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속 안식처를 만들어오고 있었다
누구나 삶을 뒤흔드는 사건들이 한가지씩은 있다. 일생 절호의 기회, 마음을 송두리째 뺏어가는 사랑,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로또 당첨 등등. 나에게는 그 사건이 너무나도 일찍, 설사 매뉴얼이 주어지더라도 그걸 이해하고 따르기엔 너무 어린 나이에 찾아와버렸다.
나는 또래에 비해서도 유독 관심이 밖으로 많이 향해있는 아이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찬찬히 음미하기보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모든것에 반응하기에 바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람들 앞에서 춤도 잘 췄고, 뭐든 아는척 하는걸 좋아했고, 부모님한테 실없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었다.
나는 또 호기심이 많고 텐션은 높은 반면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성향을 타고났다. 게다가 나쁘게 말하면 눈치가 별로 없고, 좋게 말하면 요즘 심리학계에서 핫한 '메타인지' 능력이 부족한 아이었다.
그런 내가 유치원을 다니던 중 온가족이 아빠를 따라 유럽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공항에는 우리와 다르게 생긴 외국인들이 가득했고 그 분위기는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순간 모든게 두려움과 불안으로 다가왔던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택시에서 가방을 두고 내렸다고 망연자실해하는 엄마의 목소리, 새로운 보금자리가 될 집 앞에 도착해 뒤늦게 열쇠를 찾으려 가방을 헤집는 아빠의 모습...이 알 수 없는 장소에서의 첫 3-4시간은 불안했지만, 새로운 집은 대궐같이 컸고 무려 내 방도 있는 기적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이삿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을거란 얘기를 듣고 행복하게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나보다 겨우 대여섯살 더 많았던 부모님은 막막했을 것이다. 그래서 두 분이서 머리를 맞대고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우셨을 것이고, 예정대로라면 나는 그 울타리 안에서 그저 뛰놀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7살짜리 내가 마주한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대책도 매뉴얼도 없이 말도 통하지 않는 새로운 현지 학교에서 맨땅에 헤딩으로 적응해나가야 했다. 외모도 언어도 다른 친구들에게 깡으로 덤벼보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어울려 노는게 쉽지 않았다.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의 환심을 살 수 있는 그렇다할 능력도 없었다. 그 땐 너무 어려서 내가 현지어를 배워보겠단 야심찬 생각보다는, 아무와도 소통할 수 없는 이 곳에서 매일매일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몇시간만 버티면 엄마가 나를 구하러 와줄거니까.
이야기가 딴 길로 새는 것 같지만 한 마디 하자면 마음의 그늘이란게 꼭 누구의 탓으로 생기는건 아닌 것 같다. 그 시기에 우두커니 혼자 구석에 앉아 불안해하고, 기다리면서 느꼈던 무기력함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의 그늘로 드리워져있었다. 하지만 그 뒤편에는 그늘을 젖히고 매일매일 나를 구해주던 엄마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때의 엄마를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성인이 되어서 스스로 그 그늘을 젖히고 마음속을 밝히기 위한 삶의 지표로 엄마아빠의 20년 전 모습을 삼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7살 땐 마냥 대단해보였던 엄마 아빠의 울타리를 이번에는 내 손으로 일궈서 해외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매일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는 마트에 가서 척척 장도 보고 맛있는 음식을 해줬다. 그 먼 유럽에서 김치도 직접 해서 먹였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신기하지만 때마다 밥상에는 그득하게 맛있는 한식이 올라왔다. 나는 현지어 배우는것도 잘 못하고 벅찬데, 따듯한 우리집의 온도와 분위기는 해외에서도 변함이 없었고 엄마아빠는 대외적으로도 너무나도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친구도 못사귀고 학교에서 매일매일 혼자인데, 엄마아빠는 주변에 새로운 지인들도 많아 보였고, 특히 아빠는 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회사 생활을 해내는게 내심 부러웠다.
내가 7살 때 폭 감겨 있었던 울타리는 무턱대고 시작한 해외생활의 지표이자 큰 힘이 되주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해외에서 아빠처럼 회사생활을, 그것도 현지 회사에서 잘 해내고 있고. 주변에 소중한 지인들도 여럿 생겼고, 가끔 깍두기도 담그고 매일 맛있는 음식을 차려먹고 잘 살고 있다.
청소년기에는 그저 내가 잘 해내고 싶은 것들을 붙잡고 사느라 무기력할 여유가 없었지만, 내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서 인간관계도 서툴었었다. 대학생이 되고 내 자신을 조금씩 알아갈 여유가 생기면서 어렴풋이 해외에서 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무턱대고 스웨덴으로 날라왔고, 이 곳에서 새로운 삶을 몇년간 열심히 꾸리고 나서야 이제 알겠다.
7살 때 마주했던 변화가 내 삶을 어떻게 뒤흔들어놨는 지, 얼마나 나라는 사람을 결정짓는 사건이 되었는 지를 말이다.
결국은 헤피엔딩이 찾아왔고, 난 어릴적 내 부모님을 닮아있는 내 모습과 내가 꾸린 울타리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