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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기린 Jun 27. 2017

시시함을 벗어던진 '박열'

이준익 감독 '박열' (이제훈, 최희서 주연)



"아나키스트도 독립운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리뷰하긴 참 어렵다. 소재가 좋다고 해서 영화 완성도가 높진 않아서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나도 모르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박열'은 소재가 빛나는 영화다.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일본인임에도 조선의 해방을 응원했던 가네코 후미코. 범상치 않은 주제다. 전형적인 독립운동가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최근 영화계 동향에도 딱 맞다.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갈등에 휩싸이는 '밀정', 가시밭길 가득한 독립운동의 여정을 그린 '암살'처럼 독립운동가들의 복합적인 모습을 그린 영화가 관객들의 좋은 평을 받았다.


'박열'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영화가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투쟁을 다뤘다면, 이 영화는 결이 다르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독립운동을 모의하긴 했으나 실천으로 옮기진 못한 '미수범'이다. 그런 그들을 일본은 여론의 희생양으로 만든다. 일종의 '시선 돌리기'인데, 관동대지진 발생으로 분노에 휩싸인 일본 국민에게 '조선인 탓'을 돌린 것이다. 박열과 후미코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상에 일본의 추악한 만행을 알리고자 한다.


특히 빛나는 건 신파를 집어던진 두 연인의 사랑이다. 영화 전반에 걸친 박열과 후미코의 관계는 서로 의존하면서도 동시에 주체적이다. 사상을 나눈 동지애라서 그런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여자의 모습을 최대한 지우려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후미코가 감옥에서 자서전을 틈틈이 쓰던 모습이나 그녀의 일생을 영화에 그린 장면이 그렇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후미코의 아련한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독립운동가와 그의 일본인 아내로 끝났을 법한 이야기를 '애틋한 동지였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로 만든 건 사극 영화에서 저력을 발휘하는 감독의 장기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민 흔적이 보이는 고증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영화 전체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감정과잉상태다. 쉽게 말하면 관객들은 아직 감정의 요동이 칠만한 장면이 나오지 않았는데, 영화 주인공들이 먼저 흥분해버린다. 관객들은 감정선을 잡을 타이밍을 놓쳐버린다. 두 주인공도, 그들의 친구들도,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듯했던 기자도 모두 감정연기에 몰입해 있으니, 반대로 관객들은 냉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재판 장면이 유독 아쉬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검사 심문 장면이나 감옥 생활 장면에서 지나치게 에너지를 많이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장면에서 감흥이 떨어지는 건 필연 지사다. 억지 감동을 유발하진 않았지만, 익살과 유머가 과했다. 영화 구석구석 좋았던 장면이 생각나더라도, 관람 후 느꼈던 아쉬움은 한동안 남을 것 같다.



배우 최희서가 브런치에 글을 연재했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이나 감독, 배우의 고민을 엿보고 싶다면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megaboxp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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