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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망 the Amant Dec 30. 2019

2010년대에게

중3 당찬 소년은 10년 뒤 영혼을 갉아먹는 음료의 맛을 알게 되었다.

New Decade.

이틀 뒤면 2010년대가 막을 내린다. 내가 주인공인 이 세상에서는 시간의 객관적 지표로서 작용할 뿐인 '~~ 년대'라는 말이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샌님들에게만 의미 있을지 모르지만, 눈을 뜨면 보이는 각종 매체 미디어에서 오늘이 2010년대 마지막 주말이니, 새 연대의 시작이니 떠드는 통에 나는 마치 세상의 종말을 목도하고 있는 양 괜히 긴장하게 된다. 


90년대생. 

95년생인 나는 90년대를 살아봤고, 한 세기가 지나는 것도 목격하였으며, 심지어는 천년에 한번 온다는 새천년을 경험하였지만, 그것을 다 겪어봤다기에는 내 기억이 시간보다 한참 느려서 차라리 없다는 편이 낫겠다. 그렇다면 내 시대. 진정으로 내가 주인공이었던 시대. 어쩌면 내 마지막 전성기일지도 모를 시대는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지금, 고작 이틀 남은 2010년대임이 틀림없을 거다.


중학교 3학년.

우리 동네에는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존재하여 정해진 시험을 치러 합격해야만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일진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집-학교-학원뿐이었던, 결국엔 내 세계가 학교 안에 한정되어 있던 2010년의 쪼꼬만 아이의 단일한 목표는 게임 레벨업을 제외하고서는 '고등학교 입학' 안에 항상 존재해왔다. 사실 동네에 그럴싸한 인문계 고등학교라곤 두 군데밖에 없는 상황에서 시험은 의미가 없었지만, 목표가 주어진 한 달려가야 하는 것은 우리네의 거대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좋은 고등학교만 들어가면 뭐든 될 것이라는, "어떻게든 되겠지" 역사의 출발지점이었다.


스물여섯.

이틀 뒤면 스물여섯이 된다. 흠. 스물여섯이라고? 그러고 보니 2010년대의 절반을 성인으로 보냈고, 그중 대부분을 대학생 신분으로 지나쳐왔다. 사실 2014년부터 대학생이었으니 2010년대의 과반이나 차지한다는 충격적인 사실. 내게 2010년대는 정말로 참말로 '말' 같은 10년이었네. 2010년에는 고등학교라는 결승점을 향해.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대학. 연애 한번 못해보고 나라 지키러 끌려간 2015년의 봄엔 2016년 12월을 위해 살았고 복학 후에는 핑크빛 대학생활을 위해 1년 반을 불태웠다. 남들은 돈 주고도 못할 호사를 누리기도, 마음에도 심장이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순간도 있었지.


그리고 나는 아직도 '어떻게든 되겠지' 정신을 품고 산다.

남들과 달라지는 건 싫지만 똑같은 것도 꺼린다. 그래서 우아한 정신노동을 추구한다는 것이 10년간 허송세월을 하게끔 만들었다. 반성 같은 건 아니다. 10년 동안 후회해 봤자 변하는 건 없더라는 건 경험주의적 사례연구를 통해 증명된 법칙 같은 거니까. 다만 '스물여섯'이라는 네 낱말의 무게감이, 2010년대의 종말이라는 비극적 상황과 맞물려 '너는 어떤 어른이 되었니' 하는 질문에 직면하게끔 하는 현실 탓이랄까. 


꺾인다는 것. 

20대가 꺾였다. 2010년대가 꺾였고 5시까지 술 먹고 1교시 수업 꼬박 가던 체력도 꺾였다. 뒤돌아보면 커 가던 것이 죄다 꺾어져 있는 시기가 와버렸다. 주먹을 쥐던 손을 펴본다. 남아있는 건 가루 몇 톨뿐 아무것도 없다. 10년 전으로 돌아가 이제 3학년이라고 의기양양해 있던 꼬맹이가 보는 스물여섯은 분명 '지덕체'를 겸비한 멋진 어른이었을 텐데, 마주하고 있는 스물여섯은 어디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지체' 만을 겸비하고 영혼을 갉아먹는 '어른의 음료'를 아가리에 부어 넣는 큰 꼬맹이였다.


'서른 되면 정말 괜찮아져요?'

"XXX고등학교만 가면 괜찮아져." "힘들어도 인 서울만 하면 괜찮아져." "떨어져도 괜찮아. 어디든 대학만 가면 괜찮아질걸?" "군대만 전역해봐. 다 괜찮아질 거야." "아직 대학생이니까 괜찮아."..."어떻게든 되겠지" 

... "'어떻게든 되겠지' 하다가 되는 건 없어 임마. 니가 찾아서 해야지."

... 괜찮다면서요.

'서른 되면 괜찮아져요'. 인기리에 방영한 한 드라마를 꿰뚫는 한마디. 드라마는 진짜 웃기다. 둘이 만나서 공원 한 바퀴 돌 동안 한마디도 안 한 걸까? 만난 곳에서 한참을 걷고 나서야 "잘 지냈어요?"하고 묻는다. 스물여섯이 된 나는 이런 사소한 거나 의심하는 한심한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이럴 때마다 드라마는 우리네 삶과 상상도 못 할 괴리를 느끼게 한다.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떠드는 '서른 되면 괜찮아'진다는 말은 니들끼리나 통하는 말인 거고. 그래서 어쩔 건데. 하다가도 "정말 서른 쯤 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는 의심이 멈추지 않는다. 아무리 계획 없이 산다지만 명색이 서른인데...

그래서 나는 "서른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여기기로 했다. 늘 그랬듯이.


2010년.

류현진이 한화 이글스에서 커리어 하이급 퍼포먼스를 보여줬음에도 하위권 성적으로 마감을 했고,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천안함과 연평도가 공격당했다. 또 아이패드라는 것이 출시했고, 카카오톡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금. 류현진은 사이영상 2순위 득표의 세계 탑급 투수가 되었고, 김연아 키즈들이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 상태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카카오톡으로 수백 명의 인연을 만났다.

.

"당신이 변한다면. 세계도 변할 거야"

사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세계는 변한다. 그리고 나도 변한다.

.

2010년대야, 수고했다.

2010년대의 나야. 고생했다. 편히 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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