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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ㅇㅕㅇ Dec 23. 2021

자를 든 여성들.

작가들 리서치를 하다보면 그들의 삶과 작업이 서로 바운싱하며 균형을 맞춰가는 형상을 보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삶이 작업을 또는 작업이 삶을 압도해버리는 형상을 보기도 한다. 전자는 아폴론적 접근 후자는 디오니소스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균형감있는 단단한 영원. 잘 짜여진 도형들. 이들은 빛과 영원을 약속한다. 

압도적인 긴장감 넘치는 mortal. 깨어져 개체로 반짝이는 다이아입자들. 이들은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약속한다.


이 둘은 그들의 각각 고유한 특성대로 아름답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두 가지를 잘 균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겠지.)


(*요즘 학교에서 히스테리와 연관선상에서 다다,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작업들을 공부하고 있는데 그것에 감정적으로 지친 반동으로 글을 써본다.)


내가 오늘 소개할 작가들은 전자에 속하는 작가들이다. 나는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이 작가들 작업들을 보고 안정을 얻는다. 캔버스 밖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던 혹은 어쩌면 그래서 그녀들은 더 적극적으로 자를 들고 캔버스를 완전히 통제하는데 성공했다. 단순히 그것을 유저로서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언어로 그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뛰어넘어 작가 그 자신이 모든 판을 다시 짜는 느낌이랄까. 자신의 상처들을 전시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no matter what 내가 책임지고 내 길을 간다' 이런 태도가 느껴져서 미니멀한 작업들이지만 그 힘이 캔버스를 찢고 나온다. 


먼저, 나의 원앤온리,,,Agnes Martin. (1912 – 2004)

The photographer Michele Mattei captured the essence of Agnes Martin in her studio in Taos


돌아가시기 얼마 전의 그녀의 모습. 저 연세에도 총명한 눈빛과 자를 쥔 손을 봐라. 

Agnes Martin, “Gratitude,” 2001, Acrylic and graphite on canvas, 60 x 60 inches (152.4 x 152.4 cm) G
Agnes Martin, Untitled #2, 1992, acrylic and graphite on linen.GORDON R. CHRISTMAS/PACE GALLERY. 
The Rose (1964) by Martin, who said "the beauty is not in the rose, the beauty is in your mind"


그녀는 콜롬비아대에서 불교과목을 들을 정도로 불교사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의 작업들은 스님이 수행을 하는 것처럼 선 사상, 'practice'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실제로도 스님들처럼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오랫동안 하기도 했다. 뉴 멕시코에 집을 짓고 혼자 살았는데 신문은 절대 보지 않았다고 한다. 

Loving Love was painted by Agnes Martin in 2000, four years before her death


이 작업은 그녀가 돌아가시기 4년 전에 그린 페인팅인데 제목이 아주 말랑하다. Loving Love. 그녀의 작업들은 untitled인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귀여운 제목들도 있다. 'I Love the Whole World', 'Happy Holiday', 'On a Clear Day'. 




두 번째 작가는 Jo Baer. (1929 – )

Jo Baer, 2020. © Yaël Temminck, courtesy of Pace.


Jo Baer, “Cardinations,” 1974. Portfolio of 9 Silkscreenprints on handmade paper, 72 x 53 cm, editio
Jo Baer Untitled Diptych, 1966-1968 oil on canvas - image courtesy Pace Gallery

92세의 나이에도 엄청 큰 작업을 하신다. 중요한 일과로는 운동을 꼽으시는데 큰 작업을 신체적으로 무리없이하기위해서라고.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멋있음.) 더 궁금한 분은 아래 인터뷰 링크를 달아두었으니 직접 읽어보시길. 

https://news.artnet.com/art-world/studio-visit-jo-baer-1922458




세 번째 작가는 Emma Kunz. (1892-1963)


Emma Kunz at her working table, Waldstatt, 1958. Photo: © Emma Kunz


그녀는 사후에 작업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생전에는 그녀 스스로를 'Healer'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Work No. 117 (n.d.), Emma Kunz. Photo: © Emma Kunz Zentrum
Work No. 396 (n.d.), Emma Kunz. Photo: © Emma Kunz Zentrum


Work No. 190, by Emma Kunz. Undated. Courtesy Emma Kunz Zentrum; exh. Muzeum Susch, Zernez

그녀의 작업들을 담은 책에서 (Hans Ulrich Obrist, Yana Peel 가 쓴) 마지막 작업으로 이 드로잉을 담으면서 썼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관심 있으신 분은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명상트립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포스팅하려고 그녀들의 작업들을 다시 들여다보니 나도 머리가 맑아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내 세계에서 자를 들고 규칙을 만들고 정리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을테다. 


(*사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장수(?)했/한다는 점인데. 나는 이 점이 전혀 놀랍지 않다. )





박완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인 '나목'에 대해 그녀가 말한 대목이 떠오른다.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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