는 기술일 때가 많습니다. 이 소설에서 행복은 결핍의 소거가 아니라 변수를 제거하는 통제의 다른 이름입니다. 감정의 울퉁불퉁함을 다듬는 대신, 타인의 가능성을 깎아냅니다. 이 폭력은 둔탁하지 않습니다. 친절의 외피를 쓰고, 합리의 어휘를 빌립니다. 그렇기에 독자는 늦게 알아차립니다. 유나가 추구하는 행복은 공유가 아니라 독점이며, 공존이 아니라 침묵이라는 것을.


집단 광기의 해부학

악이 개인의 내면에서 발원한다면, 재앙은 그 악을 집단적으로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됩니다. 소설 『28』은 '붉은 눈'이라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창궐한 화양시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본성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생존이 유일한 목표가 될 때 인간은 이성을 잃고 맹목적인 공포와 이기심에 사로잡힙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그 얼굴은 추악하거나, 혹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거나.' 이 문장은 재앙이 인간성을 시험하는 준엄한 시험대임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28』을 통해 재난 앞에서 개인이 겪는 고통뿐만 아니라 집단이 어떻게 광기에 휩싸여 약자를 희생시키고,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여성 인물들의 목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재난 상황에서도 여성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싸우고 선택하는 주체적 존재로 그려집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때로는 동물적인 본능만이 남고,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통해 정유정 작가는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본능'과 '정체성'의 원초적인 힘을 탐구하는 『진이, 지니』는 정유정 작가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이 소설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직후 보노보 '지니'와 하나가 되어버린 사육사 '진이'의 이야기를 통해, 종을 초월한 의식의 융합과 생존 본능,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탐색합니다.


'나는 인간인가, 보노보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둘 다 아닌가.' 진이와 지니가 융합된 존재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아'라는 개념 자체를 뒤흔듭니다. 인간의 이성과 보노보의 본능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려지는 세상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폭력과 위선으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깊은 사랑과 희생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작가는 이 기묘한 융합을 통해 언어 중심의 인간적 사유가 일시적으로 밀려나고, 피부와 냄새, 근육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보노보의 세계가 전면으로 떠오르는 순간들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중심적인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지에 대한 성찰을 유도합니다. 지니의 순수하고도 강렬한 생존 의지와 진이의 인간적 기억이 뒤섞인 복합적인 의식은 문명화된 인간 사회의 허위의식과 대비되며, 독자들에게 진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보노보의 세계는 무자비한 정글이 아니라 접촉과 돌봄의 정치가 작동하는, 협력과 공감의 우주로 그려집니다. 그 선택이 의식적 판단이 아니라 생존의 지혜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그 안에는 인간 사회가 망각한 순수한 연대의 문법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탁월함은 단순한 판타지적 설정을 윤리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밀어붙이는 힘에 있습니다. 진이와 지니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는 동안 연구라는 이름의 권력과 '보호'라는 미명은 금세 소유와 통제의 도구로 전락합니다. 과학은 객체를 필요로 하고, 진정한 돌봄은 관계를 필요로 합니다. 정유정 작가는 두 체계가 부딪힐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대리적 공감이 아니라 실제로 타자의 몸을 함께 살아내는 경험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가장 구체적인 현장에서 반문합니다. 『진이, 지니』는 정유정 작가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확장해 나가는 지점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다움이 종의 경계에서가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는 방식, 즉 접속과 배려의 방식에서 기원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관된 철학과 치유의 방식

정유정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또 다른 특징은 '치유'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입니다. 그녀는 상처를 덮어버리거나 잊게 만드는 방식의 치유를 거부합니다. 대신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서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다만 그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뿐이다'라는 그녀의 철학은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빠른 해결책이나 즉석 치유법과는 정반대의 접근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특징은 '경계의 해체'입니다. 그녀는 선악, 가해자와 피해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어놓습니다. 우리가 흔히 '악'이라고 규정하는 것들이 사실은 환경과 상황, 그리고 선택의 연속선상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이는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모순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정유정 작가는 인간의 어둠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 비로소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녀의 소설들은 한결같이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어둠의 골짜기를 파고듭니다. 때로는 잔혹하고, 때로는 불편하며, 때로는 소름 끼치는 그녀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라면 그 순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 안에는 저런 악의 씨앗이 없는가'


에필로그

하지만 정유정 작가의 시선이 단순히 어둠만을 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그 심연 속에서도 한 줄기 빛, 즉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생존 의지, 종을 초월한 사랑,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투쟁을 섬세하게 포착해 냅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결국 우리가 어둠을 직시하고 이해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인간성'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작은 희망마저 찾아낼 수 있음을 역설하는 듯합니다.


정유정을 읽는다는 것은 불편한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그 거울에는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비치죠. 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뎌내고 나면, 우리는 조금 더 진실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야 진짜 성장이 시작됩니다.


그녀의 문학은 정말 재밌습니다. 재미만으로 읽는 것도 좋겠지만,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넘어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시키고 인간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살펴봤으면 합니다. 이렇게나 날카로운 분석과 탁월한 통찰력으로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그려내며 독자로 하여금 불편하지만 의미 있는 성찰의 여정으로 이끄는, 진정으로 경이로운 작가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질문이자, 우리 안에 잠든 본질을 깨우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치 인생의 한 부분을 살아내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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