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타마을 이야기.2
내가 사가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이 계단 때문이었다. 누군가 아리타 여행 중 찍은 도산신사의 계단. 그 세월을 증명하듯 얼룩덜룩 낀 이끼와 함께, 계단의 어두운 색깔과 대조되는 청명한 신사 입구가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 결심하게 되는 계기는 사소한 것들인 경우가 많다. 한 장의 사진, 한 권의 책이나 그 속의 문장 한 줄. 혹은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사소해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컵에 한 방울씩 떨어지던 물이 결국 마지막 한 방울에 의해 넘치게 되듯 긴 시간동안 쌓여온, 그러나 내가 외면해왔던 것들은 마지막 한 방울로 인해 표출되곤 한다.
조용하고 숨막히는 사무실 안에서 화분이 말라가듯 건조해지던 나는 한 순간 갑자기 여행을 결심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도공 이삼평비를 볼 수 있었지만, 점심을 먹고 다케오로 가는 기차를 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 다시 마을의 시내로 향했다.
도자기로 유명한 아리타 마을에는 아름다운 도자기 그릇에 담긴 정식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 찾아간 <갤러리 아리타>.
도중에 몇 번이나 방향을 잃어 또 여러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길을 알던 모르던 친절하게 안내해주었고, 그 따뜻함이 묻어나와 길을 잃어도 좋았다.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니 깜짝 놀랄만큼 많은 찻잔이 온 벽면에 가득 채워져있었다. 하나같이 다른 모양과 무늬, 색감으로 눈이 즐겁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렸다.
안내받은 자리에 앉으니 따뜻한 차와 시원한 차를 각기 다른 잔에 내주었는데 그 세심함에 한 번 , 예쁜 잔에 또 한 번 감명을 받았다.
내가 궁금했던 도자기 정식은 아쉽게도 마침 재료가 떨어져 다른 메뉴를 주문해야했고, 고민끝에 사가 여행 정보 카톡방에서 누군가 추천해준 '야끼카레' 를 골라보았다.
야끼카레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고슬고슬한 밥 위에 익숙하지만 고급스러운 소고기 카레와 계란 반숙, 치즈.
맛있게 한 그릇 싹싹 비우고 나면 벽면 가득한 찻잔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게 한 뒤 그 잔에 커피를 준다.
식사하는 내내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찻잔을 골랐고, 내가 좋아하는 색감의 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로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마쳤다.
갤러리에 있는 다른 도자기들을 조금 구경한 뒤 두번째 숙소가 있는 다케오로 가기 위해 다시 기차역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