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돌이표처럼 다시 등장한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수가제'
선거철만 되면 회자되는 문장이 하나 있다.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 관용어처럼 사용되는 이 문장은 2002년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TV토론에서 국민들을 향해 건넨 인사말이었는데 이후 널리 인용되며 권 후보의 입지를 다지는 역할을 했다. 나는 이 말을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다. “반려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우리 가족은 2011년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아왔다. 첫째인 반냐는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둘째 애월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에 입양했다. 이명박부터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 번째 정권을 함께 겪고 있는 셈이다.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는 동안 고양이들은 유년기에서 청년기, 장년기에 접어들었다. (고양이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달라서 이제 두 고양이는 사람 나이로 64세, 56세 정도로 추정된다.)
‘우다다’와 커튼 등반을 즐기던 청소년 고양이는 이제 햇살 아래서 일광욕을 즐기는 조용한 ‘묘르신’이 되었다. 내 고양이들이 생애 주기를 착실히 거쳐온 12년 동안 삶이 개선되었을까? 반려인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
태초에 ‘진료비 표준수가제’ 공약이 있었지만...
반려 인구가 늘었다는 사실을 가장 또렷하게 느끼는 순간은 아무래도 선거 시즌이다. 선거가 다가오면 각 정당의 후보들은 앞 다투어 반려동물과 반려인을 위한 공약을 내건다. 지난 2017년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도 거의 모든 후보들이 유기동물보호소 확충, 개 도살 금지 등 다양한 동물 관련 공약을 공개했었다.
특히 진료비 기준을 마련하는 표준수가제 공약은 반려인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는데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모두 실행을 약속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2017년에 했던 약속은 2022년인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진료비 표준수가제는 수의사회 등 업계의 반발에 부딪혀 진척이 더디다. 아직까지도 동물병원마다 수술비, 진료비가 제각각이라서 A병원에서는 45만 원이던 반려동물 수술비가 B병원에서는 200만 원이 된다. 반려동물 진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조차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도돌이표’ 공약 말고 실천 의지 보였으면
그렇다면 이번 20대 대선의 반려동물 공약은 어떨까? 골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대선에도 등장했던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수가제’ 공약이 도돌이표처럼 다시 돌아왔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진보당 김재연 후보 모두 반려동물 진료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전보다 진일보한 공약들도 눈에 띄기는 한다. 심상정 후보의 공공 장례시설 확충과 대규모 번식장의 단계적 폐쇄, 반려인 의무 교육화 등은 동물복지와 관련해 유의미한 약속들이다. 또 이재명 후보의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지방정부 전담부서 신설 약속, 김재연 후보의 코끼리와 돌고래 등 단계적 전시 중단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후보들의 공약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 현 정부 출범 당시 공약이었던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수가제만 봐도 정권 말기인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 결국 반려인들은 아직까지도 각자도생이다. 우리 가족 역시 매달 고양이들의 병원비 명목으로 적금처럼 돈을 모으고 있다. 나이든 두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언제가 될지 모를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수가제를 목 빼고 기다릴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부디 내 걱정이 기우이기를 바란다. 진료비 표준화도, 반려인 의무 교육도, 동물 전담 부서 신설도 다음 정부 임기 내에 무사히 안착되었으면 좋겠다. 후보들이 일단 의지는 보였지만 재원 조달과 법 개정이라는 큰 산을 넘겨야 가능한 공약이 태반이다.
이를 위해 우리 반려인들도 다음 정권의 동물 관련 정책에 내내 꾸준히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인간 둘과 고양이 둘, 도합 넷인 우리 가족도 호롱불 같은 눈으로 주시하겠다. 공약이 헛구호가 되지 않도록. 21대 대선에 또 같은 공약이 도돌이표 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