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ie Street Dec 01. 2020

옛날 옛적 할리우드의 Viva La Vida

영화와 배우에 대한 타란티노의 헌사와 추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삶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룬다. '조금씩 마모돼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불시에 종식돼버린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전자의 이야기는 작품 내부에서 발견할 수 있고 후자의 이야기는 작품 외부에서 발견할 수 있다(뒤에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이 작품은 1969년에 있었던 샤론 테이트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타란티노 감독은 1969년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브래드 피트, 디카프리오, 마고 로비라는 탁월한 배우들을 능수능란하게 지휘함으로써 인간 삶의 흥망성쇠를 스크린에 풀어낸다.


1. 전자의 이야기: 조금씩 마모돼가는 삶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50년대에 서부극으로 유명세를 떨쳤으나 이제는 조연 내지 악역으로 점차 하락세를 타고 있는 '릭 달튼'과 명목상으로는 그의 스턴트 맨이나 실제로는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인 '클리프 부스'를 주로 좇는다. 릭이 서부극 전문 배우인 까닭은 서부극이 그 자체로 갖는 텍스트적 함의 때문이다(물론, 타란티노 감독이 <장고: 분노의 추격자>, <헤이트 8>과 같이 서부극을 차용한 작품을 제작할 정도로 서부극 마니아라는 사실도 무사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 미국에서 서부개척 시절에 대한 비판적, 반성적 의식이 보편적이지만 릭이 전성기를 호가했던 1950년대의 미국인들에게 서부극은 과거의 영광과 낭만의 상징이었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릭이 조연 내지 악역을 전전하면서라도 서부극에 출연하려 하는 것은 그가 과거의 영광을 구가하고 있는 인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릭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타란티노 감독은 몰락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릭의 모습을 직유와 은유를 번갈아가며 소상히 담아낸다.


 촬영장에서 아역 배우 마라벨라와 사담을 나누는 씬에서 자신이 더 이상 최고가 아닌 쓸모없는 존재라고 울먹이는 씬, 릭의 대기실에서 촬영장으로 향하는 길이 내리막길인 설정, 촬영장에서의 실수를 복기하며 광기에 가까운 자기혐오를 하는 씬이 그렇다. 자기혐오 씬의 다음 씬에서 릭은 마라벨라가 당돌하게 충고했던 바대로 '연기의 방해물을 피하고 100% 끌어올리려고 노력'함으로써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상기의 씬이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인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헌사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분명, 영화인들의 몰락을 다루고 있지만 하나의 씬을 위해 자기혐오를 거듭하고 열정만으로 기염을 토해내는 노력과 애정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타란티노 감독의 그런 의도는 릭의 옆집에 이사 온 '샤론 테이트'를 다루는 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녀가 극장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관객의 표정을 살피는 모습은 상기의 릭이 모습과 맞물리며 하나의 영화가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수반되는지 그리고 배우에게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 관객으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나 몰락은 필연적이다. 모든 영광은 결국, '옛날 옛적의 이야기'로 자연풍화되기 때문이다. 릭의 스턴트맨을 자처하는 클리프 역시, 릭의 전성기 시절에 대역을 한 것을 인생의 황금기로 여기지만 그 시절은 이제 오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전성기를 기억해줄 당시의 절친했던 친구 죠지는 그를 기억해주지는 못한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릭이 촬영하는 동안 릭의 고급차를 몰며 릭은 손에 넣었지만 자신은 결코 손에 넣지 못한 명성과 부를 스턴트맨으로서 간접 체험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 역시, '6개월' 후라는 플롯으로 곧 좌절된다.


 릭은 평소에 탐탁지 않아했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서부극 출연 제의를 받고 이탈리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당시,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는 미국 서부극을 모방해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서부극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하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릭은 이탈리아에서 나름의 명성을 얻고 결혼까지 하는 등 다시 성공의 반열에 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총체적인 관점에서 이는 몰락의 수순에 지나지 않는다. 릭의 작품 세계는 미국 서부극에서의 주연 - 미국 드라마에서의 조연 및 악역 - 이탈리아 드라마 순으로 자신이 경멸했던 세계로 침전한다.


 클리프의 몰락은 릭의 몰락과 비례한다. 릭은 재정상의 문제로 클리프를 해고한다. 클리프는 기꺼이 수긍하지만 그 이후의 삶이 지금까지의 폭력적이고 목적 없는 행동 양식으로 견주어 봤을 때, 썩 희망적이지 않음은 자명하다. 영화가 이처럼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답지 않게 조곤조곤했던 이 영화는 드디어 본색을 유혈이 낭자한 혈전을 펼친다. 이 혈전에서 클리프는 릭 대신 위험에 처하고 부상을 당함으로써 스턴트맨의 역할을 다했고 릭은 전성기 때 촬영했던 영화의 명장면을 재현한다.


 그러나 클리프와 릭의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영광으로의 귀환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와 영광을 둘러싼 이 모든 것은 Coldplay의 명곡 <Viva La Vida> 속, 'Never an honest world. but that was when I ruled the world(내가 통치하던 그때처럼 세상에 더 이상의 진실함은 존재하지 않네)'이라는 가사처럼 영광이 배제된 옛날 옛적 할리우드의 이야기일 뿐이다.  


2. 후자의 이야기: 불시에 종식돼버린 삶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앞서 말했듯 '샤론 테이트 사건'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 비극적인 사건의 전말은 대략 이렇다. 테리 멜쳐라는 유명 인사가 찰스 맨슨이라는 사이비 교주의 음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찰스 맨슨은 그에게 앙심을 품고 신도들에게 그의 저택으로 가 그를 살해하라고 사주했다. 하지만 신도 일당은 찰스 맨슨이 이사를 가고 샤론 테이트가 이사를 온 사실을 몰랐고 그녀와 그녀의 친구 4명을 찰스 맨슨이라 오인해 잔인하게 살해했다. 샤론 테이트가 유명 배우이자 셀럽이었다는 사실과 임신 8개월 차였다는 사실로 인해 이 사건은 할리우드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원스 어폰 어 타인 인 할리우드>에서 샤론 테이트는 살았고 되려, 살해를 작정한 히피 침입자들이 릭과 클리프에 의해 잔인하게 죽음을 맞는다. 이러한 점에서 이 이야기는 타란티노식의 (찰스 맨슨 일당에 대한) 복수극이자 (샤론 테이트에 대한) 추모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유혈이 낭자한 폭력 씬이 나열된다는 점과 폭력(클리프)이 폭력(찰스 맨슨 일당)을 응징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정의를 성취한다는 점에서 이 결말은 지극히 타란티노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타란티노식의 그러한 결말은 옛날 옛적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이들의 무의식 속 바람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타란티노 감독은 비극적인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십거리로만 치부됐던 샤론 테이트를 이 영화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했고, 친구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으며,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 한 사람으로만 다뤄준다. 그리고 추모의 피날레는 영화의 끝, 한바탕 혈전이 출동한 경찰에 의해 수습되고 집 앞을 서성이던 릭을 샤론 테이트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자며 자택으로 초대하는 씬을 통해 완성된다. 타란티노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 릭은  이제 그 역할을 다했고 이제 영화 속으로 그녀와 함께 사라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예찬 <델타 보이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