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인물, 모카아저씨
SNS나 미디어를 통해 론드리프로젝트가 소개되고 난 후
오픈 초기부터 빨래방카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방문도 잦았다.
많은 사람들 중 주말에 한 가족이 카페에 방문했는데 사연인즉슨 아버지께서 강원도 동해에서 세탁소를 20년넘게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는 따님과 함께 카페를 운영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전문 세탁기술이 있으신터라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가볍게 얘기 후 보내드렸다.
방방곡곡에서 많은 분들이 방문하셔서 창업비용, 매출구조, 제품현황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셨다.
초반에는 그분들이 가지는 궁금증들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었지만 방문이 더욱 늘어날 수록
의미없는 창업컨설팅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 같아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7년 전부터 이 아이템을 생각했었다는 대기업마트 및 백화점에 납품하는 유통회사 대표님부터
내년까지 100개 이상 똑같은 컨셉으로 할 예정이라고 엄포를 놓는 중견기업 대표님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이런 방문과 만남이 잦아지게 되어질수록 손님이 카페에 들어오면 일단 관상과 행동을 살펴 본 후
런드리카페 창업에 관심있어서 온 사람인가 파악하는 버릇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한 남자가 카페 건너편 집 앞에서 몇시간째 힐끔힐끔 카페를 보고 있었다.
덩치는 크고, 핸드폰을 만지작 만지작하고 있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지만 그 누군가는 오지 않았다.
몇시간동안 계속 보고있다가 카페에 들어와 아이스 모카라떼 진하게 주문을한다.
목소리는 허스키하다.
프랜차이즈 전문으로 하는 아저씨인가보다.
그러고도 몇시간 후 계속 카페 앞을 서성이다가 돌아가게 되었다.
다음날도 카페 앞을 서성이었다.
몇일 후 부터 노트북을 갖고 와서 아이스모카라떼를 시켜놓고 하루종일 무언가를 타이핑한다.
과연 이 대낮에 노트북을 작업하며 있는 저 아저씨는 누굴까.
나와 런드리크루를 번갈아가면서 일을 했는데,
의문의 인물인 그 아저씨는 11시 마감 직전에 와서 진한 아이스 모카라떼를 시키고
테이크아웃잔에 얼음도 한 가득을 부탁하는게 그의 루틴이었다.
어떤 날에는 얼음만 부탁하는경우도 있었다.
한두번은 기분좋게 드렸지만,
매일 부탁하는경우가 있어 우리를 냉장고로 취급하는건가라는생각에 약간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그 후로 나와 런드리크루는 그 아저씨를 모카아저씨로 부르기로 했다.
"오늘 모카아저씨가 얼음 달라고 해서 줬어여. 대표님."
"응, 알겠어. 도대체 그분 그 얼음으로 뭐 하려는걸까? 냉장고가 없는걸까, 에어컨이 없는걸까?"
의문이 많이 쌓여갈때쯤
어느 날 그 의문의 모카아저씨는 나에게 명함을 주며 자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며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작가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였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구나.
그때부터 한층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몇달이 지났을까 모카아저씨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매일 나타나던 사람이 어느날 나타나지 않으니 궁금했다.
런드리크루에게도 모카아저씨의 안부를 물었지만 이들도 본 적 없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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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와중에 나는 마포구 서교동에 '워시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론드리프로젝트 2호점을 열게 되었다.
2호점 워시타운을 열고,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찾아올때 마다 근처 망원시장에 가서 막걸리나 술한잔하곤 했었는데 망원역 건너가는 횡단보도에서
낯익은 남자를 발견했다.
모카아저씨였다.
나에게 약간 취기도 있긴 했지만 너무 반가운 마음에 모카아저씨! 아니...대표님! 이라고 소리쳤다.
"저 해방촌 런드리카페 사장이에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분도 반갑게 끌어 안아주셨다.
작업실이 망원동에 회사가 있었는데, 해방촌이 시끄러워지는것 같아서 망원동으로 아예 이사가셨다고 한다.
근데 머지않아 망원동도 갑자기 핫플레이스가 되는바람에 여기 못살겠다고 한다.
"어떻게 대표님이 가시는 곳마다 그렇게 핫플레이스가 되나요?"
"대표님 힙스터시다. 우리가 대표님을 모카아저씨라고 부르는것 아세요?"
"저 여기 근처에 워시타운이라고 2호점 만들었어요. 꼭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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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론드리를 운영하다가 보면 자주 찾아와주시는 분들의 방문 덕분에 힘이 되는경우가 있다.
항상 모르는 사람들만 만난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처음에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한마디 한마디 나누다가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관계가 된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찾아와주니 고맙고 반갑고 그렇다.
그러다가 2년 계약이 끝나 다른 동네로 이사간다고 인사를 하면 참 아쉽다.
서울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넓은 세상에서 이런 관계들이 생기니 참 좁은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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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론드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네번째 에피소드로
다른 활동에 바빠 글을 쓰고 수정하는게 오래 걸렸다.
그동안 조금씩 적어놓고, 마무리를 맺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오늘 월요일은 꼭 네번째 인물을 소개해야지 마음먹고 해방촌 론드리프로젝트에 오는 순간
런드리크루의 우유배송메모와 함께 반가운 소식을 발견했다.
"우유 옴, 모카아저씨 컴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