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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Nov 29. 2022

인디의 꽃은 노가다

독립출판 음악 에세이 ⟪조류⟫ 작업기 ⑧


'오, 이건 사야 해!'를 외치며 기꺼이 지갑에서 카드를 뽑는 순간이 있다. 


상품에서 제작자의 괴짜같은 면모가 보이거나, 변태스러울 만큼 어딘가에 집착한 느낌이 묻어있을 때.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해...?'라고 생각하면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짓을 한 게 보일 때. 난 그럴 때 참을 수 없는 지름의 욕구를 느낀다. 그리고는 뿌듯하게 그것을 받아들고 집에 온다. 도대체 왜 뿌듯한 건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상당히 뿌듯하다. 그리곤 집에 그것을 장식한다. 원래의 쓰임새보다는 작가들의 땀과 때를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돌이켜 보니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책에도 어느정도 내 집착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작가님의 그 의도는 어쩌면 님만 알지도...?"

- 라는 말을 최근 듣고야 말았는데, 아랑곳 않고 마이웨이를 걷는 중이다. 나도 사실 속으로 자주 말한다. 

'하, 이렇게 까지... 하고 있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하고 싶은 걸.'



예컨데...



표지 일부 © MINJU

'멀어지든 가까워지든 결국 내 마음에 너가 있다면 빙빙 돌아도 너에게 가겠지'를 표현하고 싶어서 고민끝에 파도와 달의 관계를 떠올리다가, 그걸로 컨셉을 잡아서 표지를 발전 시켰을 때 '아, 진짜 징하다' 라고 생각했고.



'파도' 일부 © MINJU


파도와 음악 에세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다고 계속 고민하다가 내지 디자인을 오른쪽 정렬로 한 것도 그렇고. 텀블벅에 올릴 때 목업이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평면 이미지만 올려도 되는데, 펼침면을 다 보여주고 싶다고 그걸 포토샵으로 만들고 있을 때도 그랬다.



목차 페이지 © MINJU

'목차가 왜 영어로 Contents인 줄 알아? 그게 바로 내용이기 때문이야. 책의 9할이 목차야.' 라던 모 미학교수님의 말을 떠올리면서 목차로 어떻게 흐름을 표현할까를 고민할 때도 그랬고.


(그래서 나는 내가 종종 에디터가 맞나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모르겠고 디자잉어는 되지 않을까. 잉잉)



지난 주말부터는 곡소개 영상도 만들기 시작했는데, 사실 꼭 텀블벅에 소개영상이 필요한 건 아니다. 아는데. 개인적으로 정말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러니까 결국 내 욕심에 만들었다. 입 안에 빵꾸들이 달의 바다를 연상케하는 중이었지만, 하고 싶어. 하고 싶다고. 다만 오늘 영상을 편집하다 들어보니 목소리가 왜 이렇게 맥아리가 없나 싶어서 결국 다 날렸다. 아프긴 아팠던 모양이다. 이틀만에 뭐가 많이 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찍었다.


https://youtu.be/LLzwMji4OZY

영상에 다크써클이 보인다! 뭐..., 사실 일요일 영상이 내 얼굴은 더 예쁘게 나왔는데,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이 책은 굳이 따지자면 아픈 사랑의 책이기도 하고, 나는 예쁜 사람이기 보다는 예민하고 미묘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쁜 사람은 세상에 많아. 


'사랑해서 너무 아파요-' 컨셉도 괜찮을 거 같고. '만들다보니 밤을 새고 말았다네...' 컨셉도 괜찮을 거 같더라. 잠깐, 이게 컨셉이던가? 진실은 저 너머에...



또 텀블벅 구매자들을 위해 뭔가 나이스한 선물을 해 주고 싶어서 고민끝에 벡터 스코프 책갈피를 만들면서도, '음... 뭘까, 이 흥미로운 노가다는?!' 이란 생각을 했었다. 


나는 이 애널라이저를 주로 쓰는데 업그레이드를 하고 싶...


벡터스코프는 애널라이저로 볼 수 있는 그래프(?)의 일종인데, 내가 뭐 아는 건 그리 많진 않지만 대략 트랙이나 곡의 공간 밸런스를 잡을 때 주로 보고있다. 위의 사진에서는 중앙 하단에 위치해 있다. 근데 신기한게, 곡의 테마랑 연결된 이미지들이 믹싱하다가 종종 보이는 거라... 그냥 지나가는 생각으로 저걸 좀 이용해서 뭘 디자인 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돌이켜보니 난 책을 세 권 만드는 동안 단 한 번도 책갈피를 만들지 않은 적이 없었고, 뭐랄까 나한테 책갈피는 여행지의 기념품 같은 거라서... 이번에도 책갈피를 만들기로 했다.


왼쪽은 'Murmur', 오른쪽은 '겨울의 겨울'이다  © MINJU

이런 식으로 패턴을 만들어서 실크 스크린 인쇄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러면 좀 더 판화같은 느낌이 나서 질감이 더 예쁘겠지?


세 곡은 처음부터 찾아봐야 했다고...

비하인드를 말하자면, 이걸 하기로 결심했을 때 몇몇 곡들은 이미 믹싱이 끝나있어서 다시 테마에 맞는 이미지를 찾느라 수고를 좀 했다.


뒷면은 앨범아트(?)인데, 영문이 왜 저렇게 생겼냐면 바람체 Extra bold의 한글 서체를 일부 변형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 영어를 한글로 만들었던 건, 사실 꼭 한글이어야 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좀 더 이질적이길 바래서 였다. 그냥 예쁜 영어 글자는 많잖아. 근데 나는 전자음악을 소개하는 용도의 영문이 필요했다. 그래서 합성해서 글자를 만들고 싶었고, 합성을 한다면 내가 그래도 좀 더 많이 본 게 낫겠다 싶어서 한글 서체로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 재료가 바람체여야 했던 건, 워낙 날렵한 곳은 날렵하고 굵은 곳을 굵은 서체라서 획의 캐릭터가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는 교수님이 만들어서 내가 변형해서 쓰더라도 욕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분한테 이거 어떠냐고 보여드리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욕을 하고 싶어도 못하셨을지도 모르겠다......


서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조류의 제목서체는 바람이고 본문 서체는 윤슬이다. 그리고 윤슬은...

-이다. 그러니까 바람과 달빛에 반짝이는 잔물결로 만드는 조류... 라니. 난 그냥 바람체의 다이나믹한 모습과, 윤슬의 대각선으로 뻗은 듯한 유려한 획의 몸짓을 좋아했던 건데. 이건 정작 작업할 때는 몰랐고, 작업하고 나서 갑자기 '어?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하고 알게 됐다. 


왼쪽은 바람체, 오른쪽은 윤슬바탕체로 쓴 썰물의 일부 © MINJU



이렇게 퍼즐 조각을 하나 하나 만들어서
끼워 맞추는 재미가 참 좋았다. 


지금도 너무 보람차고. 막을 수가 없고. 이러다보니 내가 대상을 좋아하는 건지, 대상을 좋아하다가 창작을 하게 된 이 상황을 좋아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될 때도 많았는데... 결론은 ⟪조류⟫에 써놨으니까 궁금하면 책을 보면 될 것 같다. 텀블벅은, 이제 하나의 퍼즐만 더 맞추면 올릴 건데 그것도 꽤 공이 많이 든다. 하지만 뭐 2020년 말쯤에 낸 책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꽤 텀도 있고 하니 이정도 신경은 써야 하지 않나 싶다.



그게 뭔지는 텀블벅 링크와 함께 

다음 회차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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