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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Apr 15. 2022

개두릅과 두릅

한식 초보에게 봄나물이란

나는 한식 초보다. 혹자는 이러저러 요리에 계속 도전하는 한식 초보라니 의아해하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 그게 원인이다. '익숙하다'고 여겨지는 한식 요리를 만드는 대신  '새롭고 신기한' 외국 요리를 주구장창 만드는 나의 요리 루틴 속에서, 한식을 요리하는 것은 조금 낯선 풍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가끔 도전하는 한식 요리에 이따금 실패하곤 하면서, 한식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졌다. 한식 레시피에 자주 등장하는 '적당히'의 문법이 이미 계량에 익숙해진 나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재료의 중요성도 크다. 시골 된장, 친척네서 받은 고춧가루 같은 것 없이 맨 몸으로 마트 재료로 한식다운 맛을 내자니 조금 버겁게 느껴졌달까.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 한식과 조금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던 중, 봄이 왔다. 봄바람에 취해 길을 걷다 우연히 생협에서 운영하는 슈퍼에서, 나는 작은 탄성을 내뱉게 되었다. 매장 곳곳, 난생 처음 보는 봄나물이 그득그득했던 것이다(정확히 말하자면 처음 본다기 보다는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방풍나물,  쑥, 머위, 참나물, 냉이, 돌나물, 민들레, 고사리, 달래...


멀리서 봤을 땐 초록 한 덩어리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 색과 모양이 어찌나 다양한지. 먹는 방법도 필시 다양한 게 분명한데 도통 어떻게 먹어야할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쑥떡, 냉이 된장국, 고사리 나물무침 정도였다. 그동안 새롭고 신기한 요리를 노래부르며 외국 요리에 흠뻑 빠져 지내며 가까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이 만발한 새로움을 가벼이 여기고 살아온 것 같았다. 반성하는 마음과 낯선 재료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래서 올 봄, 나는 봄나물에 흠뻑 빠져 살았다. 낯선 봄나물도 겁 없이 덥썩 집어오고, 레시피는 그 다음에 고민했다. 무침, 국, 전 등 다양한 요리 방식에 도전했는데, 그 중 내 맘에 가장 쏙 들었던 방법이 바로 솥밥이었다. 말이 솥밥이지, 밥은 일인분도 안 되게 조금만 넣고, 나물과 채소, 콩 같은 것을 듬뿍듬뿍 올렸다. 누룽지 없이 고슬고슬 깔끔하게 익은 밥을 부드럽게 익은 색색의 재료와 한데 휘적휘적 섞을 때의 뿌듯함이란!


그동안 해먹은 솥밥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요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내 맘대로 그 날 생협에서 만난 재료를 조합한 건데, 이름하여 '두  가지 콩을 곁들인 개두릅 검은 보리 솥밥'이다. 이름이 곧 재료 명단인 요리다. 개두릅, 두 가지 콩(선비잡이콩과 청태), 검은 보리가 필요하다. 개두릅은 거친 부분을 손질하고 뜨거운 물에 사알짝 데친다(완전히 부드러워질 필요는 없다). 콩과 보리는 뜨거운 물에 30-40분 정도 불려둔다(밥을 아주 빨리 지을 수 있다). 냄비에 불린 보리와 콩을 깔고 물을 재료를 살짝(약 1cm) 덮을 정도로 '적당히' 넣는다(한식이라 그런가, 자연스레 적당히라는 말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정말 곡물을 불린 정도, 온도, 냄비의 종류에 따라 다른 거라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이미 곡물을 불린 경우 생각보다 정말 물을 적게 넣어야 한다는 정도?). 물이 끓으면 불 온도는 약불, 인덕션 기준 10단계 중 2단계로 유지한다. 밥이 되었으면 데친 개두릅을 넣고 5분 정도 뜸을 들인다.



동영상이 담긴 링크 첨부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p/CcXI6-IPc-R/?igshid=YmMyMTA2M2Y=


완성된 솥밥



생협 직원에게 물어가며 알게 된 것인데, 개두릅은 엄나무의 순이라고 한다. 사진상 왼쪽이 개두릅, 오른쪽이 두릅. 개두릅 쪽이 쓴 향이 조금 진하다.
가시가 잘고 뾰족한 두릅과 달리, 개두릅 가시는 더 굵지만 익으면 부드러워져서 손질하고 먹는 과정이 더 수월했다.


선비잡이콩과 청태는 정말 우연히 만난 것
데칠 땐 두꺼운 줄기를 3분 정도 따로 익히는 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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