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소년을 다독여준 건 공교롭게도 작은 전자기기였다.
나는 소문난 애플 팬보이(Fan boy)다. 지금 이 글도 아이패드로 쓰고 있다.
내가 애플 기계를 사랑하게 된 계기는 실로 복잡하다.
때는 바야흐로 2011년 경, 당시는 한국에 안드로이드가 상륙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삼성전자에서는 지금 와서 역대급 명작이라고 불리게 된 ‘갤럭시 S2’가 출시되어 광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기기의 출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시장이 안드로이드의 진화와 함께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스마트폰은 꿈도 못 꾸고, 삼성 애니콜의 ‘허니버블’이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 한 번 회자되지도 못한 채 단종된 슬라이드 피처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는 어찌나 슬라이드 폰이 갖고 싶었는지, 손바닥의 절반만도 못한 화면으로 티비도 보고, 예능프로그램도 다운받아 봤었지. 그럼에도 그 휴대폰의 디자인은 여느 기계보다도 예뻤다. 골드와 블랙의 그 조화로운 색상은 결국 스마트폰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버렸지만.
그러던 와중 부모님께서는 작심하고 나에게 ‘첫’ 안드로이드 “PMP”를 선물해주셨다. 내게 처음이라는 말이 아니라 국내최초(아마 세계 최초였을 것이다) 안드로이드 플레이어, 지금은 없어진 SKY의 ‘더 플레이어’였다. 위풍당당하게 ‘최초’ 타이틀을 품은 제품을 손안에 쥐게 된 나는 스마트폰도 거의 없는 교실에서 유일하게 얼리어답터가 된 기분에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그 들뜬 기분은 얼마 가지 못했다.
첫 번째 이유로 ‘더 플레이어’는 안드로이드 ‘이클레어(에끌레어, éclair)'를 탑재했다. 안드로이드는 매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마다 알파벳 순서로 디저트 이름을 지어 부른다. 지금 출시된 것이 파이, 즉 P인데 당시 내가 사용하던 건 E인 것이다. 안드로이드 E는 인간이 쓸 수 있는 안드로이드의 최소한만을 갖춘 수준이었고, 렉이 심할 뿐만 아니라 웬만한 프로그램은 작동조차 못하는 수준이었다.
두 번째는 ‘더 플레이어’의 출시 직후,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플레이어’(갤플)를 출시해버린 것이다. 당시 갤럭시 플레이어는 최신 안드로이드인 진저브래드, 즉 안드로이드 G를 탑재한 최신 기기였으며, 삼성전자의 놀라운 기술력을 과시라도 하듯 빵빵한 램 용량과 최신 CPU를 탑재해 남부러울 것이 없는 스마트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동시대에 출시한 기기임에도 소프트웨어는 2세대나 차이 났고, 하드웨어 스펙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진 보잘것없는 놈으로 갤럭시라는 괴물을 따라잡으려는 갖가지 노력을 하게 된다. 나와 비슷한 ‘처지(?)’를 지닌 사람들이 모인 ‘더 플레이어’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며 조금이라도 빨라지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그들만의 대화를 찾아보고, 급기야는 루팅(아이폰으로 치면 탈옥)에 커스텀 펌웨어(유저가 직접 만든 운영체제)를 수십 번을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공부해도 모자랄 고등학교 시절을, 게다가 과학도 모르는 문과생이 낑낑대며 기계 하나를 붙잡고 있던 것이다.
무겁고 느리고 골동품에 가까운 기계라도 행복했다. 그 조그만 친구 하나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을 준건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것을 이만큼이나 사랑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이 모든 걸 즐겼던 것 같다. 램이 어쩌고, 운영체제가 어쩌고 하는 복잡해 보이는 기술 분야의 용어들. 그것들이 국영수보다 먼저 체화되는 그 순간순간들이 나에겐 새로운 세계를 향한 공부들이었으니까.
그러던 도중, 나는 운 좋은 기회로 ‘아이팟 터치 4세대’를 손에 넣게 된다. 친구가 ‘갤플’을 사서 더 이상 쓸모 없어진 아이팟을 내게 싸게 판 것이었다. ‘빌런’이던 갤플이 내게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처음 만져본 그 더 조그만 친구는 내 세상을 바꿔놓았다. 이렇게 작은 애가 부드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안 되는 게 없었다. 카메라까지 달려 있어 사진 촬영도 가능하고 디자인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내가 이제껏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형식의 세계가 펼쳐졌다. ‘계몽’이라는 말이 이런 것이었다.
당시 아이팟은 iOS6를 구동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를 쓰다가 넘어온 내게 당시의 운영체제는 사용하기 끔찍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파일 관리도 안되고, 외부 프로그램도 설치할 수 없고, 램 용량은 극도로 적어서 두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수 조차 없었다. 그러면 어떤가, 안드로이드 E에서 넘어온 ‘시골 촌놈’은 어딜 가도 천국인걸.
새로운 세계가 열려버린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이폰5의 발표 영상을 오마주해서 ‘새 아이폰 프레젠테이션’을 꿈꾸며 틈틈이 준비했지만 실수 투성이었던 교내 영어 말하기 대회도, 군대 사지방에서 틈틈이 보면서 전역하면 꼭 사겠노라 다짐했던 유튜브 아이패드 리뷰 영상도, 에어팟이 지금처럼 ‘패션 아이템’이 되기 전부터 이어폰 줄이 꼬여 힘겹게 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선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나 자신을 뿌듯히 여기던 시간들은 다 애플이 선물해준 ‘나의 세상’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아이폰5S를 손에 든 이후로 용돈을 조금씩 모아 아이폰을 바꿔가며 사용했고, 각종 애플 제품과 함께 쿨한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7년간 애플을 사용한 셈이다.
그간 내 또래에서 흔치 않은 애플 장기 사용자로서 나름 애플, 아이폰을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기게 되었고, 급기야 작년 WWDC 2017에서 iOS11에서의 변경점을 보고 ‘어쩐지 위로 스와이프 하는 기계가 나올 것 같은데...’하더니 홈바를 사용하는 아이폰 X의 출시를 예측할 정도가 되었다.
애플은 이게 안되고, 저게 느리고, 요건 불편하다는 등의 안드로이드 팬 보이들의 시답잖은 비판은 비루한 안드로이드 초기버전을 힘겹게 쓰던 그때의 경험으로 손쉽게 실드가 가능했다. 그래도 애플이니까. 애플에게는 비판점을 모두 극복해 낼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기능이든 멋들어진 사과 마크든 디자인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의 비판을 수용하고 다시 안드로이드로 돌아가는 것은 에스프레소만을 즐기던 사람이 물탄 밍밍한 아메리카노로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나는 애플을 사랑한다. 기술은 잘 모르지만, 그들이 매번 노래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조화’가 내 눈앞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