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우리는 영화 아님 책이니까> preview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영화평론가 moviestreet입니다. 새로운 직장에 자리를 잡고 적응을 해야 하다 보니까 글을 잠시 손에서 놓게 됐습니다. 사실상 2월에 개봉했던 <작은 아씨들> 칼럼이 마지막 글이었으니까 거의 반년 넘게 연재를 쉰 셈이네요.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생경한데 정말 그리웠습니다.
좋은 영화,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술을 벗 삼아 글을 쓰는 시간은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일 겁니다. 좋은 텍스트를 접하고, 사유하고, 비평하는 일련의 과정은 일종의 수련처럼 제 자신을 예리하게 벼려줍니다. 한 편의 글을 발행할 때마다 더 성장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순간순간이 참 좋습니다.
관련해서 아인슈타인이 배움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우리가 한 분야에 대해 갖고 있는 지식의 범위를 한 개의 원이라고 가정해볼게요. 그리고 원의 테두리와 접촉하는 원 외부의 영역을 배움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가정해봅시다. 해당 분야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원은 면적은 증가하겠죠.
그와 동시에 원을 둘러싼 테두리 역시, 팽창할 것입니다. 그건 곧, 우리의 배움이 도달하지 못한 영역과 더 많이 접촉하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신기하지 않나요. 테두리 외부 영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한 배움이 결과적으로 우리를 더 큰 배움의 영역으로 인도한 셈이니까요.
최근에 건축학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서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을 읽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책입니다. 강수량에 의한 품종 차이가 어떻게 예술, 사회, 건축의 차이로까지 이어지는지 인문학적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읽다 보니까 동양 특히, 우리나라의 문화유적이 궁금해졌어요.
고대 서양 건축은 자연을 독립적 대상으로, 고대 동양 건축은 자연을 유기적 대상으로 견지했다고 합니다. 그 관점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동양 건축물의 세부적인 특성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왜 조선과 고려의 단청과 처마 모양은 다를까?' 하는 궁금증 같은 것들이요.
그래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를 구매해서 읽어볼 예정입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그래서 재밌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아는 만큼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그 보이는 풍경을 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한편으로는 기대도 됩니다. 앞으로 제가 어떠한 관점으로 얼마나 더 큰 세상을 보게 될지.
그래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금까지는 영화 칼럼, 에세이만 연재해왔잖아요. 이제는 책에 대한 칼럼도 함께 연재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책을 접했을 때, 제가 배운 것들 그리고 제가 느낀 것들을 인용 없이 오롯이 제 글로 풀어내 볼 생각입니다. 이 여정이 어디까지 저와 여려분들의 배움의 영역을 확장시켜줄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어차피 우리는 영화 아님 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