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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기 고백을 하러 왔습니다. 이렇게 매일 제 얘기만 늘어놓으니, 듣는 사람 입장에선 참으로 고역일 듯합니다. 하지만, 뱀이 허물을 벗 듯, 독수리가 발톱을 모두 부수듯, 저 역시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애쓰는 것이니 너무 밉게는 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수업을 듣다 문득 정직함에 대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직함이란 무엇일까요?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음. 거짓 없음이 곧 정직함이라 생각합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정직은 일종의 사회규범, 도덕규범 중 하나입니다. 전에 ‘거짓말은 도덕적이지 못하다’라는 명제에서 ‘살인자에게 도망치고 있던 사람의 위치를 모른다고 거짓말하는 것’이 비도덕적인지 가치 철학 토론을 접했던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정직은 개인적 차원에서 입니다. (물론 제가 칸트나 다른 철학자들의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해 사회적 규범으로만 정의하는 것은 오로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해 신입생 때부터 인간관계가 넓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직하진 못했습니다. 처음엔 친해졌지만 제 모습에 실망하거나, 저의 모습을 비난하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들 때문에 가까이는 지내고 싶지만, 마음속에 거리를 두고 저의 정제된 모습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정작 제 마음이 사람들 덕분에 채워진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습니다. 예전에 이성교제를 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잘 보이고 싶고, 멋있고 매력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진짜 ‘나’는 품 속에 꼭꼭 숨겨두고, 만들어진 준명만 내놓았습니다. 덕분에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도 처음엔 기뻤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것이 나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내가 보여준 ‘가짜 준명’에 대한 사랑인지 의문이 들었고, 이런 회의감에 실타래를 헝클듯 맥락 없이 혼자 인간관계를 정리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요?
사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숨기려 했던 모습도 크게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당시 저는 제가 그렸던 모습보다 조금은 더 어렸고, 조금은 더 유치했을 뿐입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은 그런 저를 싫어했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좋아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된장을 담그질 않는다면 전 아마 된장 맛은 평생 못 보고 살 겁니다. 저는 다행히도 그 맛있는 된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저를 항상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제 여자 친구와, 제 오래된 친구들. 그리고 동아리에서 만나 일 년 동안 함께한 사람들,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만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같이 이겨낸 착한 동생들이 바로 그 은인입니다. 그 친구들 덕분에 속에 꼭꼭 숨겨놓은 ‘준명’이라는 녀석을 조금씩 꺼내 보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드러내기 꺼려했던 존재가 사랑받는 느낌은 생각보다 멋졌고,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조금 더 용기를 내,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제 모습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들과 같이 있을 때 사람들이 어색해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싫어 불편해도 이야기를 많이 하기도 했던 제가, 이 분위기는 이 분위기대로, 저 분위기는 저 분위기대로 느끼며 가만히 있어 보기도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전엔 비난받는 게 두려워 ‘이상적인 모습’만 보여주고자 굳이 얘기를 하지 않거나 거짓말을 했지만, 이제는 그냥 속 시원히 얘기합니다. 처음에는 망설여졌지만 막상 얘기하고 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게 신기했습니다. 오히려 제 부족한 모습들을 당당하게 마주해, 받아들일 것과 개선할 것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됐고, 하루하루 발전하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희망차게 말해도, 제 감정이란 놈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 어떤 우울한 글로 찾아뵐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마치기 전에 한 가지 더 적어보자면, 제가 그렇게 열심히 저를 숨기며 살아도 결국 저와 맞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관계는 유지할 수는 있어도, 깊어질 수는 없었죠. 오히려 지친 제가 먼저 떨어져 나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았지만 말이에요. 그러고 나면 기분은 더 찜찜합니다. 이렇게 속으로 아등바등 대도 제가 싫다니 말입니다. 언제, 누가 했는지도 모를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다 알지 못해요. 다른 사람과 만나며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