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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Jan 08. 2019

숨가쁘게 떠나서 숨돌리며 돌아온 일본 사가여행

혼자서도 참 좋았다

여느 때처럼 출근꾸역꾸역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잠깐 사담을 나누던 직장동료가 곧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러워하며 제자리로 돌아가 다른 날과 같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리고 며칠 후, 점심을 먹고 습관처럼 스카이스캐너 앱으로 이곳 저곳을 살펴보던 중 일본 사가로의 항공권을 발견했는데, 무슨 생각에선지 그 자리에서 직장 상사에게 가 내일 하루 연차를 쓰겠다고 통보해버렸다. 그리고는 항공권만을 결제한 뒤 다음 날 나는 사가로 떠났다.



갑작스럽게 떠나는 여행이라 준비 된 것이 별로 없었고, 알아본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저 사가라는 곳이 일본 어디쯤에 있고, 그 근처 마을엔 도자기가 유명하다는 정도.


어쩌면 항상 자유를 갈망하던 나에게 '왜 안돼?'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기 아닌 오기로 떠나게 된 듯도 하다.



작고 깨끗한 모습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꼭 닮은 사가 공항. 사가역으로 가는 공항 버스를 기다리며 괜히 자판기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 뽑아서 먹어보았다.



사가역에 도착해 구글맵을 켜고 걷다보니 알아보았던 게스트하우스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난 뒤 내가 묵을 방을 둘러보았는데, 모든 것이 너무 작아 소꿉놀이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후 스탭에게 나마비루를 맛보기에 좋은 주변 이자까야를 추천받아 숙소를 나섰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근처를 걸어보았다.


<다이이치산 키치마루>라는 이름의 이자까야.

한글은 물론 영어로 된 간판 등은 전혀 없어 이곳이 맞는지 지도만 만지작 거리다가 슬쩍 문을 열고 들어가 물어보았다.


"다이이치산 키치마루데스까?"


온통 나무로 된 가게의 안쪽에서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나와 나를 맞이하며 대답했다.

"하이!"


앞쪽 자리에 앉아 혹시 어딘가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없을까 곳곳을 눈으로 훑어보았지만,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 뿐이었다.


할아버지 주인장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더니 곧 구글 번역기를 켜고 엉성하게 번역된 문장을 들이밀었다.


'무엇을 드시고 싶습니까?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내가 대답을 못하고 어버버해대자 그는 곧 덴뿌라, 사시미 등의 단어를 말했고, 드디어 아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덴뿌라! 오네가이시마스. 아아, 나마비루모 쿠다사이."


고등학교 시절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잔뜩 기대하며 마셨던 내 생에 첫 나마비루는 사실 그저그런 맥주 맛이었다. 튀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이 특별하다고 느낀 데에는 조금은 주책맞은 할아버지 주인장 때문인 듯 하다.


그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원래 일본 이자카야에서는 그런 것인지, 주인장은 내게 끊임없이 구글 번역기를 들이밀며 말을 걸어왔다.

'한국의 불고기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몇살인가요?'와 같은 평범한 대화부터 시작해 나중에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친구가 있으신가요? 일본의 남자친구와 데이트 어떠신가요?' 와 같은 말까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손으로 O,X를 표시하며 적극적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진심이든 아니든 내가 언제 다시 일본인 할아버지와 이런 대화를 해보겠는가.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뭔가 튀김말고 다른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 써져있는 메뉴판을 살펴보았는데, 그 중 '元祖(원조)'라고 써진 글자를 보고 주인에게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할아버지 주인장은 또다시 더듬더듬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이것이 소의 내장 조림과 같은 요리라고 알려주었고,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덜컥 "쿠다사이(주세요)"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꽤 맛이 있었다. 두부와 곤약이 들어있고 내장도 잡내없이 간이 잘 배어있어 술안주로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늘 먹던 음식만 주문하던 내가 괜히 여행지에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했다는 사실이 더 좋았던 듯도 하다.


그렇게 여행 첫 날 저녁, 잠깐의 외출을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 작지만 깨끗하고 수압이 훌륭한 일본식 샤워부스에서 씻으며 피로를 풀었다.

이후 다음날 일정을 고민하면서 내일은 기차를 타고 도자기가 유명한 아리타마을과 3000년된 녹나무가 있는 다케오 신사를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약간의 외로움과 더 큰 설렘을 안고 그날 밤 나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편안하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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