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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a Stockholm May 02. 2018

스웨덴, 누구를 위한 천국인가

스웨덴 생활 1년 반, 남은건 깨져버린 환상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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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행복지수 최상위권, 아이 있는 워킹맘이 가장 행복한 나라, 복지 천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스웨덴에서 산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스웨덴에 오기 전에는 스웨덴에 관련된 숱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와 저긴 정말 천국인가보다. 나도 저기 정착해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며 이 나라에 대한 환상을 키웠었다. 이 모든 환상이 깨져버린 지금, 스웨덴에 살면서 매우 놀라고 실망스러웠던 것들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1.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복지 천국 스웨덴에도 생각보다 노숙자와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지하철에서 신문 등을 팔거나, 사정을 얘기하며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자국민 (스웨덴 사람)과 난민이 똑같이 구걸을 할 때 보이는 스웨덴 사람들의 이중성에 때마다 놀라게 된다. 난민이 돈을 요구할 때에는 철저히 무시하거나, 지하철 직원에게 신고하던 사람들이, 자국민이 손을 내밀면 Swish (계좌 이체) 에 큼지막한 지폐를 내미는 등 엄청난 호의를 베풀기 일쑤다. 스웨덴 사람들 아무나 붙잡고 이 상황에 대해 얘기하면 대부분 '난민은 우리 세금을 들여서 데려왔으니 나라에서 어련히 지원을 잘 해주겠지. 그거 받고도 욕심 부리느라 저렇게 구걸하는거잖아' 라고 대답해오는데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자국민으로서 받을 수 있는 국가 혜택은 난민들에게 제공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데,  저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속으로는 난민들을 배척하고 있구나' 라고 오해할 수 밖에 없게 된다. 


2. 1/3은 세금, 비효율적이고 퀄리티 낮은 의료 시스템


스웨덴의 주민번호인 퍼스널 넘버를 받고 세금을 내는 '스웨덴 주민' 은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개인 병원에 바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보건소 개념인 1차 병원에 먼저 방문해야 한다. 예약을 하지 않고 바로 방문할 수 있는 Drop-in 시스템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인  'Vårdcentral'은 1회에 약 200크로나 (약 2만 6천원) 정도를 받는다. 그리고 1년안에 이 Drop-in 방문으로 1천 크로나 이상을 썼을 경우에는 추가 금액이 면제된다. 이외에 아주 큰 병에 걸렸을 때 지원해주는 사보험도 있는데, 이건 회사에서 취업비자로 온 외국인에게만 의무로 제공하게 되어있다. 


나는 위와 같은 내용을 처음 보고 1회 방문 금액이 좀 세긴 하네, 그래도 역시 복지국가 답게 1년 안에 5번 이상 방문하면 그 이후로는 면제를 해주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로 피부 질환, 소화 질환을 앓게 되면서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


작년 가을 즈음 피부에 이유 모를 발진이 막 올라오기에 시내에 있는 큰 Vårdcentral에 진료를 받기 위해 방문했다. 진료비로 400크로나를 미리 지불하였더니 의사가 아닌 간호사에게 우선 연결해주었고, 3-4분 들여다보던 간호사는 나이 지긋한 가정 의학과 의사쌤을 불러왔다. 의사쌤은 간호사가 했던 것과 같이 몇 분 들여다보더니 '잘 모르겠다' 라는 말만 반복했고, 일단 약 두가지를 줄테니 써보고 없어지지 않으면 개인 피부과 의사를 찾아가라고 했다. 그마저도 예약하기까지 한두달은 걸릴 것이며, 진료비도 최소 700 크로나는 예상해야 한단 말과 함께, 그렇게 내 400크로나 짜리 진료는 10분도 안 되어서 끝나버렸다. 


받아온 약을 1주일간 써봤지만 더 안 좋아져서 결국엔 동네 Vårdcentral 에 똑같이 Drop-in 진료를 받으러 내원했다. 상황이 심각한걸 눈치챈 간호사가 최대한 빨리 의사 한 분에게 연결을 해 주었는데, 안타깝게도 영어를 잘 못하는 분이었다. 나는 분명히 '직접 복용할 수 있는 약을 달라, 연고는 이거 두가지를 썼고 효과가 없었다' 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No take pills. Not good. We don't do that in Sweden. I give you something else' (알약 안돼. 안좋아. 스웨덴에선 그런거 안해. 다른거 줄게) 듣다가 기가 막혀서 

원인은 뭐냐, 제대로 진단은 하고 처방을 하는 것이냐 질문을 퍼부어댔더니 의사가 영어를 할 수 있는 동료를 데려왔다. 


새로운 의사쌤한테 희망을 걸어봤지만 두꺼운 피부과 관련 책을 꺼내더니, 흉측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본인이 생각하기엔 개 피부에 증식하는 곰팡이가 옮은 것 같다고 했다. 일단 자기가 주는 약을 써보고도 차도가 없으면 개인 피부과 의원을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으라고 하여, 200 크로나를 지불하고 허탈하게 집에 돌아와야 했다.


결국 나는 Drop-in 진료비 600 크로나, 약값 300 크로나를 쓰고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내가 만난 의사들이 말한대로 개인 피부과 의원을 알아봤지만 한달 넘게 기다려야 한단 말에, 한국에 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국에 가서 나는 진료비 4천원에 약값 6천원에 얼굴에 난 발진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소화 질환에 관련해서는 길게 안 쓰겠다. 스트레스로 장운동이 안 되는 것이 문제였는데 계속해서 제산제와 지사제만 처방해준 스웨덴 의사들 때문에 고생 고생 생고생을 해야 했다. (결국 증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내게 필요한 약을 처방해준건 동네 약사였다.) 


물론 해외 나와 살면 의료 서비스가 우리나라만 못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웨덴은 내가 몇 년간 살아본 독일보다도 심각할 정도로, 서비스가 저급이고 매우 비싸다. 


'눈이 간지러워 여러번 병원에 내원했는데, 안약을 넣어보고 지켜보자는 의사쌤의 말만 듣다가 실명한 사람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 '스웨덴에서는 암을 초기에 제대로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적어서 스웨덴에서 암을 발견하면 황천길 열차 예약이지만 그나마 나라에서 죽을병은 지원해주니 빚은 안 남기고 죽을 수 있다' 등의 우스겟소리들을 들을 때면 과연 여기가 복지 천국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3. 누구를 위한 우선순위인가


언젠가 링크드인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완벽하지 않아요, 오늘 거래처 메일 여러개를 보내야 한다는걸 까먹고, 오더를 잘못 넣고, 전화 미팅을 말아먹었어요. 그래서 이 글을 쓰고 난 뒤에는 컴퓨터를 끄고 내일 아침까지 아예 안 보려 해요. 내 시간을 갖으며 힐링을 하려 합니다' 이 글을 보고 바로 든 생각은 '아니 거래처와, 오더를 받은 납품처와, 다른 팀원들은 무슨 죄야?' 다.


스웨덴에서는 개인 우선순위를 매우 중요시 하는데, 이 것이 악용되는 사례를 매일 매일 접하다보면 참 우스운 개념이란 생각이 든다. 다른 일들을 제쳐두고 업무시간에 맥주를 따고, 본인이 벌인 모든 문제들을 방관하고 휴식을 하는, 그런 것들이 최우선인 사람들 때문에 중요한 업무 메일 답변이 1-2주씩 늦어지고 그러는가보다. 이것이 아니면 엄청나게 느린 일처리의 원인을 떠올리기 어렵다.


느린 피드백 때문에 내 일처리까지 늦어지고, 내가 말을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때면, '나한테 우선순위 운운하지 말고, 당신부터 잘해'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온다. 더 이상 'Time consuming, priorities' 등의 단어들을 듣고 싶지 않은 요즘이다. 



4. 신나는 척, 잘 사는 척, 있어빌리티의 나라. 


스웨덴에서 일을 하면 1/3은 세금으로 나라에서 떼어가고, 자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매달 70-100만원 정도의 월세를 내며 생활을 한다. 물가가 전반적으로 세기 때문에 왠만한 고 소득자가 아니면 점심마다 외식을 하고, 각종 공산품과 식료품을 여유롭게 구매하기는 어렵다. 처음엔 그래서 '아 여기 사람들 참 검소하다. 이래서 미니멀리즘이 생겨난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얼마 안 있어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놀랍게도 스웨덴은 두가지가 매우 성행하고 있다. 바로 인터넷 도박과 SNS. 

티비를 틀면 공영 방송과 다른 채널 상관 없이 각종 도박 사이트 광고가 쏟아진다. 스웨덴의 유명한 축구선수 즐라탄도 한 인터넷 도박 사이트의 대표 모델로 활동할 정도며, 적은 인구를 감안하면 스웨덴 내 온라인 도박 시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방금 말한 도박 사이트들의 광고 중에 하나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같은 동네 사람을 발견하고 '헐 너도 oo 했어?' 라고 반가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oo 은 도박 사이트 이름) 또 옆 집 사람의 비싼 외제차를 바라보며 'oo?' 라고 묻자 'oo 맞아' 라고 답변하는 장면이 담긴 광고도 있는데. 결국 이 광고들은 비싼 물건을 구매하고, 근사한 휴양지에 가고 싶어서 '도박' 이란 선택을 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스웨덴 내 연예계는 그리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체감상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강박 &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집착하는 경향이 다른 유럽 국가보다 높다. 그래서인지 스냅챗,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 채널 사용자 수는 엄청나다. 스웨덴 내에서는 공영 방송에서 애정행각을 벌이고 광란의 파티를 즐기는 리얼리티 쇼에 나오는 참가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B급 연예인'이란 단어를 붙인다. 이 출연자들은 자연스럽게 SNS 스타로 등극하게 되고, 그들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팔로워들을 몰고 다닌다. 물론, 이런 B급 연예인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스웨덴 내 인플루엔서 마케팅 시장은 이 사람들만으로도 돌아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하다. 


내가 이 B급 연예인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들이 표방하는 '신나는 척, 잘사는 척하는 있어빌리티 한 라이프스타일'은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과 복지 천국 등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두 얼굴의 스웨덴을 볼 때면 다시금 '그래,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지' 라고 자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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