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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이 Jan 09. 2024

비우는 연습

도쿄소비일기

니시오기쿠보의 카페 쇼안분코에 갔다가 즐겨 찾는 편집숍 FALL에 들러 빨간 물뿌리개를 하나 샀다. 한 개를 사면 한 개를 버리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구석구석 오늘은 무엇을 비울까 버리기 변태처럼 물건들을 유심히 바라본다. '마지막으로 쓴 게 언제였더라?' '내가 왜 이 물건을 가지고 있지?' 그냥 버리기엔 아까운 물건들을 선별해 한 군데 모아보니 양이 꽤 된다. 물건을 좋아하지만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비울 때마다 나의 잘못된 소비를 인정하고 다음부턴 조심하자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심플하게 산다 책도 두 번 읽고,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도 두 번 읽었는데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한 번 읽어서 그런가? 집안을 정리하면 자신의 사고방식과 삶의 방식, 그리고 인생까지 극적으로 달라진다던데, 여전히 나는 제자리다.


버리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지갑 속 영수증부터,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 불필요한 물건부터 추억이 담긴 물건까지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최근엔 일본의 중고 거래 사이트인 메루카리에 잡지 POPEYE를 몇 권 팔았다. 옛날엔 잡지 사서 보는 걸 참 좋아했는데 요즘은 가끔 전자책으로 보거나 도서관에서 무료로 읽고 있어서 웬만하면 사지 않는다. 에세이 <희망의 발견>을 쓴 작가 실뱅 테송은 "15가지 종류의 케첩, 이런 것들 때문에 나는 이 세계를 떠나고 싶다"고 표현했다. 나는 이 세계를 온전히 더 잘 살고 싶어서 오늘도 비우는 연습을 한다. 물건을 비우며 마음도 함께 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짓누르고 있는 번거로운 짐을 모두 내려놓고 최대한 간소하게 비워진 내 공간과 마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쇼안분코 松庵文庫 


월, 화, 수 휴무 / 목, 일 9 : 00 - 6 : 00 금, 토 9 : 00 - 10 :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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