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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ebangchon Jul 05. 2020

가족이란 무엇인가

<삼시세끼>, <바퀴 달린 집>, '전통적 가족주의' 밖의 새로운 가족

한국 TV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요즘의 트렌드가 캠핑, 자급자족, 요리, 초대, 여행, 먹방 등임을 절로 알 수 있다. '돈 벌면서 놀러 다니는' 연예인들의 재미난 이벤트 같은 생활이 부럽기도 하면서 간접 여행 체험의 재미도 있어서 <삼시세끼>, <바퀴 달린 집> 같은 류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가끔 본다.


그러다 우연히 <삼시세끼>, <바퀴 달린 집>을 연이어 보게 되었는데 문득, 그들이 보여주는 것이 앞으로의 '새로운 가족의 형태', 혹은 이미 그렇게 진화하고 있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일상을 떠나 주어진 조건에서 자급자족하고 만족하며 서로 부족한 점을 메꾸면서 느리게 살아가는 '힐링' 이상으로 그들이 몸소 보여주는 것은 '혈연', 'Family Tree'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인들의 구성인, 함께 밥 먹는 '식구'이자 '가족'이다.


동등한 개개인이 모여 이룬 가족


각자의 취향이 있는 개개인이 모여 한 공간에 모여 산다. 모인 개개인은 동등하다. 기존 가족의 구성처럼 누가 내 패밀리 트리의 위고 아래이며 동등한 선상인지 층위를 그려낼 수 없고, 그에 따라 권위가 위에서 아래, 혹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게 짜여지지가 않는다. 또한 가족 내 부여된 역할 이름인 아버지, 어머니, 딸, 아들 등이 없기에 당연히 주어진 역할이나 기대 따위도 없다. 그들 사이에서 나이에 따라 연장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고, 배우나 연예인이라는 그룹 내에서의 선배-후배 따위의 위계는 있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서로의 역할과 위치는 이제부터 함께 정해 갈 뿐이다.


<삼시세끼 어촌편5> 의 한 장면


tvN <삼시세끼>를 보면서 고기를 잡으러 배 타고 나가는 유해진=아빠, 집에서 세끼 요리를 전담하는 차승원=엄마, 그들 사이에서 심부름과 할 일들을 찾아서 하는 손호준=아들이라고 머릿속에 아주 쉽게 패밀리 트리를 그렸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게 얼마나 '전통적 가족주의'에 익숙한 나의 편협하고 손쉬운 끼워넣기였는지! 유교적 가족주의를 말하는 전통적 가족주의를 머리로 거부하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실은 이들의 역할은 "누가 아빠 할래, 누가 엄마 할래" 한 다음 정한 게 아니다. 잘하고 즐겨하는 것을 위주로 그 역할이 분배되었다. 요리를 즐겨하고 잘하는 차승원이 요리를, 배 운전면허가 있고 낚시를 즐기는 유해진이 낚시로 바다 식재료를 구해오는 것을, 특출난 기능적 기술(?)이 없는, 혹은 두루두루 뭐든 주어진 것을 잘하는 손호준은 요리 보조와 불 피우기 등을 한다. 손님으로 온 이서진은 부지런함 대신 육지의 먹거리들을 한 손 가득 담아 들고 왔고,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경치나 보는 듯해도 눈 벌게지게 손호준 옆에서 불도 피우고, 설거지도 하며, 마늘도 깐다.


바깥일과 집안일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

나처럼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통적 가족주의의 역할 이름에 이들을 어렵지 않게 끼워 넣을 수 있는(유해진=아빠, 차승원=엄마, 손호준=아들) 사람들이 가족주의에서 벗어나지 않고 이 프로그램을 즐긴다고 해도 여전히 놀라운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바깥일을 하고 온 아빠 유해진이 요리할 때 유독 자기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차승원=엄마에게 도리어 불만이고, 제발 시켜 달라고 거듭 요청하는 장면이다. 그리해서 '쏨뱅이 매운탕'을 끓이기 전 육수를 내려고 넣어 끓이던 '다시마를 건지는 일'을 하게 된 유해진은 너무나 기뻐한다. 매운탕 끓이는데 모두가 다 냄비 주위에 스탠바이 한다.


유해진=아빠는 바깥일(낚시)로 쏨뱅이를 다섯 마리나 잡아 왔지만, 오랜 시간 외로이 바다에서 끈기로 얻어온 수확물을 자랑하지도, 그런 자기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내 할 일 다 했다고 집에 돌아와 양말 대충 벗어 문턱에 아무렇게나 두고 발만 닦고 방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잡아온 물고기 손질할 차승원=아내가 힘들지 않을지 되려 걱정한다. 그러고 나서 손호준=아들이 불 피우는 것을 함께 하고 이서진=손님의 안부도 챙기고, 다시마 건지는 일로 요리를 도울 수 있어서 행복해한다.


바깥일은 하지 않고 '안일'인 요리만 하는 차승원=엄마는 '안일'만 한다고 해서 그 역할이나 존재가 바깥일 하는 양반보다 하나도 작게 치부되지 않는다. 도리어 주어진 재료를 활용하여 무슨 메뉴를 할지 정하고(심지어 생선이나 해산물 등이 주어질지 아닐지도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녁 먹을 시간과 요리에 걸릴 시간을 가늠하며, 직접 요리하는 능력을 높이 인정받아 삼시세끼 집의 가장 큰 존재로 인정받는다.


전통적 가족주의에서 바깥일은 중한 반면, 안일은 당연한 것 혹은 집에서 노는 일로 치부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는 우리, 즉 가족주의를 거부하면서도 거기에 깊이 찌든 우리는 안일하는 사람의 고충, 고단함, 살림 기술을 보며 한 번 놀라고, 바깥일 하고 온 사람이 바깥일 안일 구분 없이 함께 하는 모습, 심지어 안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에서 또 한 번 감탄해야 한다.


그들은 서로 혼자 바다에 나간 사람을 걱정하고, 집에서 끼니 챙길 생각할 사람을 걱정하고 서로가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데 힘을 쓴다. 바다 나가는 사람에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오라는 말을 잊지 않으며, 때론 도시락도 싸 주며, 불을 보다 쉽게 지필 수 있는 '강력햐'를 만들고, 요리를 할 줄은 몰라도 건질 줄은 알고 마늘 깔 줄은 알아 다행이어서 그런 것들을 자발적으로 한다. 우리가 가족 내에서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을 이들이 눈 앞에서 직접 보여주고 있다.


대화를 하여 서로를 알고 돌보는 것, 그것이 가족

<삼시세끼>가 하루 세 번 준비하고 요리해 먹는 것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가족 역할의 이상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면, tvN <바퀴 달린 집>은 틈틈이 차 안에서, 트레일러 내부에서, 바깥 벤치에서 서로에 대한 얘기를 하며 각자의 삶을 챙기고 나누는 모습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보여준다.  


<바퀴 달린 집>의 한 장면


시간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나간 일도 꺼내어 나누고, 손 뻗으면 만져지는 거리에서 내 얘기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너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질문은 서로가 아는 시간의 반경을 넘어 개인의 과거,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도 뻗어간다. 그리고는 배가 고픈지 서로 챙기고, 뭐가 먹고 싶은지, 뭘 해 먹을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날, 흑돼지 김치찌개, 회, 뿔소라, 성게비빔밥이 한꺼번에 식탁에 오른다.


<바퀴 달린 집>의 한 장면


이미 야외 식탁에서는 흑돼지 김치찌개와 회, 뿔소라가 한가득 준비되고 있는데, 잠깐 트레일러에 무언가를 가지러 온 공효진은 여진구가 성게를 좋아하고 성게비빔밥 해 먹고 싶다고 한 것을 기억하여 '너 성게비빔밥 먹고 싶지?' 하며 트레일러 주방에서 성게 비빔밥을 한 그릇 만들어 준다.


개개인이 모인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각 개인의 취향과 선호는 무시되지 않는다. '흑돼지 김치찌개와 회, 뿔소라가 많으니 네가 먹고 싶은 성게비빔밥은 다음에 먹으렴.' 하며 큰소리로 선호를 밝히지 않았던 구성원의 바람을 가볍게 치부하는 일은 이들 가족 사이에선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의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듣고 있었기에, 집단 내 효율성이 개인의 선호를 우선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삼시세끼>에서도 쌈채소를 좋아하는 유해진의 식성이나 쑥갓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 차승원의 식성 등이 무시되지 않는다.


부엌에서 한 명(보통/절대적으로 엄마 혹은 아내)이 효율적으로 단시간에 끼니 차리기를 전투적으로 해내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선호 중 한두 가지만 선택되어야 할 때 상대적으로 권위 있는 자의 선호가 우선시되고 나머지는 나중으로 밀리는 것이 '말도 없이 벌어지는' 게 전통적인 가족 내 자연스러운 모습인 반면, 동등한 개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가족 내에서 어느 한 명의 선호가 다른 이의 선호에 가려지거나 무시되는 것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선택을 해야 한다면 서로 대화를 하여 방법을 찾거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말도 없이 알아서' 암묵적으로 권위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를 챙기고 돌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 아닌가. 가족이라는 이름이 개인의 평온한 안식처이고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나의 편인 것이라면 대화를 나누어 나의 속을 보려 하고, 나의 취향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함께 챙기는 저들이 가족이 아니면 무엇인가.


'저들처럼 여유 있다면 우리 가족도 다를 바 없어.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하는 마음이 들지만, 저들이 하는 대화는 실제 가족들 사이에선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론 아무 말 안 하는 게 더 가족답다. '아무 말 안 해도 통하는 사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데 그런 사이가 가족이 아닌가 가만히 핑계를 대볼 뿐이다.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해.'라고 하는 순간 이미 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저 깊이 뿌리내리고 자라나고 있을지 모른다.  


(아는 건 별로 없는데) 가족은 무슨 가족?!


마침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가 요즘 하고 있다. 제목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는 않았었는데, 오늘 오후 나는 이 드라마의 내용을 집약해서 한 번에 알 수 있을 만한 핵심 씬(scene)을 보게 되었다.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한 장면


아빠(정진영)가 밖에서 다 큰 성인 아들과 그 아들의 아들을 데리고 집에 온다. 아내는 물론 두 딸과 아들까지 다 불러 모은 상태다. 그 자리에서 과거 교통사고를 내어 한 아이 다리를 절게 만들었고, 그 죄책감으로 그 아이를 지금껏 돌보고 있었다는 것.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공놀이도 하고, 취직 자리도 알아봐 주고, 여태껏 돌보아 '두 집 살림' 하듯 혼자 비밀스럽게 큰 짐을 지고 살아오고 있었노라 실토한다.


"사람이 사람을 책임지는 일이 만만해 보여요?"

끝까지 아버지에게 아무 말하지 않는 큰딸에게 할 말을 하라고 부추기자, 큰딸(추자현)은 이렇게 말한다. 교통사고를 냈으면 신고를 하는 걸로 책임을 졌어야지 무턱대고 사람을 책임지는 것으로 그 죄를 갚는다고 하고 지금껏 그것을 했냐고. 이것은 우리 가족의 마음을 들여다보거나 달래지도 못하면서 그 엄청난 일을 홀로 해 온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자 안타까움이었을 것이다.


"나랑 의논이라도 하지 그랬어?"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큰 일을 혼자서 알아서 처리하고 가족 내 오해만 쌓아온 남편에게 아내(원미경)가 한 말이다. 삼십 년을 넘게 함께 살아오면서 저런 엄청난 일을 홀로 비밀로 지고 온 남편을 내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내라는 이름이 의미 없기에 '졸혼'을 하는 것, 이제야 하는 것이 억울해 보인다.


"그냥 쭉 미워해."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해 버린다. 30년 넘게 아무것도 몰랐는데 가족이라니.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내에는 많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있다. 살면서 진짜 힘든 순간 진짜 내게 힘이 되는 사람은 '가족뿐이야' 하면서도 실제론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가족일 때가 많다. 또한 어떤 구체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지 않더라도 가족 내 주어진 이름과 역할을 해 내는 사이 자연스레 상처가 생겼을 수도 있고 가족 내 권위의 층위에서 그 상처가 묻혔을 수도 있다. 켜켜이 쌓여온 그런 상처는 각자의 속에서 서로를 원망하는 독으로 작동하기가 쉽지, 상처를 아물게 해 줄 대화의 시작점으로 발설되어 나오기는 쉽지 않다. 가족 간에 그런 것을 새삼스레 꺼내 보이는 것이 민망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도리어 더 큰 상처가 될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실은, 그런 것을 꺼내어 이야기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서로 무엇이 상처가 되었고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어루만지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서로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어떻게 돌보아 줄 수 있을까. 가족이어서 당연하게 알 수 있는 것이란 없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삼시세끼 '차승원의 레시피'를 검색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바퀴 달린 집 촬영지' 검색하면서,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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