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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May 06. 2024

너는 주석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주석의 쓸모 - 들어가는 말

지난 3월, 교수님께서 물었습니다.

"너는 왜 편집디자인을 하니?"

그때 깨달았죠. 아, 원래는 타이포그래피를 잘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였는데, 이유가 바뀌었다고. 교수님은 그게 꼭 타이포그래피가 아니어도 되니까 그걸 위한 공부를 하라고 하셨고. 저는 또 학교에서는 꽤 모범생이었으므로(평균 학점 4점 넘긴채 졸업함... 대체 왜 그랬을까) 교수님의 말씀을 곱씹어보며 몇달을 살았습니다. 이제 제 대답은 내용에 맞는 형태를 찾아주는 것에 가치를 느끼기 때문- 으로 (일단)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단행본 뿐만아니라 진도 작업합니다.


교수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시각적으로 너무 구조가 단조로운 것 같아. 현장성이 안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 발표자가 전달했던 정보에도 위계가 있는데, 그것도 잘 안 보이고."


물론 교수님의 말씀에 늘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지만, 근거가 없는 폄훼도 아니고 일단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그 말을 또 단물이 다 빠질 때까지 곱씹어 보았습니다. 생각해 보고, 생각해보고,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뭐가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 걸까, 책들을 보면서 또... 생각해 보고. 그래서 일단 제가 내린 가설은, 주석(디테일하게는 본문 옆에 다는 주석인 방주)이라는 개념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 으로 잡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저의 주석에 대한 연구입니다. 이거 하면 나중에 내가 나한테 밥사겠지요.


"주석: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또는 그런 글"....인데 그냥 본문에서 잘 설명해주면 되지 않나?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체 왜 주석은 이렇게 저렇게 여기저기 바글바글하게 달려서, 사람 눈 피곤하게 하는가. 어지간하면 너무 멀지 않게, 너무 작지 않게, 너무 찾기 어렵지 않게, 아님 그냥 본문 안에서 정보를 다 주면 안 되는가. 당연히 정보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편집을 할 때는 읽는 사람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지 않게끔, 우왕좌왕하지 않게끔, 단락을 구성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에릭슈피커 만, 『타이포그래피 에세이』, 안그라픽스(2014), 93.

예를 들어서.... 진짜 이 책 제가 타이포그래피 처음 공부할 때 봤던 책인데 방주가 너무 많아서 눈 빠지는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눈이 빠질만큼의 보람도 있어서 샅샅이 보긴했죠. 물론 '왜이렇게 정보를 숨겨둔 건데! 대체 왜 그러는 건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땐 아는 게 없었거든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정보를 읽고 각 정보 덩어리의 깊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없었던 것이죠. 문제는 타이포그래피의 경우 학교 커리큘럼이 있어서 그걸 따라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그러니까 저같은 독학러들은! 그냥 맨땅에 헤딩을 하며 자신의 수준을 모르고 책을 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왜 이렇게 구성된 것인가 알 수 없다면서 툴툴... 거리기 십상입니다. 그래도 그렇게 꾸역꾸역 봤습니다. 어차피 다른 거 봐도 어려울 거 같아서.


그 과정을 거쳐 편집디자인에 입문했던 저로서는 원고에 담긴 내용이 너무 복잡한 구조를 띄고 있는 경우, 작가님께 말씀드려서 구조를 깰 때가 참 많았어요. 편집디자이너가 원고에 어떻게 손을 대느냐 할 수 있는데 저는 편집자이면서 편집디자이너 거든요. 주로 단행본 작업, 특히 에세이를 위주로 했으니까 그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예닐곱권의 실용서도 작업한 적이 있는데, 정보가 복잡할 경우 굳이 한 지면 안에 병렬해 놓지 않고 직렬을 택하는 쪽에 가까웠고 그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교수님 빼고. 


그건 참 감사한 일이에요. 지금의 저는 다양한 출판물을 잘(아주 잘! 탁월하게!) 만들고 싶거든요.


그래서 일단 책장 몇개를 털어서 대충 단행본, 잡지, 디자인서 등을 골고루 빼서 주석이 달려있거나, 좀 헷갈리거나, 아무튼 연구해 볼만한 책들을 추렸습니다. 이제 저는 쟤들을 보면서 주석의 형태와 쓸모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마 방주(영어로는 marginal note... 사실 전 방주란 단어보다 마지널노트가 더 익숙함)가 중심이 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한 번 훑으면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나는 앞으로 어떻게 쓸지를 알 수 있을테니까. 


아, 근데 원래는 말이죠. 한동안 계속 생각했어요. 내가 맞다고. 왜 그렇게 어지럽게 지면을 써야 하냐고. 솔직히 내가 원고 편집도 하는데 독자 읽기 좋으라고 시선의 흐름 어지럽지 않게 한 결로 모아주는 게 이상한가? 내 스타일이 그런거지. 그게 나쁘다고만 볼 수 있나? 이런 생각을...(실제로 저는 교수님에게 질문도 많이하고 반기도 많이 드는 인간이었습니다 ㅋㅋㅋㅋ 복수전공했던 교육학과 교수님한테 수업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아이들에게 사과해달라고 한 적도 있음. 그분이 잘못하신 거니까 지금도 전 틀리지 않았다 생각해요.)


근데 최근에 제가 혼자 디자인 하는 거 좀 지겹기도 하고, 혹시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편집 디자인 수업을 하나 듣게 됐어요. 노션이 정보를 와다다다다 들을 때는 정리하기 제일 편해서 그걸로 하는데...

수업에서 주는 정보는 본문 안에 빨리 넣고선, 또 그 정보의 흐름으로 같이 묶일 수는 없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말들이나 인사이트는 댓글로 옆에 달고 있더라고요. 그게 더 보기 편한 게 사실이고요. 그래서 내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어쩌면 눈이 왔다갔다 하는 게 정신없다고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유영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라고도. 본문 프레임 뚫는 일을 내가 저자인 책에는 마구 하면서도 왜 일로 편집디자인 할 때는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나쁘다고만 생각을 했나 싶기도 했어요. 그렇게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했기에, 그냥 주석을 한 번 파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앞으로의 목차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그냥 제가 시간이 되는대로 틈틈이 지금도 제 작업은 계속 진행중이니까 연구한 내용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많이 배워서 더 잘 만들길 바래봅니다. ㅎㅎ


instar @anony.min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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