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의 조각들은 그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3/11)
※본 글은 한국시각으로 2015년 3월 12일 처음 쓰인 글로, 제 여행 에세이의 데뷔 글입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연재하던 글을 브런치로 옮겨와, 개정 발행합니다.※
2013년 6월의 어느 날, 정말 가고 싶었던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예약을 안 했다는 이유로 한 시간 넘게 걸려 갔던 그 길들을 쓸쓸히 돌아왔던 그 날. 그 당시의 나로서는 센세이셔널한 생각을 하게 된다. '다음에 내가 다시 런던에 오려고 여기를 못 간 거야'라는. 그리고 1년 반쯤이 지난 2015년 3월 10일, 다시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영국에서 보낸 지 만 하루가 지난 지금도 기분이 얼떨떨하지만, 그래도 여기는 지금 영국이고, 26살 나는 지금 스코틀랜드에 와 있다.
2월에 졸업도 했고 인턴도 끝난 지금, 백수의 시작을 약 20일의 여행으로 출발하는 만큼 이번 여행에서는 나에게 미션 4가지를 주려 한다. 아래는 비행기에서 쓴 나의 To-do List이다.
1. Be a Writer!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이자, 목표이다. 글은 쓰면 쓸수록 늘어나는 거라던데, 나의 생각의 흐름들을 하루하루 빼먹지 않고 정리해 보려 한다. 단 한 문단이라도 좋으니 여행 중 작은 시간을 활용해 보고 싶다.
2. 영상 만들기
하루하루 클립을 모은 영상을 만들기. 하지만 프리미어 따위 쓰지 않을 것이다. 무비스타 어플 짱짱:)
(이제 와서 밝히지만, 결국 영상은 장렬히 실! 패!)
3. 아프지 말기x_x
사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리고 오늘 하루 지내는 동안도 과호흡 1 체함 1을 겪었었다. 스스로 대견한 점은 극복해 내었다는 것. 과호흡 증상이 내가 만들어내는 독이라고 느끼게 된 어느 날들 이후로 처음으로 스스로 안정을 찾은 날이다. 환승지였던 암스테르담에서 에든버러까지 오는 1시간 30분 동안 갑자기 찾아온 증상이어서 더 침착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에 감사했던 비행시간이었다. 옆에서 손 꼭 잡아준 보영이부터 따뜻한 물을 가져다준 예쁜 승무원 언니까지.
4. 매사에 여유 가지기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모든 일정을 여유롭게 다니는 것이다. 단체 패키지여행 오듯이 찍고 찍고 찍는 여행보다는 사람을 바라보는 여행이 더 좋기 때문. 지나가는 현지인 구경, 관광객 구경, 그리고 우리 내면을 바라보는 여행을 꿈꾼다. 또 다른 의미는- 여유 있게 기차 타러 가는 것이다. 정말 심각하다. 이번에는 기차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ㅠㅠ
서론이 길었다. 긴긴 하루, 간결하고 의미 있게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KLM을 타고 스코틀랜드로 입국했다. 때문에 네덜란드의 스키폴 공항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치즈가 유명한 나라인 만큼 면세점에도 정말 많은 치즈가 있었다. 그중 나를 사로잡은 비주얼의 치즈는 작아서 한입 크기로 먹을 수 있는데 딱딱해 보이는 치즈. (물렁한 것은 너무 느끼할 것 같아서 잘 안 먹는다.) 색깔도 이뻤다 빨간색. 하지만 사지는 못했었는데 오늘 아침 조식의 현장에서 그 치즈를 보고 만 것! 예전 유럽여행에서는 미니 누텔라를 보면 그렇게 눈이 돌아가던데 오늘은 그 치즈가 미니 누텔라 격이었다. 자연치즈는 거의 처음이라 설렘 반 불안 반으로 한입을 딱 먹었는데, 너무 고소하고 맛있더라. 저녁에 와인이랑 한잔 함께 하면 좋을 그런 맛! 진지하게 이번 유럽여행 선물로 치즈를 사 갈까 고민 중에 있다. 토요일까지 에든버러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으니 열심히 흡입하려 한다.
시차 때문일까 너무 일찍들 잠에 깬 우리는 언제 비가 올지 모르니 차라리 일찍 나갔다 들어오기로 했다. 그렇게 간 칼튼 힐(Calton Hill). 가는 길은 햇빛이 쨍쨍했고 영국에서 이런 날씨가 얼마나 오랜만이었냐며 카메라가 아닌 내 눈으로 햇빛을 담으며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에든버러가 바다와 정말 가깝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사실 나는 바다를 정말 좋아한다. 근데 이 도시, 에든버러에서는 선호도를 수정하려 한다. 정말 이곳은, 도시 구석구석이 참 매력적인 도시이다. 칼튼 힐에 올라서면 도심이 전부 내 시야에 들어오니까 도시라고 하기엔 좀 작은 듯. 이 뷰를 만끽하며 약 20분 정도 광합성하고 사진을 찍는데, 한 모뉴먼트 앞에서 점점 먹구름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햇빛은 나지 않았다.
점점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인들이 이 정도 비 가지고는 절대 우산을 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도 역시나 우산을 펴지 않았다. 나와 동생 모두 우산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현지인 코스프레가 아니다, 바로 바람 때문. 우리는 각자의 패딩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리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 다리는 강의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가 아니다. 에든버러 웨이블리 기차역으로 단절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스코틀랜드의 모든 것이 나에게 마법을 거는 듯했다. 없던 강도 만들어 내는 다리라니... 사실은 아까 내가 봤던 그 거리가 정말 다이애건 앨리(*책 해리포터에서 마법사/마녀들이 이용하는 상점 골목)였을까? 다이애건 앨리, 아니, 스코틀랜드의 흔한 골목 하나를 지나 다리를 건너니 옛날에 귀족들만 걸을 수 있었다던 로얄 마일(Royal Mile)이 펼쳐졌다.
사실 로얄 마일은 특별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큰 감동은 주지 못했다. 뷰는 너무 멋지다. 하지만 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귀족들만 걷던 길 나도 걸어볼란다- 정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로얄마일에 들어오지 못하는 평민들이 걷던 크고 작고 좁고 다양한 골목들, 크로스(close)였다. 사실 낮에는 어두컴컴해서 왠지 무서운 분들이 있을 것 같아 들어가진 못했는데, 밤이 되고 야경을 보러 다시 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너무 멋있어서! 닫힌 곳도 많았지만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크로스들도 많았다. 그중 우리가 걸어본 곳은 Jackson's Close. 그 느낌과 분위기가 에든버러를 가장 잘 나타내는 감성인 것 같아 표지로 이번 끄적임의 표지로 선정했다. 궁금하신 분은 다시 위로 스크로를 올리시길. 너무 좋아서 내일 또 보러 갈지도 모른다.. 내일 일정은 아무도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