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순례자가 되다 - <까미노 바이러스>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바욘 성모 성당 Cathédrale Sainte-Marie de Bayonne에 가서 미사를 보고 성채를 받아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성채는 세례를 받은 카톨릭 신자만 받아먹을 수 있다는데, 난 그날 궁금증에 그만 그걸 받아먹고 만 것이다. 미사 마지막에는 사람들이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감동이었다. 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평화를 빕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전 세계 성당에 공통으로 있는 미사의 한 의식이었다.
짐을 가지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St. Esprit 성당에서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안내서에 따르면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이 성당은 까미노Camino를 가는 순례자가 잠깐 들르는 곳이란다.
“A mixture of Romanesque and Gothic style, the original priory was a stopover for pilgrims on their way to Santiago de Compostela.
여기서 나는 내 첫 순례길의 안전과 나를 위해 기도를 했다.
St. Esprit 성당을 나와 Cambo-les-Bains을 지나갔다. 가을빛과 함께 짙은 갈색을 한 지붕을 한 하얀 건물들이 너무 멋졌다.
숙소에서 짐을 싸고 Cafe espresso를 마시며 명진 언니와 카톡으로 통화를 했다. 고맙다. 언니!
바욘역Gare de Bayonne(갸흐 드 바욘)에서 생장 드 피에 드 뽀흐트St. Jean de Pied de Port(이하 생장)로 오전 11시 41분에 출발했다. 창밖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속이 훤이 비치는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풍경의 강을 지났다.
마침내
순례자의 길 출발점인 생장에 도착했다.
큰 배낭을 둘러메고 역에 도착하니 생자끄 Sant Jeaque(불어로 성인 야고보를 뜻함)라며 두여인에 나에게 Bon voyage~ ( 봉 브아야쥐 : 즐거운 여행되라는 프랑스어)라고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내 마음만큼이나 순례자를 본 그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아직도 그 느낌이 생생하다. 고맙게 이런 응원이라니… 이건 조그마한 시작에 불과했다.
바로 언덕길 위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다. 1시 반에 도착했는데 사무실은 2시에 연단다. 프랑스인 2명, 까딸루냐(스페인 바로셀로나 지역을 말한다.) 사람 1명 이렇게 남자 3명과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안에서 열리고 들어 오란다.
금속 아티스트라고 소개한 순례자 사무소의 여인은 영어로 친절하게 순례길에 대한 설명과 첫날 겪게 될 피레네의 산맥의 높낮이가 그려져 있는 안내 종이와 프랑스 길에 있는 숙소 알베르게의 리스트를 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에게 순례자의 여권이라 불리는 크리덴샬Cridencial (2유로)을 주었다. 첫 번째 순례자 도장도 이쁘게 찍어서 말이다.
크리덴셜 도장을 찍어주던 탁자 옆에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껍데기를 2유로에 판매했다. 순례자 사무실 옆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동네를 돌아봤다.
바욘이 더 이쁘지만 스페인 국경에 있는 조그마한 마을답게 아기자기하다.
숙소에서 신을 중국인들이 신는 듯한 끝이 뭉툭한 남색 실내화를 동네 가게에서 5유로 주고 샀다. 동네 관광 인포메이션센터에 물어서 동네 까르푸 (그렇다. 프랑스 슈퍼마켓이지 까르푸는!)를 알려줘서 내일 필요한 음식 장을 봤다.
숙소에 돌아오니 알베르게 할머니가 어디 갔었냐며 기다렸다는 듯 말씀하셨다. 나에게 차와 쿠키를 내어 주신다. 귀엽다며 볼도 만지고 (할매 저 나이 많아여 ㅎㅎㅎ)
너무 귀엽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 생각하니 멀리 동양에서 온 여인이 기나긴 길을 간다 하니 기특하고 염려되고 그러셨던 게 아닐까?
숙소에서 금발의 짧은 머리를 한 하늘색 등산재킷을 입은 네덜란드인 안느 마리를 만났다. 그녀는 네덜란드부터 출발해서 프랑스를 다 지나 3달째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세상에! 1700km 이상을 벌써 걸었다고 한다.
아니 또 세상에! 그녀가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정보를 주었다. 오리송Orisson에 있는 알베르게는 겨울이라 문을 닫았다며, 생장에서 5 km 떨어진 온또Honto에 숙소를 예약해주었다. 고맙다. 그녀가 아니었음 초행길에 힘들 뻔했다.
그녀는 순례길에 대한 안내책자를 들고 있었는데, 나는 무턱대고 '가면 방법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무 책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녁에 한국인 2명이 숙소에 도착하더니 터억~ 하며 한국어로 된 순례자 길 안내책자를 건넨다. “신과 함께 가라 산티아고 가는 길”(니키앤프랜, 변정식 지음)라는 책이었다. 책이 좀 묵직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두고 간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안내책이 있으면 좋겠다’하고 생각을 했는데 “자 가지렴~”하며 나에게 덜컥 안내책을 주는 것이다.
이후 이 책은 나에게 순례길을 곳곳에 대해 안내를 해주었다. 이 책은 순례길에 역사나 그날 펼쳐질 길의 고도 등도 몇몇 지역 빼고는 매우 잘 정리된 책이었다.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은 좀 무겁다는 거다. 마냥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좀 무겁지만 유익하니 속으로 알 수 없는 대상에게 잘 보겠다고 인사했다.
생장의 순례자 알베르게는 무지 깨끗했다.
할매가 계속 청소를 하고 오후 6시 이전에는 어둑어둑해도 불을 안 켜셨다.
180cm 미터가 훌쩍 넘는 키에 은갈색 곱슬머리를 한 프랑스 순례자가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해서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더니 (알베르게 할머니가 식사를 미리 준비해줬다. 아마 미리 예약하고 식사를 주문한 듯했다.) 초보의 기운을 마냥 발산하는 나를 보더니 신발이며 내 가방 무게며 장비를 체크해줬다.
처음엔 왜 내 신발을 보자 그러나 했는데, 초보 순례자들의 난감한 부분을 미리 알려주려는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는 정말 프로? 순례자답게 하루 만에 피레네 산을 다 지나 더 걸어갔는지 다음날 론세스 바예스 Roncesvalles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몇 년이 지나고 그리 기억에 남는 사람이 그냥 몇 시간의 인연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