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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May 12. 2024

읽기 쉬운 책이 늘 좋은 책은 아니다

주석의 쓸모 - 1 주석 공부가 필요한 이유와 주석용어 정리

모든 책이 항상 쉬워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쉬운 것보다 중요한 건 그것에 담긴 정보를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죠. 그걸 잘하면 좋은 책이 될거고요. 근데 잘이라는 게 그때그때마다 달라요. 그래서 편집디자이너와 편집자와 출판 마케터가 필요한 거겠죠.


이전에 올린 글 '들어가며'를 읽으면서 느끼셨겠지만, 원래 저는 읽기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저한테 들어오는 일들은 어떤 전문지식을 다루기 보다는 일상의 온도가 느껴지는 것에 가까웠기에 더욱 그랬어요. 전문지식을 다룰 때 조차도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쉽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요구를 받았고요. 마침 저는 대학교를 다니는 2년간 언론고시를 준비해 왔기에, '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쓰기'에 익숙했고 편집자로서 그 일을 하는 게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이번에 교수님이 제게 의뢰를 했었던 게 학술세미나를 요약한 책이었다는 겁니다. 세로쓰기 컨퍼런스요. 교수님은, 그러니까 이용제 교수님께서는 세미나를 열며 말씀하셨습니다.


정보를 더 쉽게 알려드리기보다는 정보를 정확히 이야기 해,
함께 건강한 세로쓰기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이 담긴 책 역시, 그 정보를 담을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서 편집 되었어야 했고, 그런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모양새로 디자인 되어야 했습니다. 전 그걸 한 번도 안 해봤고요. 해보고 까이고 까이다가, 이렇게 알게 되었죠. 난 그런 책을 만들어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내가 여태까지 만나왔던 독자의 층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이건 학술 전문 서적이니까.


장르의 문제다.


제가 이제와서 이런 고민을 한다고 하니까, 저와 함께 일하는 영상회사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상에도 여러가지 장르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는 다큐다워야 하고, 뮤비는 뮤비다워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자막을 달아야 하고 그런 음악을 넣어야 하고 그런 구성을 짜야겠죠. 난 이게 좋은 영상물이야 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걸 섞으면 되게 어색한 거니까.

"그런 것처럼 너도 지금 매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거야. 너가 주석을 많이 달기 싫든, 어쩌든 간에, 니가 그 일을 맡았으면 그거에 맞는 양식을 입었어야 했던 거지."

-라고 하는데, 그말을 들으니 납득이 됐습니다.


그런데 주석이 되는 글과 본문 괄호 속에 들어가는 글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걸까요?
제겐 그 지점이 너무나 모호합니다.


다양한 정보를 지면에 전달해야 하는 책을 작업하고 있다면, 주석의 양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어떨 때 주석을 쓰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석 중에서도 참고주가 아닌 내용주의 경우 각주로 빼거나 방주로 빼는 것들이, 굳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을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어떠한 태를 갖추는 것도 좋지만, 의미도 모르고 태를 갖출 순 없습니다. 그럼 멋이 없어서 싫어요.


김호경,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 작업실유령(2022), 59.

그러던 와중,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이라는 책 속에서 제 질문에 실마리가 될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인 김호경님의 석사논문 「스트리밍 시대 새로운 음악 감상 방식의 출현과 그 의미 연구」를 고쳐쓴 것인데요. 저는 이 본문에서 주석으로 남긴 부분과 괄호 안에 들어간 부분을 보면서, 왜 이것은 각주가 되고 이것은 각주가 되지 않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각주 안에 있는 글은 "무드휠이 있다."의 뒤에 들어가도 말이 되고, "감정을 나타내는 형용사 열일곱 개" 뒤에 괄호를 치고 들어가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물 음원은 만들지 않는다" 역시도 부가적인 설명이므로 각주에 들어가도 되고요. 

 

그래서 잠깐 책을 덮고 고민을 한 결과 명확하진 않지만 제 나름대로의 답을 냈어요. 중요도가 달라서 그런 것 같다고. 이 책은 음악을 듣는 감상자의 추상적인 감각의 효용을 이야기 하는 책이니까요. "이다지오"라고 하는 음악플랫폼에서 어떠한 무드휠로 감상자가 추구하는 느낌을 어떠한 형용사로 구성해 보여주고 있는가는, 그 추상적 감각을 어떻게 플랫폼이 추산해 내는가에 대한 답이므로 이렇게 주석을 달아서 더 중요하다고 표시할 수 있겠다는 거죠. 이다지오가 음원을 내는지 안 내는지는 그저 부가적인 설명이고요(하지만 읽는 사람이 궁금해 할 거 같으니까 배려하는 마음으로 괄호 속에 달았겠죠).


물론 이 전까지도 이 책에서 여러 각주들을 보면서, 이건 이런 기준으로 들어갔고 저런 기준으로 들어갔다고 별로 의식한 적도 없었고, 그냥 본문처럼 읽었으므로 이게 막 엄청난 강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편집디자인이라는 것은, 독자가 책을 읽기도 전에 그 지면의 분위기, 태도, 감각 같은 것들을 느끼게 하여, 독자를 도와주는 것이므로. 그리고 이 책 역시도 그것을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제가 몸소 느꼈으므로(신뢰도도 높아졌을 뿐더러, 독자에 관심을 가지는 마음을 느낀달까). 주석이라는 것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역시나 더욱 유용하겠구나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석의 사전적 의미에서 부터 시작해 봅시다.


사실 제가 이걸 연구까지 하겠다고 한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정보가 너무 흩어져 있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능을 어떻게 쓰는지는 얘기를 하는데, 언제 어떠한 쓰임을 가지고 어떠한 목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은 찾기 힘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찾은 바를 정리해 봅니다.


주석: 본문 내용에 대한 보충 자료를 제시하거나, 인용한 자료의 출처 등을 밝히기 위해 사용한다.


이러한 주석은 '주'로도 줄여서 사용되는데, 의미 단위로 보면 내용주와 참고주 인용주 등이 있다고 하고요.

이것을 위치로 따졌을 때 괄호주(내주), 각주, 미주, 측주, 방주, 두주, 할주, 협주, 면주 등이 나옵니다만, 솔직히 이것들 사이에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의미로 칠 수 있는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도저히 본 기억이 없어서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겠는 것도 있고요. 그건 제가 몰라서일 수도 있고, 지금 안쓰는 주석의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정리해 보면,


제가 자주 본 주석


1. 괄호주(括弧註)

본문 안에 괄호를 사용하여 인용 출처나 설명을 표시한 주석입니다. 이렇게 인용할 경우에는 미주(후주)로 참고 문헌을 따로 달아야 합니다. 내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 미주(尾註) 

글의 말미에 한꺼번에 주석을 다는 방식입니다. 후주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3. 방주(旁註)

본문의 오른쪽 또는 왼쪽에 추가적인 설명을 다는 방식입니다. 측주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4. 각주(脚註)

이미지 출처: W3CWorking Group Note 5.1. 주석

본문의 아래에 인용의 출처를 사용하거나 본문에 부족한 내용을 서술할 때 사용합니다. 기술 내용의 출처를 밝히는 데 사용합니다. W3CWorking Group Note에 따르면 오른쪽 단에 모아서 표시하는 것도 각주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구분선을 넣거나 여백을 넣어 본문과 구분해 주는데요. 본문 옆에 넣으면 방주와 구분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실제로 이 구분은 좀 의미가 없을 수 있는 것이, 각주를 검색하면 주석의 의미까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석과 각주를 딱 분리해서 말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거죠. 다만 대체로 '각주'는 한 면의 페이지 내부에서 다루는 정보를 그 페이지 내에 싣는 경우를 말하므로 미주와는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봅니다.


제가 자주 못 본 주석


1. 할주(割註)

이미지 출처: 교과서 박물관

설명 글을 작게 줄여서 본문 옆에 병기하는 방식입니다.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는 경우 주로 쓰였고요. 지금 잘 안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루비나 글자를 작게 만들어서 글줄의 어깨에 건다거나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딱 안 쓰인다고 보기도 애매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걸 주석이라고 하더라도, 설명글이 길다면 할주를 하진 않을 거 같습니다. 각주나 방주를 넣겠죠. 할주는 협주라고도 불립니다.


2. 두주(頭註)

본문 위쪽에 다는 주석입니다. 제가 한글로 찾아보면 자료가 안나오고, 한문으로 자료를 찾아볼 때는 세로쓰기 시절의 한자로 쓴 책들이 나옵니다. 따라서 지금은 잘 안쓰는 방식같습니다. 만약에 한글을 세로쓰기 한경우에는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지 출처: W3CWorking Group Note 6.4. 면주와 페이지 번호

개인적으로 애매한 주석이 하나 있는데 면주(面註)입니다. 면주는 각 장의 제목을 넣을 때 주로 사용하는데요, 그래도 면주에 붙은 주는 분명 주낼주라서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여 가져는 왔습니다. 근데 진짜 제가 아는대로 각 장의 제목을 넣을 때만 사용한다면, 설명을 한다거나 보충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런 지식 역시 좀 의문스러운 점이 많기 때문에 계속 회차마다 중요한 정보를 알게 되면 추가하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정보들은 한 곳에서 찾았다고 하기는 뭐하고, 기존에 제가 알던 지식과 아래의 페이지들을 읽으며 덧붙인 지식입니다(클릭하면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W3CWorking Group Note 중 5.1 주석, 6.4 면주와 페이지 번호

오민준의 서(書) #3 한글 고전 서체 이야기 ‘판본고체’

두산세계대백과사전, "각주" 페이지

위키피디아, "각주" 페이지


이걸 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젠장 이런 거 몰라도 그냥 감각적으로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머릿속에서 뭔가 이름이 붙어야 하고 막 정리가 되어야.... 좀 마음편히 써보는 것 같아요. 하... 난 왜 이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시작된 짓이니...


앞으로는 이런 의의를 이루기 위해 더 깊이 파보려 합니다.

1. 이름조차 통합되지 않은 주석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하며, 과거의 관행으로 여겨지는 주석 역시 지금은 정말 의미가 없는지 확인한다.
2. 여러 책에 쓰인 주석의 쓰임을 직관적으로 이해해 지면 속의 정보의 흐름을 보다 깊이 파악하는 시선을 갖춘다.
3. 내 나름의 주석의 쓰임에 대한 기준을 세워,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그리드를 활용한다.


사실 3번이 중요하고 나머지는 되면 좋고 아니면 뭐... 아쉽겠지요.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근데 안목을 키우는 건 정말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닌지라. 각오라도 잘 세워봅니다. 

 

이용제, 『활자를 디자인할 때 알아야 하는 것』, 활자공간(2023). 헤라르트 윙어르, 『당신이 읽는 동안』, 워크룸(2013).


그, 느끼시겠지만, 저는 원래 잡지를 그리 많이 보던 사람은 아닙니다. 복잡도가 높은 그리드를 사용한 책을 보며 별로 멋지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대신 활자가 예쁘게 쓰인 책, 특히 세리프 글씨가 보여주는 곡선을 보며 침을 주륵 흘린 사람이었습니다. 이 얘기는 제가 교수님과 작업했던 책 『교수님. 어떤폰트 쓸까요?』에도 박제되어 있습니다.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구나. 이제야 느낍니다. 언젠가 또 저 같은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 열심히 합시다. 정보가 제한적인 이 분야를 헤매는, 열의 있는 우리에게 길이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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