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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혜 Sep 26. 2023

‘방송국 놈들’의 마지막 회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떻게 불공정까지 사랑하겠어, 내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거지


두 해 전 여름, 내 이름으로 첫 책을 냈다. ‘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으로 방송작가로 살며 겪은 일들을 엮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았지만 노동 문제와 맞닿아있어 에세이 분야가 아닌 사회·정치 분야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책을 본 지인이 내게 말했다. “자기 이야기를 썼을 뿐인데 사회 고발이 됐네요.” 그의 말은 과연 일리가 있었다.


소위 ‘잘 팔리는’ 책은 되지 못했지만, 책을 낸 이후 방송가의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여러 번 생겼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 마이크와 펜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생경한 체험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 덕분에 나는 비슷한 시간을 거쳐온 사람들과 만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Y와의 일이다.



글쓰기로 시작된 인연.      ⓒ pixabay


최연소 방송작가 Y의 사연


Y를 만난 건 책을 낸 해 가을의 일이다. 그 시기 나는 우연한 기회로 전·현직 방송작가들 대상 에세이 수업을 개설했다. Y는 수업을 신청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20대 참가자로, 낮이면 수업을 위해 글을 쓰고 밤이면 물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늘 수업 시작 시간이 다 되어서야 바쁘게 입장했고, 때로는 숨이 턱까지 찬 채로 수업 중 합류하기도 했다. 하루는 Y의 화면이 온통 어둡고 흔들렸다. 알고 보니 야간 물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수업에 들어온 것이었다. 나는 Y의 열정과 성실함에 매번 감복하는 한편, 그가 어떤 서사를 품고 있는 사람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궁금증이 풀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수업에서 우리는 각자 쓴 에세이를 낭독했는데, Y가 자신의 방송 이야기를 낭독할 글로 택한 것이다.


Y는 사무직 직장인으로 살다 자신의 꿈을 좇아 지난 2020년 한 종교 방송의 신입 작가로 전직을 하게 된다. 설거지부터 대본 정리까지, 방송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았던 Y의 급여는 한 달에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종교 방송사의 특별모금방송에는, 그러니까 Y가 방광염에 걸려가며 프롬프터를 넘겼던 바로 그 방송에는 10억 원 가까운 돈이 모금됐다.


이 불합리한 간극을 견딜 수 없었던 Y는 한 종편 방송사의 신규 탐사보도팀으로 자리를 옮긴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건을 취재하는 동안 그는 작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자긍심이란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팀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가 연출진을 따로 불러 팀을 해체할 거라고 귀띔했다는 것. 소문은 사실이었다. 메인 피디의 말 한마디에 팀 전원이 순식간에 실직자가 됐다. 팀원들은 물티슈부터 믹스커피까지 마구잡이로 챙겨 집을 향해야 했다. Y는 그 무겁지도 않은 믹스커피와 물티슈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착취와 실직이 거듭되는 방송가에서 Y는 나날이 소진되어 갔고, 결국 몇 번이나 공공장소에서 쓰러졌다. 도무지 이 괴로움을 견딜 수 있을까 하던 시기,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만났다. 에세이 수업의 진행자와 참여자로. 또 비슷한 고통을 겪어본 사람과 사람으로. 30대 전직 방송작가와 20대 전직 방송작가로.


Y의 발표를 듣다 마음이 부지불식간에 무너졌다. 그건 그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체불당해서도 아니고, 자신이 해고된다는 사실을 직접 회의록에 타이핑해서도 아니었다. Y가 떨리는 목소리로 “기회만 닿는다면 다시 카메라 뒤로, 방송 제작 현장으로 달려갈 것 같다”라는 대목을 낭독하던 순간이었다. 나는 볼펜을 내려놓고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임의 진행자로 평정을 유지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다시 그 상황이 된다고 해도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방송에 진심인 마음, 늘 방송을 우선순위로 두고 살아온 마음을 나 역시 잘 알기에.  


저는 '조용히 떠난 중' 안 할게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이 있다. 시스템을 개인이 바꿀 수는 없다는 무기력이 담긴 이 말을 방송가에서는 수도 없이 썼다. 유독 불편한 게 많은 중이었을 Y와 나는, 누구보다 먼저 절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고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Y와 나는 ‘떠난 중’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다시 ‘절’로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라디오와 TV 프로그램의 프리랜서 작가가 되었고, 이후로도 노동 현장에서 부당하다고 느끼는 지점을 나름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직으로 일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 Y와 나뿐만은 아니다. 절을 바꿀 방법을 궁리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온 맑은 눈의 방송작가입니다.    ⓒ pixabay



아, 얼마 전에는 Y가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가 에세이 수업에서 썼던 바로 그 글이 한 일간지 신문에 3부작으로 연재된다는 얘기였다. 그 소식을 들은 날은 내내 뿌듯하게 배가 불렀다. 우리는 떠나지 않고 펜을 드는 방식을 택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있는 여기, 방송국에서 우리 이야기를 계속 써나갈 작정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서,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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