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의 미학
배우자의 불륜을 알게된 두 남녀, 리첸(양조위)와 차우/첸부인(장만옥). 그들은 같은 아파트의 집주인 아주머니께 세를 내어 들어사는 두 집이다. 그들 부부는 같은 날 이사를 오고, 공교롭게도 배우자들이 서로 바람피는 걸 알게된다.
끊임없이 혼자 남겨진 둘은 저녁을 사러 나간 길에서 자주 마주치고, 리첸이 무협소설을 쓰는데 도움을 달라고 첸부인을 초대하면서 둘이 글을 쓰기 위해 만난다.
아무런 베드씬 없이, 감독이 숨겨놓은 장치들을 읽어야하는데, 절제된 장면만큼이나 관객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첸부인은 가녀리고 긴 몸매의 소유자로 끊임없이 치파오를 갈아입고 등장하는데, 그 치파오가 붉은색일때 그리고 치파오 위에 붉은 트렌치코트를 걸칠 때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또한 ‘오늘은 집에 가지 않을래요’라는 직접적인 대사와 택시 안에서 리첸에게 머리를 기대는 장면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마구 자극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장면이 없고 그저 암시만 난무한다. 자극적인 영상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은 살짝 여기서 짜증이 날 수도 있다.
아름다운 영상미로 유명한 왕가위 감독답게, 매 장면마다 아름답게 연출되는데, 리첸이 신문사에 밤 늦게 근무하며 내뿜는 담배연기, 비가 쏟아지는 골목길에서 둘이 조우하는 장면, 골목길 밑에 위치한 야시장의 식당으로 오가는 계단이 대표적이다. 감독은 그들이 골목길에서 조우할 때, 건물 안 쪽에서 촬영하여 창문의 쇠창살 사이로 그들을 내다보는 촬영기법을 택하였다.
첸부인이 리첸 방에 숨어들었을 때 자수가 놓여진 그녀의 분홍색 어여쁜 슬리퍼가 등장한다. 싱가포르에 리첸이 가게 되었을 때 그 방에서도 똑같은 슬리퍼가 등장하는 걸 보면, 둘의 만남은 분명 이루어졌다.
그치만 첸부인은 남편을 잊을 수 없는 사람이었고, 급기야 몇 년 후 예전에 세 들어살던 곳을 방문하는 장면에서 감독은 그녀에게 아들이 있음을 암시한다.
리첸도 그 곳을 다시 들러보지만 그곳에 그를 반기는 건 바뀐 주인뿐이다.
화양연화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을 일컫는다고 한다. 배우자의 불륜이 언제 시작되었을지를 궁금해 하던 리첸은, 첸부인을 좋아하면서, ‘언제나 시작은 아무도 모르게 일어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간관계에서는 언제 시작되는지 모르게 우정도 사랑도 시작된다. 첸부인의 눈물이 한 방울 흐르는 장면에서 그녀도 리첸을 좋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한 명대사들도 감독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이다.
배우자가 자신을 떠나가 있는 그 기간 동안 리첸은 다시 예전에 좋아했던 무협소설을 찾고, 쓰기 시작한다. 결혼생활은 그가 좋아했던 것들을 이루는 자아를 잃어간 시간이었고, 배우자가 떠난 지금 다시 좋아하는 것(자아를)을 찾기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자기가 좋아하는 것(자기의 진모습)을 인정해주고 긍정해주는 첸부인을 그는 사랑하게 된다. 그의 진정한 모습을 격려해주고 바라봐주는 첸부인을 좋아하게 된 그는, 자기자신을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 첸부인은 그를 배신한 남편을 버리지 않고, 그와 아이도 낳고 살고 있는 모습에서, 그 또한 하나의 선택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최초의 선택에 충실한 그녀의 선택. 그 댓가로 얻게 된 고통은 그녀가 감당할 몫이다.
이 영화 내내 나오던 배경음악, 그리고 냇 킹 콜의 키사스 키사스도 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와 그럴싸하게 잘 어울린다.
깨알같이 재미난 집주인 아주머니와 만취했던 그의 남편의 연기도 재미나다.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배우들의 옆모습, 복도에서 내다보며 찍은 카메라 앵글, 장면들이 시적이다. 드러내놓지 않고 절제된 배우들의 감정연기도 이 영화를 완성한다.
섬세한 장만옥의 옆얼굴, 길게 위로 빼서 칠한 아이라인, 위로 틀어올린 머리는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컨트롤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살던 곳을 방문했을 때 늘어뜨린 긴 머리스타일로 그녀가 한층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중경삼림처럼 풋풋한 양조위는 아니지만, 중년의 아름다운 양조위 또한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두 주연의 연기가 열일한다. 양조위의 깊은 눈매는 말해 무엇하랴!
그는 지나간 일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해 모든 것을 볼 수는 있겠지만 이제 희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