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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29. 2020

하와이 대표요리에 얽힌 엉뚱한 사연

고딩들이 만들어낸 하와이 대표요리, 로코모코

하와이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로코모코(Loco moco)를 한번쯤은 먹어보기 마련이다. 스테이크, 바베큐, 파스타, 샌드위치 등의 미국요리는 처음 몇 번은 맛있지만 삼사 일 주구장창 먹다보면 익숙한 음식이 당기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럴 때 뜨끈하고 찰진 밥과 간장이 들어간 소스, 익숙한 맛으로 한국인들을 구원하게 되는 요리가 바로 이 로코모코이다. 모양새뿐만 아니라 맛까지 일본식 함박스테이크와 거의 같은 요리라고 해도 무방하며, 기름진 요리 속에 부대끼는 한국인의 속을 산뜻하게 달래주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하와이 요리하면 로코모코를 연상할 정도로 유명한 요리이지만 의외로 로코모코의 역사는 길지 않다. 만들어진 년도와 만들어진 장소까지 그 과정이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역사가 70년도 되지 않는 현대의 창작요리이다. 이름에 얽힌 사연 또한 구체적이다. '로코모코'라는 이름은 언뜻 듣기에는 귀여운 어감이지만 뜻을 들여다 보면 황당하기가 그지없다. 스페인어로  "미친 콧물(crazy snot)"로 번역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디즈니 영화 코코(Coco)에 나왔던 노래, "조금 미친(Un Poco Loco)"의 그 로코가 맞다.


이런 황당한 이름을 지은 이들은 하와이에 살던 고등학생들이었다. 때는 1949년, 빅아일랜드 동쪽 힐로(Hilo) 지역의 작은 그릴 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스포츠 클럽 활동을 함께 하던 힐로 고등학교의 10대의 소년들이 경기가 끝나고 나면 매일 같이 방문하던 식당에서 특별한 주문을 했다. 돈이 없어 2,3 달러짜리 디너 메뉴는 사먹기 어려우니 싸고 배를 채울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식당의 주인이던 이노우에 부부(일본계로 추측, 아쉽게도 그들의 식당은 1964년에 문을 닫았다)는 이들의 요청에 따라 접시에 밥을 가득 담고 큼직하게 빚은 햄버거 패티를 하나 올렸다. 그 위에 그레이비 소스를 올렸고 소년들과의 합의 끝에 가격은 30센트로 책정이 되었다.


요리를 맛본 소년들은 환호했다. 누군가의 장난스런 제안에 따라, 이들은 합심하여 이 새로운 요리의 이름을 지어보기로 했다. '로코(Loco)'에 대한 아이디어가 먼저 나왔다. 멤버 중 하나였던 조지 오키모토의 별명이 '미친놈(crazy)'었던 탓이다. 마침 학교에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있었던 조지 타카하시가 수업에서 쌓은 지식을 적극 활용하여 '크레이지'를 스페인어인 '로코'로 바꾸어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것만으로 부족했는지 나머지 친구들과 함께 뒤에 붙일 말을 고민했는데, 단순히 '라임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모코'를 붙였다고 한다. '콧물'이라는 뜻도 모른 채로 말이다. '미친 콧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은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로코모코의 창시자(?) 중의 하나인 조지 타카하시 씨의 최근 사진 (출처: www.eastbaytimes.com)


이 엉뚱한 십대들은 자신이 장난스럽게 이름 붙인 이 요리가 하와이를 대표하는 요리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친구의 별명에서 '로코'라는 이름을 떠올려낸 조지 타카하시 씨의 인터뷰에서 그 이후의 사정이 조금 드러난다. 타카하시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에 가고 직장을 얻느라 로코모코가 이렇게 유명하진 줄도 모르고 살았다고 기억한다. 스포츠 클럽 친구 중 대다수의 친구가 대학 진학을 위해 빅아일랜드를 떠나 오아후 섬이나 미국 본토에 자리를 잡았고, 타카하시 본인 또한 고향을 떠나 시카고에서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구강외과 의사가 되어 캘리포니아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이런저런 삶의 과정을 겪는 사이, 로코모코는 힐로 지역의 명물이 되었다. 나아가 각종 요리 채널과 여행 채널이 이 요리를 소개함에 따라 하와이의 다른 섬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각지의 레스토랑에 로코모코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타카하시 씨에 따르면, 남아 있는 스포츠클럽 멤버들과는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라스베가스에 모여 자신들의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한다고 한다. 로코모코를 먹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엉뚱하고 즐거운 추억을 함께 기억해주는 것이 그들의 한결 같은 바람이라고 한다.



<로코모코 레시피>


*재료(1인분)

 -고기 패티

다진 소고기 170g

소금, 후추, 카옌 페퍼 적당량

오일 및 버터(패티를 굽는 용도)


-곁들임 용

대파 채썬 것

쌀밥

달걀 프라이


-그레이비

비프 스톡 1컵 또는 따뜻한 물 1컵+고형 비프스톡

간장 2 tsp

우스터 소스 1 tsp

케첩 1 tsp

설탕 1 tsp

전분 2 tsp


*조리법

(1) 다진 소고기를 뭉친다. 팬에 굽기 직전에 겉면에 소금, 후추 간을 넉넉하게 한다. 굽기전에 가운데를 움푹하게 살짝 눌러주면 팬에서 고기가 수축해도 평평한 형태가 유지된다.


(2) 잘 달군 팬(무쇠 팬이나 스테인레스 팬 추천)에 오일을 두르고 소고기 패티를 올린다. 한면이 다 익어서 고기가 표면에서 잘 떨어질 때쯤 뒤집어서 양면을 익힌다.


(3) 작은 볼에 그레이비 재료(비프 스톡, 간장, 우스터 소스, 케첩, 설탕, 전분)을 미리 섞어 둔다.


(4) 고기를 구운 팬에 잘게 썬 대파를 볶는다.


(5) 대파를 볶던 팬에 그레이비 소스를 붓고 적당한 점도가 될 때까지 약불에서 저어준다.


(6) 달걀 프라이를 굽는다.



(7) 접시에 밥, 햄버거 패티, 그레이비, 달걀을 순서대로 올린다. 잘게 썬 대파와 카옌 페퍼로 마무리한다.




따뜻한 밥과 육즙이 넘치는 패티, 간장과 케첩 맛이 느껴지는 그레이비가 조화를 이룬다.



반숙 계란을 터뜨리면 그 절묘한 조화에 탄성이 터진다. 누구나 사랑에 빠질 법한 맛있는 요리, 70년의 짧다면 짧은 세월 동안 자신만의 오롯한 위치를 차지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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