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긴기린 Oct 02. 2017

"피로는 폭력이다" 한병철 책 ‘피로사회’

현대인의 자기 학대를 관찰한 책 ‘피로사회’


아무 생각하지 말고 움직여라. 그러면 가능하다. 그는 그래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언젠가 나에게 고시생 룸메이트가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에 기상해서 9시 전까지 독서실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했다. 일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나는 그저 그가 신기했다. 하루는 그에게 비결을 물어보니 ‘무상’이라 답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는 생각을 지운다고 했다.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는지, 내가 왜 귀찮음을 무릅쓰고 아침 일찍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지’ 사색하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체되고 그러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하루종일 잡생각을 달고 다니는 나에겐 충격적인 말이었다. 물론 나도 자격증 시험이나 학교 시험을 앞두고 몇 일동안은 그렇게 지내본 적 있다. 그러나 최소 2년 정도 걸리는 시험을 앞두고 내가 그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들었다. 원하는 결과를 위해 기계처럼 나를 움직이고, 결과를 방해하는 요소라면 자아를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없애야 하는. ‘피로 사회‘ 서론을 읽자 매일 아침 악몽에서 깨는 것처럼 벌떡 일어났던 그가 떠올랐다.

침대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질병이 있다. 강렬한 첫 문장만큼이나 ‘피로사회’는 인상깊은 내용이 많았다. 물론 문장이 어려워 아무리 집중해도 한 문장, 한 문장 읽는게 버거웠다. 문장 자체가 이해가지 않아 고개를 가우뚱거린 적도 많았다. 저자가 말하는 ‘고유한 질병’은 바로 긍정주의다. 20세기 이전에는 ‘해선 안 되는 것’이 존재하는 부정주의가 이데올로기였다. 외부의 적, 질병, 특정 이념과 맞서 싸우면서 자아는 결속되었다. 반대로 현대사회는 긍정사회다. ‘할 수 있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다.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무언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생각. 결국 그 생각이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


자기개발서가 대표적이다. 할 수 있다는 긍정주의 덕분에 우리는 무언갈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성과와 결과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성과를 달성한 사람들의 말은 잘 팔린다. 저자만 바뀔 뿐 내용은 차이도 없는 자기개발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약을 섭취하는 것처럼 그들의 성공담론을 읽는다. 스스로를 또 착취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착취한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우울해진다. 저자는 이러한 긍정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여유없이 행동에 집착하는 행태를 지적한다.


특히 한나 아렌트의 책 ‘활동적 삶’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저자는 활동을 해야만 생산성이 보장되는 건 아니며 사색을 위해 긍정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긍정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긍정주의를 모토로 삼는 사회적 행태가 문제다. 때로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괜찮다. 피로해질 필요가 없다.


저자가 좀만 쉽게 서술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책 자체는 훌륭한 듯 하다. (친구가 읽으면 피로해지는 책이라 ‘피로사회’라고 ^^) 긍정의 강박에 시달려 필요에 따라 긍정적인 척했던 나에게 책은 위안이 줬다. 비록 2번 읽어야 이해가는 내용이었지만…책을 읽고 ‘나는 긍정적인 사람인가, 부정적인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해당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 긍정과 부정 양자택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관적이고 때로는 긍정적일 수 있다.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건 쉽지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를 긍정하다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자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P35 깊은 심심함
인간은 사색하는 상태에서만 자기 자신의 밖으로 나와서 사물들의 세계 속에 침잠할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니체;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깐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따라서 관조적인 면을 대대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인간 성격 교정 작업 가운데 하나이다.

P44 활동적 삶
이러한 강제사회에서는 모두가 저마다의 노동수용소를 달고 다닌다. 그리고 그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차이나 이견을 다루는 실력만큼 민주주의는 성장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