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학교 마치면 친구 집 가서 노는 게 일이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친구 집 갈 일도 드물게 되고 우리집에 친구를 데리고 올 일도 드물어졌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은 재밌습니다. 친구의 공간에 축적되어 있는 친구의 취향, 친구의 스타일 등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친구의 공간에 가면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냉장고 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나라별 도시별 마그네틱'
'책으로 가득 차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어 보이는 빼곡한 책장'
'테이블마다 놓여있는 꽃'
'책상 아래 놓인 뜨개질함'
'한편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우쿨렐레'
'거실 티브이 앞에 깔려있는 요가 매트'... 같은 것이요.
친구는 평소엔 소비를 별로 하지 않는데 여행지를 가면 빠짐없이 마그네틱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었습니다.
친구가 말을 참 잘한다 싶었는데, 그 배경엔 독서력이 있는 것이었죠.
말도 거칠고 힘도 센 친구는 월급날이 되면 스스로 꽃 한 다발씩을 사서 퇴근하는데, 그게 그렇게 좋답니다.
책상 위가 엄청 엉망인 동료는 퇴근 후 집에서 꼼꼼한 손재주로 뜨개질을 한다고 합니다.
노래방 가자면 그렇게 빼던 친구가, 우쿨렐레를 동영상을 보며 배우고 있대요.
특별한 운동을 하지도 않는데 옷 태가 특히나 좋은 친구는 거실 티브이 앞에 앉을 때 늘 요가매트에서 스트레칭과 요가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내 친구에게 이런 모습이?' '내 친구의 이런 숨은 노력이?' '내 친구에게 이런 의외의 취향이?' '내 친구에게 이런 특기가?' '내 친구에게 이런 경험이?' 등의 새로움과 놀라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친구 집 놀러 가는 묘미죠.
예쁜 카페에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빛 좋은 공원에서, 이름표 딱 붙은 회사 사무실 책상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친구나 동료의 취향과 경험은 그들의 공간에 들어가야 알 수 있습니다.
새로움과 놀라움으로 친구의 취향과 경험을 만나게 되면, 내 속에 나만 알고 있던 나의 취향과 경험도 술술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친구 집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놀다가 "집에 가야 하는데..." 하다가 "그냥 자고 갈래?" 하는 레퍼토리로 이어지는 거 아닌가요. 그러고 바닥에 담요 깔고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사실 화려한 조명도, 이쁘게 차려진 커피와 케이크도, 비싸고 화려한 파스타도 필요 없습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취향과 경험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 만들어집니다. 취향과 경험을 나누고 나면 진짜 친구가 되죠.
그래서 "우리집에 놀러와"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다 커서 재미난 것도 딱히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새로운 모임 가기는 부담스러울 때가 있죠
회사도 다니고, 전세든 자가든 돌아갈 집도 있고, 오랜 친구들도 있고, 남자 친구나 남편도 있는데... 그런데 왜 뭔가 재미난 일은 없는 것 같을까요. 주위를 보니 다양한 모임들도 많긴 합니다. 정기권을 끊고 강의를 수강하기도 하고 기수별로 모임을 진행하기도 하네요. 그런데 막상 새로운 모임에 가서 "이것을 배워보겠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볼 테야"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왠지 힘도 없지 않나요. 강의장, 호프집, 스터디룸 등에 들어갈 때 '아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왠지 두려울 때가 있죠.
그냥 친구 집 놀러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싶은데요.
별 거 내세울 거 없어도, 굳이 어색한 내 소개 안 해도 '취향, 경험'만으로 저는 충분히 매력 있는 사람인데요.
말재주 없고 낯 가려도 '취향, 경험' 나누는 건 딱히 어려울 것 같지도 않죠.
혼자서 즐기던 '별 거 아니던' 취향과 경험도 나누면 '별 거' 되는 거 참 재미있지 않나요.
친구 집 가듯 가볍고 느슨하게 가서, 디테일하게 취향, 경험 나누고 헤어지는 그런 재미있는 모임 한 번 가보고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