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가 산을 오른 사연, 바냐 카우다
바냐카우다는 따뜻하게 데운 상태에서 각종 채소를 찍어먹는 딥(dip)으로, 알프스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역에서 기원했다. 바냐카우다(Bagna Cauda)는 ‘뜨거운 목욕(그릇)’ 또는 ‘뜨거운 소스(dip)’ 정도로 번역되며, 이름에서 나타나듯 겨울을 위한 요리이다. 피에몬테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비축해둔 뿌리채소를 다듬어서 따끈하게 데운 바냐카우다에 찍어먹었다. 알프스 건너 이웃한 스위스의 퐁듀와 유래와 기능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바냐카우다의 주재료는 올리브오일과 앤초비, 마늘과 버터 단 네 가지이다. 만드는 법도 간단하다. 올리브유와 마늘, 버터를 냄비에 넣고 기름에 맛이 배어날 때까지 끓이다 버터를 조금 더하면 끝이다. 여기에 다른 재료를 넣어나 빼서 변주를 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빠뜨릴 수 없는 재료는 앤초비(anchovy)이다. 앤초비는 청어목 멸치과의 작은 생선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생선을 염장한 서양식 젓갈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금물에 절였던 것을 올리브유에 담가 보관하기 때문에 한국식 젓갈과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생선이 주재료가 되는 바냐카우다가 어떻게 알프스의 발치에 위치한 피에몬테에서 탄생했는지에 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로 ‘소금’과 ‘탈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인 소금은 예로부터 세금을 매기는 주요 품목으로 관리되었다. 로마인들 또한 일찍이 소금길(Salt roads)을 갈고닦아 길목마다 세금 징수원을 파견하여 소금의 운반과 유통을 감시하게 했다.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난 뒤에도 그 길은 이탈리아 반도 곳곳에 남아 물자를 유통시키고 이에 따르는 세금을 징수할 수 있게 하는 신경망 역할을 하였다.
피에몬테에는 소금광산이 없기에, 피에몬테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인접한 리구리아 해안 마을로 내려가 소금과 물고기를 그들이 생산한 버터와 치즈, 곡물과 교환해야 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목에는 이미 조세 징수원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피에몬테 사람들은 꼼수를 떠올려, 검사받을 통의 아랫부분에 소금을 담고, 이를 면세 품목이었던 앤초비로 덮어버렸다. 조세 징수원들이 달구지를 멈추면 이들은 뚜껑을 열어 그 위를 덮은 앤초비를 보였다. 부패한 앤초비에서 진동하는 바닷내가 조세 징수원들의 코를 찔렀고, 그들은 코를 감싸 쥐고 달구지를 그냥 보내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소금과 섞인 앤초비가 피에몬테의 산기슭에 닿을 때쯤에는 염장의 마법이 그 기술을 발휘하여 먹음직스러운 젓갈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이 앤초비와 소금, 탈세에 관한 이야기의 진실성을 증빙한 역사적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금이 주는 부담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서인가, 이야기는 현대까지 생명력을 갖고 구전되게 되었다.
피에몬테의 앤초비에 대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바냐카우다에 대한 기록도 19세기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탄생했다고 보는 시기는 그보다 수백 년 전인데도 그러하다. 펜대를 쥔 이들에 의해 바냐카우다의 존재가 오랜 기간 외면 받은 것은 아마도 바냐카우다가 그 동안 철저히 서민들의 요리로 분류된 것과 관련이 깊다. 이탈리아의 귀족들은 바냐카우다와 같이 마늘을 잔뜩 집어넣은 요리를 고상하지 못한 요리로 보았다고 한다. 오늘날 바냐카우다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해서,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바냐카우다를 주제로 한 축제가 성황리에 펼쳐지곤 한다고 한다.
*기존 브런치북의 글을 다듬고 일러스트를 추가하여 올린 글입니다.
『트레블 인 유어 키친』(브레인스토어, 2021)에서 위 요리의 레시피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