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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짱 Apr 24. 2019

엄마를 처음으로 떠나보내게 되었을 때

기록을 시작하며 적는 변명

엄마가 오기로 했을 때 나는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난해 이곳에 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생각했던 것은 떠나는 사람은 늘 나이며 엄마가 나를 떠나는 것은 엄마가 죽을 때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내게도 엄마를 생사와 무관한 이유로 떠나보낼 기회가 생긴 것인데, 막상 엄마가 온다니 마음이 적잖이 불편하기만 했다.

내 독일어 실력이 아직 그냥저냥인데도 급히 비행기표를 끊은 엄마가 적잖이 원망스러웠고, 한 지붕 아래서 장모를 모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엄마와 밖으로 잔뜩 나돌아다닐 계획을 짜고 나니 벌써부터 피곤한 듯 너무 부담스러워지고야 만 것이다.

실제로 나는 엄마가 와서 지내는 동안 엄마가 마실 커피를 타놓고는 사위를 피해 내가 학원 가는 시간에 맞춰 산책 나가려는 엄마가 마음 쓰지 않도록 서두르지 않는 척하느라 매일 학원에 지각했고, 학원 끝나고는 엄마가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트램을 놓치지 않으려 숨이 턱에 차도록 뛰었다.


네 달 만에 본 엄마는 여전히 계속 늙어가고 있었다.

눈 좋은 것이 자랑이던 엄마는 간신히 다초점 렌즈에 적응 중이었고 덕분에 갑자기 나타난 계단에 넘어질 뻔했으며 그럼에도 잘 보이지 않아 집안일이 예전 같지 않음을 여상하게 이야기했다. 잘 걷기 위해 연골 주사를 맞고 왔다며 나이가 들며 더 말라가는 손끝이나 잘 먹지 못하게 되는 신 음식 같은 것들을 입에 올렸고, 최근 쓰게 된 어르신 교통카드와 자신이 죽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생각 정리할 시간 많아진 내가 요즘 들어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유스>를, 알고 보니 엄마가 두 번을 보았고 자신의 것과 동일시하는 듯 그 청춘의 스러짐이 너무 가슴아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ㅡ내가 엄마를 박○○이 아닌 '엄마'로 봐온 세월의 무게가 새삼 실감되면서, 머리로 영화를 읽어온 나의 허영심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옆의 사람의 심정에는 눈 두지 않는 주제에 무슨 예술을 이해한다는 것인지.


그럼에도 엄마와 술 취해 소리 높여 다른 입장을 떠들었고, 여행 다녀온 주말 말고는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엄마가 설거지하는 거 그냥 보기만 하면서 일주일을 보냈다. 여행을 다닐 땐 엄마 잃어버릴까 봐서 엄마 팔을 꼭 안고는 주문도 내가 계산도 내가 길 찾기도 내가 오디오가이드 듣기도 내가 하며 나도 얼마간 엄마를 보살피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한 인생의 20여년은 엄마가 나를 보살폈고, 지난 몇년간 내가 딸노릇을 나름 파업했었지만, 앞으로 10년쯤은 이번처럼 서로 돌보고 그 이후에 내가 엄마를 보살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흔여섯 해를 살다 간 엄마의 엄마처럼 우리 엄마도 오래 함께할 테니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엄마를 몇 달에 한 번씩밖에 못 보게 되었고 그것을 언젠가는 후회하게 되겠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할머니의 기나긴 와병을 지겹다 말하던 엄마와 그 자매들도 얼마간 후회의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며─어차피 후회는 가져야 할 몫이니 내 삶을 살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내가 더 나은 삶을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엄마의 늙음도 내 후회도 머리로 잘 정리하면서 엄마의 방문을 치러 보내고 마지막 날,

엄마를 떠나보내는 공항에서 나는 한참을 울었다.

내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에도 내 드레스 투어를 함께하면서도 내 결혼식에서도 울었던 엄마이고 나는 또 너무나도 그 딸이어서 우린 계속 울었다. 뒤셀도르프 공항은 친절하게도 보안검색대 줄 서는 곳이 탑승층 한 구석에 유리창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그 유리창을 사이에 놓고 줄 서 있는 엄마를 보며 또 계속 울었다. 서양인들 사이에 혼자 서 있는 엄마가 슬펐고 왠지 모르게 엄마 줄만 천천히 줄어드는 것 같아 슬펐고 나에게 손 흔들다가 길 잘못 들어설 뻔하는 엄마의 헛걸음질도 슬퍼서 마냥 울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울었고 이게 울 일도 아닌데 왜 이러나 몰라 남편에게 말하면서도 울었다.

내 친구들, 나와 같이 일했던 선배들, 나와 술을 마셨던 이들, 이 도시에서 만난 이들, 온라인을 통해 아는 이들, 그 모든 엄마와 떨어져 사는 딸들을 떠올리며 내가 왜 이리도 많이 우는 것인지 생각했다.

엄마가 너무 늙어서일까. 내가 독립했던 적이 없어서일까. 같은 한국이 아니어서일까. 그러고도 너무 멀리 떨어져서일까. 언제 돌아갈지 몰라서일까.

그러고는 머리가 너무 아프고 기운이 없어 엄마 배웅을 위해 하루 빠진 학원 숙제를 급우가 알려주었는데도 숙제도 제대로 못하고 저녁나절부터 내내 잤다.


다음날 학원에 갔더니 마음만큼 컨디션도 엉망이었다. 그날따라 읽기 지문에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았고 듣기는 하나도 안 들리고 심지어 내가 말하는 영어를 급우들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이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것 하나가 부족한 단어들로 학원에서 너스레 떠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나를 멍청한 동양인으로만 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다시 가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돌아가면 다음 진로를 정하기 위해 휴식을 갖겠다던 웅변도 무색하게 하던 일이나 다시 할 테니까. 하지만 언제 독일어를 사람 답게 하게 될지도 모르겠고 지금 할까말까 고민하는 일자리는 설거지 아르바이트고 독일어가 나아진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고..

그런 혼란한 마음을 갖고 버티던 수업 시간이 끝나고 숙제를 내러 가니 선생님이 너희 엄마 잘 보내줬냐는데,

그냥 그때부터 눈물이 계속 났다.

남편의 어머니와 또래인 선생님은 당황도 위로도 않고 자기도 매번 그런다며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간신히 답했다.(사실 더 만들어낼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갈무리가 안 돼서 눈물 좀 찍어내다 포기하고 급우들에게 먼저 간다고 이야기하고는 화장실로 뛰쳐갔는데 거기서 또 다른 급우를 마주쳤다. 그냥 피하고 싶었는데, 놀란 그 언니는 괜찮냐고 나를 붙잡아 세우고 안아주고 같이 울었다. 마침 언니도 어제 같이 살던 딸을 전남편에게 보내고 온 터라며.

잘 추슬렀던 사람 내가 울린 것 같아 너무 미안해서 또 되지도 않는 영어로 떠듬떠듬 설명했다. 내가 엄마를 떠나보낸 게 처음이고 사실 울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우는지도 모르겠다고, 사실 오기 직전까지 회사를 다니느라 제대로 이별할 시간이 없이 떠나왔어서 이제 와서 터진 것 같다고..

영어가 모국어인 당신이 알아서 주워들으라는 듯 잔뜩 늘어놓은 단어들이 가닿았는지 괜찮다고, 슬퍼할 시간은 언제라도 필요한 거고 오히려 서로의 관계가 좋으니 슬프기도 한 거 아니냐는─너무 당연하지만 내가 내 마음속에 빠져 도출해낼 수 없었던 위로의 말들을 보태주었다.

엄마의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인 것을 들키기 싫어 도망쳤던 시간들 너머 내가 눈 감았던 사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엄마를 좋아한다는 것.


그 이후로도 나는 내리 몇 시간을 울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환승한 버스 안에서도 횡단보도 위에서도 계속 울었다. 아마 무심한 그들이라 그럴 리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그날 같은 하늘 아래 질질 짜던 동양인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 그러고도 마음이 나아지지 않아 이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다 쓰고 나면 울 만큼 울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등신같이 엄마가 사온 명란젓 엄마가 사준 와플 과자 엄마가 묵었던 작은 방 따위를 보면서 계속 더 울었다.

그렇다고 엄마가 딱히 보고 싶은 것은 아닌데.

이 슬픔의 정체를 알 수가 없다.

너무 힘들어서 엄마를 앞으로 못 오게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도대체 몇 번 엄마를 떠나보내면 이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 달 전에 만들어둔 이 글을 고쳐 쓰다 보니 눈시울이 또 붉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한국을 떠나 유럽 구주의 삼등시민 1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기나긴 변명을 기록해두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하였다.

남들처럼 거창한 포부도 원대한 목표의식도 없이, 나는 그냥 한국을 떠나 있기로 했다.

마침 좋은 구실이 있었고, 삶은 환상적은커녕 구차하기까지 하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었다. 굳이 공개적인 플랫폼에 기록하기로 한 김에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마음의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떠나서 이 모냥으로밖에 못 사는 게 나뿐이 아니라는 안심이나, 떠나 봤자 저 정도니 말뿐 떠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할 필요가 없다는 위안 정도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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