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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이 Jul 10. 2024

7월 2일

느리게 한국

여행 날 아침에는 신기하게 알람 없이도 눈이 저절로 떠진다. 아침 7시 전철역 근처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키치조지에서 한국에 있는 집까지 가는 길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키치조지에서 도쿄역까지는 전철로 30분이 걸리고 도쿄역에서 야에스 미나미 출구로 나가서 나리타로 가는 공항버스를 끊으면 된다. 비행기는 1시 25분 출발이고 무사히 인천 공항에 도착하면 와이파이를 찾고, 광주 가는 버스 티켓을 끊고 4시간 정도를 달려 유스퀘어 터미널에 가면 엄마가 마중 나와 있을 것이다. 여행을 가면 늘 그렇듯 여유 있게 시간을 잡고 출발했는데 오늘도 전철에서 인사사고가 났다. 최근 한 달 사이에 5건은 일어난 거 같다. 전철 지연으로 출근 시간대의 전철 안은 숨이 막힐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미타카에서 일어난 인사 사고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연이어 흘러나오고 자주 일어나는 일에 익숙해져서 인지 무덤덤한 사람들 사이의 좁은 틈에서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나와 더 이상 가족들을  볼 수 없는 누군가를 생각했다. 헤드폰으로는 소이에의 Freaky U가 흘러나왔는데 신경 쓰지 않는 게 날 위한 거라고 했다. 전철은 나카노까지 운행을 했고, 갈아타서 갈 수도 있었지만 짐도 무겁고 초행길이기도 해서 그냥 한 번에 갈 수 있는 중앙선 전철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한산해진 전철 안에서 40분 정도를 기다려 도쿄역에 갈 수 있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는 도쿄역. 공항버스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한국어가 벌써 반갑다. 1시간 10분 정도를 달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수화물 무게를 재는데 24킬로가 나왔다. 진에어는 15킬로까지인데 초과 요금이 1만 엔이 넘어서 급하게 무거운 짐 위주로 빼서 큰 에코백에 담아서 17킬로가 나왔는데 2킬로는 봐주셔서 다행이었다. 공항에서는 엄마한테 선물하기 좋다는 시세이도 톤업 크림을 찾아봤는데 없어서 스타벅스에 가서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커피 프라푸치노를 마시면서 핸드폰 충전을 했다. 진에어는 스타벅스랑 화장실이 가까워서 편하게 이용하고 시간 맞춰 비행기를 탔다. 좌석은 매우 비좁아서 허리랑 다리가 좀 아팠지만 부족한 잠을 몇 번인가 자고 일어나니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어가 신기하기도 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짐을 찾는 곳에서는 한국 아니랄까 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지정선을 넘어 고개를 쭉 내밀고 컨베이어 벨트를 노려보며 자신의 짐을 찾느라 바빴다. 짐을 찾고 게이트를 나가자 플랜 카드를 들고 가족, 친구, 연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리타 공항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애틋하고 생경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도시락 와이파이 창구는 출구 바로 앞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예약할 때 받은 큐알 코드를 스캔해 받을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 광주 가는 버스를 끊고, 씨유 편의점에 들러 물이랑 고추참치 김밥, 소시지를 현금으로 샀는데 오만 원권 현금을 내서 그런지 점원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거기다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목소리는 친절하게 한다고 했지만 표정은 심각하게 더 안 좋아져서 순간 나도 기분이 상하고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었던 코로나 시대가 좋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행을 하면 들른 곳, 먹었던 음식, 만나는 사람들의 말투와 표정까지 매 순간순간이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사소한 부분, 작은 친절과 호의에도 크게 감동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크게 실망한다. 편의점 직원을 만난 순간 '아 한국 사람들은 표정이나 말투가 너무 솔직해서 가끔 상처를 줄 때가 있었지.' 하고 생각하기도 하다가 친근감이 느껴지는 공항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를 만나면 금세 다시 '아 역시 한국 사람들은 가식적인 친절이 아니라 정이 있어서 처음 만났는데도 편하다'라고 느끼고는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성향이나 성격이 모두 다른 개인일 뿐인데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한국이라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는 건 아닌지. 도시의 인상은 그 도시의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건 아닌지. 일본에서 나는 어떤 한국 사람으로 비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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