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쓰는 후속편, 스웨덴 살이 5년차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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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년 6개월 전, 나는 화가 가득한 상태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위 글을 써내려갔다.
너무나도 말도 안되는 상황에 화가 나서 쓴 글이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반응이 뜨거웠다. 안 그래도 글 솜씨에 자신이 없는데, 하루하루 늘어가는 조회수와 공유 횟수를 보면서 잔뜩 겁이 먹어버렸고..그 이후에는 브이로그 업로드 소식을 간간히 전하는 것 외에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뭐, 위에 글은 매번 읽을때마다 얼굴이 후끈거린다.
글솜씨는 아직도 구리지만, 그래도 달라진게 있다면 3년 반을 스웨덴에 더 살면서 많은 것들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0년 초반, 코로나가 전세계를 휩쓸기 시작하면서 나는 2018년에 글을 썼을 당시에 느꼈던 감정의 1000배, 아니 5000 배를 몇 주만에 느꼈었다. 스웨덴에 코로나가 상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 마스크를 사모으고 채소를 사다가 소분해서 냉동시키고 난리를 치는 나에 반해 이 나라는 너무나도 차분해보였다. 게다가 테그넬이라는 사람은 나와서 집단 면역을 해보겠다고 연설을 하는데...당장 들었던 생각은 '코로나에 걸려도 물 마시고 알베돈 (타이레놀) 먹고 푹 쉬라고 하는거 아냐..? 걸리지 말아야지' 였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코로나는 무서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했고 2020년 3월에 나와 친한 친구가 코로나에 걸렸다. 나랑은 일정이 맞지 않아서 2주정도 안 본 시점이었고, 친구는 시티 헬스장에서 하는 댄스 수업에 나갔다가 며칠 뒤부터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열이 나는 것 같고, 그러더니 전화를 할수록 숨 쉬는 소리가 영 안 좋게 들리고 등도 아프다는 것이다!
너무 걱정된 나머지 휴대폰 하나로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다른 휴대폰 하나로 1177 (스웨덴 의료 핫라인) 을 불나게 걸었다. 반복해서 전화하는 사람이 많으니 통화가 불가하다는 안내 음성과 함께 뚝 끊겨버리는 전화. 한 8번을 걸고 나니까 드디어 통화 대기줄로 연결이 되었는데, 대기자가 250명이 넘는다.
다음날 일찍 전화해서 겨우 연결이 되었는데...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응 지금은 테스트기도 부족하니까~친구 20대면 물 많이 마시고, 해열제 먹고 버티라해~'
이 와중에 친구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열이 40도까지 오르는데..어떻게 도움을 받을 방법이 없어서 기가 막혔다. 죽을정도 아니면 응급실도 갈 수 없었고, 의사도 물론 만날 수 없었다. 모든 약국에는 체온계와 해열제가 동나버리고, 그놈의 휴지도 종적을 감췄다.
이때만 해도 롬바르디아에 스키타고 감염자들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스톡홀름에 돌아온 뒤 위풍 당당하게 회사에 출근했다던 지인의 동료 얘기 등등 말도 안되는 도시괴담들이 들려왔었다.
몇개월 뒤부터는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체온계와 해열제도 다시 구매가 가능해졌고 휴지도 매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문제는 너무나도 프리한 사람들의 태도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건조하게 코로나 빨리 끝나서 여행 가고 싶다~이러면서 며칠 뒤에 해맑게 '나 코로나 걸렸어~증상 있으면 검사받아~'라고 연락오는 경우도 많아졌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동양인 (는 나)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질 때도 종종 있었다.
3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전만큼 이 나라의 의료시스템에 기대가 없었고, 액션포인트를 잡을 수 있을만한 정보들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스웨덴에서도 백신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덕분에 초반에는 당일 취소된 잔여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이 때도 꽤 씁쓸한 일을 겪었었는데, 나는 3주 전에 보건소에 전화해서 잔여백신 웨이팅 리스트를 걸어놨었는데 (영어로) 당일에 전화한 스웨덴 남자친구에게는 바로 잔여백신을 맞으러 오라고 예약을 잡아줬다. 어이가 없어서 바로 전화를 해보니 내 예약을 받았던 같은 사람이 이번에는 자기는 영어를 못한다며 '스벤스카! (svenska - 스웨덴어로 해라!) 스벤스카!' 이러고 뚝 끊어버리는 것이다. 내 번호가 뜨는지 그 이후로는 내가 전화하면 스크리닝을 해버리는 어메이징한 상황이 발생해서 '스웨덴 누구를 위한 천국인가 분노의 후속편'을 쓸 뻔했다.
하지만 굳은살이 생겼는지, 다른 번호로 보건소에 전화해 다른 담당자에게 연결될 수 있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어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담당자는 내가 전화 걸었던 담당자와 예약 받은 사람이 같다며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다음날 남자친구와 같이 오면 최대한 잔여백신을 같이 맞춰주겠다고 얘기했다. 자국민 우대라고 하기에는 나도 똑같이 세금내고 사는데, 적어도 스웨덴어로 입막음하고 전화번호를 차단해버리는 짓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날 잔여백신을 맞았고 2차 접종까지 수월하게 끝마칠 수 있었다. 내가 2차를 맞을 즈음에는 전국민 모두 접종을 하는 쪽으로 돌아섰고, 웃프지만 이미 많이들 걸려서 주변에 새로 걸리는 사람들이 확연이 줄어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였다.
장단점이 너무나 뚜렷한 나라이기에, 스웨덴 의료 서비스에 대한 나의 기대와 분노는 많이 사그라들은 상태다.
앞으로는 이 브런치에 의료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다양한 면에 대한 글을 써볼까 한다! 더불어 살짝 엉망진창으로 관리하던 유튜브 채널을 (또) 엎고 새로운 채널을 기획해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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