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온 Jan 15. 2024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



花(꽃 화), 樣(모양 양), 年(해 년), 華(꽃이 피다 화, 빛나다 화)


한자대로 번역하면


‘화사하게 핀 꽃 모양이 빛나는 한 때’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지던 그때였을까? 아니면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굳이 화장을 하지 않아도 백옥 같은 피부의 스무 살 한창 아름다워지기 시작한 때였을까? 생각해 보면 또 다른 때가 밀고 들어온다. 그럭저럭 기억을 들추다 보니 내 삶도 참으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출렁댔다.



그전에 나에게 있어 화양연화란 어떤 기준으로 새겨져 있는지 정리해 볼 일이다. 꽃처럼 빛나던 한때... 내가 가진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발휘했던 때, 그때인 줄 알았다. 회사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아 프로그램 계획, 진행, 섭외, 결과 도출까지 오롯이 혼자 다 해냈던 적이 있었다. 정말 내 한 몸 불태워 행사를 마쳤고 끝나고 나니 가루만 남은 느낌이었다. 최선을 다해 일을 처리하는 커리어 가득한 내 모습이었던가... 지나고 보니 그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다.



12월 한 달, 갑자기 이사가 결정되고 번갯불에 콩 굽듯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가지고 갈 짐을 정리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또 얻어졌다. 내 한 몸 불사르며 일할 때 입었던 정장용 블라우스가 50여 벌 가까이 옷장에 모셔져 있었다. 찾아도 없어 급하게 구입해 입은 검정 목티가 정리하다 보니 여섯 벌이 나왔고 검은색 정장 바지는 비슷한 모양이 열 벌이나 있었다. 그때의 나를 기억해 보았다. 처음 자격증 따고 아무것도 모를 때 덜컥 입사해 경력단절로 살다 직장 생활 시작한 나 스스로가 참 부족해 보였나 보다. 일을 모르면 물어서 일하면 되는 거고 옷이야 단정하게만 입으면 될 것을 기죽지 않으려고 겉모습으로 한껏 나를 드러냈나 보다. 돌아보니 일은 잘(?) 했지만 자존감이 바닥인 내가 보였다.



이제 다시 정장 블라우스를 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을 일이 생기겠냐마는 다시 일을 한다면 그때처럼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던 옷들을 정리하고 싱크대 가득 쌓아만 두었던 유행 지난 그릇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외투와 정장, 가방, 구두도 따로 모아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했고 꼭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을 이웃에게 나누었다. 무작정 끌어안고 쌓아두며 살기보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낡은 것은 버리고 쓸만한 것은 나누었다.



정리 후 훨씬 깨끗하고 넓어진 집을 보니 내 마음이 가볍다. 쓰지도 않으면서 쌓아두고 언젠가는 쓸 거라며 미련만 가득했던 일상에 버리고 나누고 정리하는 가벼운 마음이 들어찼다. 가벼운 마음에서 여유가 생겨나고 긍정의 생각이 조금씩 자리 잡는다. 비우니 더 행복해졌다. 24년 새해부터는 집 가까운 곳에 일자리가 생겨 출근하게 되었다. '난 이만큼 배웠고 이런 일을 했던 사람이니 그런 일은 못해.' 나에게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나를 낮추니 내 스스로가 대견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우니 행복하고 낮추니 아름다워지는 내 모습, 복잡한 일이 생겨도 당황하고 흥분해서 일을 처리하기보다 멀찍이 떨어져서 상황을 바라볼 여유가 생긴 나, 속상한 일이 있어도 다른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하기보다 천천히 곱씹어 생각하며 인과관계를 따져보려 하는 이전보다 조금 성숙하고 평화로워진 내 모습이 자랑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렇다. 지금이다. 바로 지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해방일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