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하고 있다. 프로그램 성격상 평소에 뉴스를 체크하는 것도 업무의 하나다. 자연스럽게 하루에도 미담부터 노동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사를 읽는다. 그 가운데 유독 보기 힘든 기사가 있는데, 동물학대에 관한 내용은 매번 심호흡을 하고 클릭하게 된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열 살과 열두 살, 두 고양이의 가족이라서 그럴 것이다.
푸들 학대범 A 사례
불과 한 달 전, 포털 사이트에서 충격적인 기사를 읽게 됐다. 군산에 사는 한 40대 남성 A가 수개월 동안 푸들 19마리를 입양해 학대하고 죽인 뒤 시체를 유기했다는 내용이었다. A는 수십 마리에 이르는 입양견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서 개들의 사체가 발견됐다. 두개골과 하악 골절 등 학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지난해 12월 2일 군산경찰서는 A를 긴급 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도주 우려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이후 A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으로 진행됐다. 다수의 기사에 따르면 공공기관 재직자였던 A는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학대 기사는 몸서리를 치게 될 정도로 끔찍한 사건이 많지만, A 사례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기이했다. 왜 다른 견종이 아닌 푸들만 입양했을까? 왜 공공기관에 재직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심신 미약을 주장하고 있을까? 왜 19마리나 입양하고 죽이기를 반복했을까? 이렇게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무 제약 없이 풀려나도 되는 것일까?
반려인 계속 느는데... 동물학대 검거율과 송치율 오히려 감소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른바 ‘반려동물 1500만 시대’라는 말이 흔하게 쓰일 정도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동물학대 발생건수 역시 최근 10년간 급증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2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의원이 경찰청과 대검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물학대 발생건수는 2011년 98건에서 2020년 992건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물 학대 범죄는 증가하는데 검거율과 송치율, 기소율은 되려 감소하고 있었다. 2011년 90%를 넘기던 검거율이 2020년에는 75%에 불과했다. 송치율은 76.1%에서 55.7%로, 기소율은 47%에서 32%로 크게 줄었다.
동물학대가 무서운 이유
이런 사건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동물학대가 약자 혐오 범죄의 시발점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 보스턴 노스이스트 대학과 동물구조단체 MSPCA가 1975년부터 1996년까지 21년 동안 동물학대범 268명을 조사한 연구 결과가 대표적이다. 이들 연구 결과 동물학대범 가운데 45%는 살인, 36%는 가정폭력, 30%는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학대는 가장 약한 개체에게 가해지는 범죄 행위다. 연쇄살인범 강호순도, 여중생 살인범 이영학도 키우던 개를 살해한 전력이 있다. 동물학대 범죄자에게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사회적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야기한 푸들 학대범 A 씨의 경우, 강력한 처벌과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한 달도 되지 않아 20만 명을 넘어섰다. (청원이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낼 경우 정부가 공식 답변을 하게 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반려인의 입장에서,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푸들 학대범 사건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신상공개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정도의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사건에 또다시 ‘가벼운 벌금형’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지 않기를 바란다.
또 한 가지, 어쩌면 엄중한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예방 아닐까. 동물학대가 범죄행위라는 걸 알리고, 사회 전반에 정착시키기 위해 지자체 차원의 고민 역시 필요하다. 내가 거주하는 경기도의 경우 하천에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것은 범죄행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게시된다. 동물을 학대할 경우 동물보호법에 의해 처벌을 받으며, 동물학대는 곧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홍보물인 셈이다. 이런 사례가 지역마다 늘어나기를 바란다.
열 살과 열두 살 고양이의 가족으로 내게 새해 소망이 있다면 두 녀석들이 올해도 무탈하게, 건강하게, 마음대로 게으름을 부리며 따끈한 햇볕을 많이 쬐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디 2022년에는 포털사이트에서 끔찍한 동물학대 기사를 발견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내 바람이 아주 허상은 아니기를, 까드득 대며 사료를 먹는 고양이 옆에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