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하루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 제 평범했던 하루에 색깔을 칠해보려 합니다. 이제 정말 사회인이 됐음은 뭐니뭐니해도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줄을 기다리는 저를 볼 때 인 듯 합니다. 학생이라는 이름표가 떼 진 것이 아쉽기도 하고,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원래는 어플을 통해 주문을 하고 수령만 하려했으나, 친구의 귀여운 실수로 매장에서 어플리케이션으로 주문을 하는 웃긴 상황이 돼 버렸지 뭡니까. 덕분에 이야기 하는 시간도 많아져,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기다리다, 제 등 뒤에서 할머니 한분이 우두커니 서 계신 걸 알았습니다. 지나가시려나 싶어 길을 비켜드렸지만, 가만히 서 계시기만 하셨습니다. 제가 왜 그러시냐 여쭈려던 찰나, 할머니께서 입을 여셨습니다. “우유를 하나 마시고 싶은데, 조금만 도와주세요.. 100원짜리라도..” 저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저와 같이 있던 친구들은 주변이 시끄러워선지, 할머니께서 작게 말씀하셔서 그런지 못들은 눈치였습니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속더라도 내 마음이 편한게 낫다는 생각에 사드리려고 말씀드리려던 찰나, 할머니는 익숙한 분위기셨는지 느린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셨고, 저 또한 어물거리며 바라만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닙니다. 부산역 근처에서 할아버지께서 “자식놈들 보러 가려는데, 열차를 잘못 타 돈이 없다. 열차비좀 달라” 고 하시는걸 보고, 5천원을 내어드린 적이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 거짓말로 하는 구걸 (?)행위가 많다는 걸 들었고,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은 저로선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거짓말인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10명 중에 9명이 거짓말을 치더라도, 제가 만난 할아버지가 남은 한 분이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다고 믿는 저였기에, 지갑에 있던 현금을 드리고, 홀가분하게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 할머니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무언가 굉장히 찝찝했습니다. 마치 삭막한 자본주의 사회를 나타낼 때, 제 모습이 그려질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입니다. 답답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럴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에 ‘진실되게 살자’를 저 만의 북극성으로 만들거라는 글을 썼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게 솔직하면서도 현명한 대처법일까요? 머릿속이 복잡해, 정리차원에서 나름대로 차근차근 생각해봤습니다.
1. 할머니는 정말 돈이 없으셨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구걸을 하지 않았을테니까요.
2. 우유 한 잔 살 돈이 없어 구걸하는 할머니에게 연민을 느끼는건 당연한 인간으로서의 감정이라 생각합니다.
3. 그렇다면 제가 할머니에게 우유를 사 드리는 것이 옳은 선택이였을까요.
4. 먼저 제가 사드렸다면 그분께 당장의 만족감은 느끼게 해드렸을거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부탁하는 분들 모두에게, 매번 사드릴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요?
5. 연세가 꽤 있으시지만, 아직 자영업을 하시는 어머니께선 몸 곳곳이 아프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제가 받는 돈은 어머니께서 그렇게 버신 돈인데, 저의 어쩌면 철없어 보이는 연민으로 돈을 쓰는게 맞는걸까요.
6.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군것질 한 번 안하면 아껴지는 돈인데 어머니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7. 그리고 그 할머니께서 돈이 없는 이유, 구걸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8. 제 무지를 이유로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제 생각더미를 이렇게 쌓아놓고 나니 조금은 정리가 되는 듯 합니다. 돌이켜보면 항상 연민만 느껴왔지 고령자분들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는 노력이나, 도울 수 있는 복지정책이 있는지 찾아본 적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단지 음료나 돈을 드리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제 게으름을 이겨내고 정책에 대해 찾아보는 노력을 해야 겠지만 말입니다. (혹시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댓글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비록 오늘은 못했지만, 앞으로도 작은 음료 하나 정도는 사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아나요? 제 친절이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따뜻함을 줄 수 있을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