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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29. 2020

이케아 미트볼의 원조?

지금으로부터 5년 전쯤, 이케아에 처음 방문했던 날을 기억한다. 한국 최초로 문을 연 이케아 광명점까지 지하철을 탔다가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이케아 정류장에 내리기까지, 빈 배낭 가득 기대와 호기심을 채우고 1시간 가까운 길을 떠났었다. 버스 창 밖으로 사람들과 건물들의 풍경이 쉼 없이 바뀌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소문이 자자한 이케아 미트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왜 이렇게 이케아 미트볼이 궁금했을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주범은 아마도 '미트볼'에 대한 경험 부족이 아니었을까 한다. 당시 '미트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대형마트에 가면 쭉 늘어서 있는 '3분 미트볼' 따위가 전부이다시피 했다. 동그랑땡 같은 한국식 고기완자도 엄밀히 말하면 미트볼의 일종이기는 하다. 하지만 '미트볼'이라는 이 외래어에서는 왜인지 토마토소스를 범벅하거나 포크로 찍어먹어야 할 것 같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이케아에 들어서면 바로 미트볼을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식당가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각양각색으로 꾸민 '쇼룸'에 감탄한 것도 잠시였다. 거실, 안방, 부엌 등을 이상적으로 재현해놓은 공간을 지나 소파, 식탁, 의자 등 온갖 가구를 섹션별로 모아놓은 코너를 지나는 데도 한참이 걸렸고, 이쯤이면 식당이 나올까 하는 시점에서 조명과 패브릭, 장난감 등 각종 소품이 이어졌다. 마침내 식당가에 도착했을 때는 온갖 시각적 자극에 지쳐버린 상태였다. 식당을 가득 채운 인파를 겨우 가로질러 정신없이 트레이에 미트볼을 올려 담고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처음 맛보게 된 이케아 미트볼은 기대만큼 훌륭한 맛은 아니었다. 부드러운 포테이토 매쉬와 완두콩이 새콤달콤한 붉은 잼과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이케아 푸드코트와 미트볼  - 사진출처: 이케아 코리아


1층 계산대를 지나면 나타나는 스웨덴 식료품 코너에서 나는 냉동 미트볼 한 봉지를 들었다 놨다 하며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냉동 미트볼은 내려두고 스웨덴 사람들이 미트볼에 꼭 곁들인다는 링건베리잼 만 골라 들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무게 때문에 자꾸 옆으로 쓰러지는 배낭을 바로잡으며,  나는 '진짜' 스웨덴 미트볼을 만들어보리라 결심했다.


이케아 나들이 바로 며칠 뒤 동네 마트에서 큰 맘을 먹고 다진 소고기 한 팩을 사들었다. 유튜브에서 마음에 드는 레시피 동영상도 하나 골랐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서 둥글게 뭉친 고기 조각을 뒤집어가며 굽고 밀가루를 볶아 그레이비소스를 만들고 링건베리잼을 곁들였다. 촘촘한 식감의 고소한 미트볼과 새콤달콤한 링건베리잼, 버터향 가득한 매쉬드 포테이토가 완성되었다. 이케아에서 느꼈던 아쉬운 마음은 링건베리잼을 바른 미트볼 한 입에 사르르 녹아내렸다.


미트볼은 스웨덴어로 큇불라(köttbullar)라고 불린다. 유튜브에서 접한 어느 스웨덴 셰프의 말에 따르면, 스웨디시 미트볼의 정체성은 고깃덩어리 그 자체가 아니라 같이 조합하는 재료에서 근거한다고 한다. 스웨디시 미트볼을 구성할 때 반드시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주장이다. 미트볼, 그레이비소스, 링건베리, 매시드 포테이 도가 바로 그 요소들이다. 이케아의 미트볼도 이 요소들을 반영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케아의 저력 때문인지, 이제 이케아 하면 미트볼이고 미트볼 하면 이케아인 등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많다. 하지만 스웨디시 미트볼의 역사는 세계의 다른 미트볼 요리들에 비해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스웨디시 미트볼의 기원에 관한 가설 하나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한 적이 있었다. 18세기에 오토만 제국으로 망명을 갔던 스웨덴 국왕 찰스 7세가 터키 체류 중 그곳의 미트볼 요리를 먹고 감명을 받았고, 귀국을 하면서 그 레시피를 스웨덴으로 가져왔다는 것이 그 가설이다. 수백, 수천 가지의 미트볼 요리를 보유한 나라인만큼 터키를 원조로 삼는 것에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가설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을 거쳐 흘러들어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 기원이 어디였든간에 스웨디시 미트볼을 스웨디시 미트볼이게 하는 고유한 단서가 하나 있다. 스웨디시 미트볼에 빠져서는 안 되는 링건베리잼이 바로 그 단서이다. 링건베리는 툰드라를 비롯해 고위도의 추운 지역에서 자생한다. 추위를 견디는 강인함 덕택에, 혹독한 기후를 버텨야했던 스웨덴 및 북유럽 사람들에게 설탕의 대체제이자 괴혈병의 치료제가 사용되는 등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수행했다. 언제부터인가 등장하기 시작한 동그란 고기요리에 링건베리잼을 한 스푼 곁들인 순간부터, 그 미트볼은 스웨덴 사람들의 요리가 되었다.


<스웨디시 미트볼 레시피>


*스웨디시 미트볼 재료

: 성인 남성 1인 기준 고기 200~250g, 여성 150~200g을 먹으면 배가 부르다고 가정하고 재료의 양을 고기양 기준으로 비례하여 조절하면 좋다.


-미트볼
1/4컵 빵가루

1/2컵 크림 또는 우유

다진 양파 1/2 컵

디종 머스터드 1 Tbsp

올스파이스 가루 1/2 tsp

넛멕 1/2 tsp

달걀 1개

소금, 후추

200g 다진 소고기

200g 다진 돼지고기


-매쉬드 포테이토

감자 4~5개

우유 1/2컵

버터 200g (약 8 Tbsp)

소금


-그레이비소스
비프스톡 1 cup 또는 고형 스톡 1 알과 뜨거운 물 1 cup

우유 또는 크림 2컵

밀가루 1/4 컵

소금, 후추


-가니쉬

링건베리 잼, 오이 피클



1. 감자를 삶는다. 부드러워지면 으깨어서 버터, 우유, 소금을 섞어서 매쉬드 포테이토를 만든다.


2. 미트볼 재료를 섞어서 지름 3-4 cm 정도의 미트볼을 빚는다.


3. 기름을 두른 팬에서 미트볼을 돌려가며 겉면이 노릇해질 때까지 고루 익힌다.


4. 버터를 녹인 팬에 밀가루를 볶는다. 살짝 황금빛으로 변하기 전에 우유를 조금씩 섞어서 루를 만든다.  


5. 만들어진 루에 비프스톡을 넣고 거품기로 잘 섞는다. 소금 후추 간을 한다.


6. 접시에 매쉬드 포테이도, 미트볼, 그레이비소스, 링건베리잼, 오이피클을 올린다.



고소한 미트볼과 달콤한 링건베리잼의 조화가 절묘하다. 다진 양파가 들어간 미트볼을 탄력이 있으면서도 씹으면 부드럽게 부서지는 식감이다. 매시드 포테이토 또한 부드럽기 그지없다. 스웨덴에 갈 수 없다면 집에서 스웨디시 미트볼을 만들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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