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도시 포카라 두 달 살이
포카라에 온 이후로 매일 아침마다 레이크사이드에서 조깅을 한다. 몇 달째 비가 내리지 않아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보기 어려운데, 이 날은 평소보다 날씨가 화창해 달리기 좋았다. 가끔은 멀리 빼꼼 얼굴을 내민 설산도 볼 수 있다.
달리기를 하고 나면 방에 올라가 샤워와 빨래를 하고 1층으로 내려와 다 함께 아침을 먹는다. 장기 투숙자들이 많아 알아서 척척 반찬을 나누고 여기저기로 옮겨 나른다. 배부르게 먹고 나면 또 자연스럽게 함께 커피를 타마시고, 햇볕을 쬐면서 수다를 떤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 포카라는 많은 세계 여행자들이 들리는 곳이었다. 고된 여행에 지친 사람들이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따뜻한 햇살 아래 멍하니 호수를 바라보며 푹 쉬기만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에게 "오늘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물어보면 보통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갈 때에는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로 가득 차있기 마련인데, 포카라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트래킹 말고는 딱히 꼭 가봐야 할 만한 관광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유유자적 느긋하게 산책이나 다니면 충분하다.
아침 9시쯤, 트래킹을 떠나는 몇몇 사람들에게 크게 손 흔들어주며 건강히 잘 다녀오시라 인사하는 것까지가 포카라 윈드폴에서의 아침 루틴이다.
내게는 '기란'이라는 이름의 네팔인 친구가 있다. 그는 6년 전 내 트래킹 가이드로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내게 '좋은 기억'이라는 뜻을 지닌 '쌈자나(Samjhana)'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종종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사실 기란은 나와 남편이 연인이 되게 해준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그는 무척이나 기뻐하며 "그거 내 덕인 거 알지?"라고 말했다.
포카라에 도착한 날, 나는 곧바로 기란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나의 전화를 받자마자 바이크를 타고 부리나케 윈드폴로 달려와주었다. 서로 환하게 웃으며 반가운 포옹을 나눈 우리는, 그날 함께 길고 긴 저녁식사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이후로도 종종 기란은 나에게 연락을 해,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주었다. 논문을 위해 많은 인터뷰 대상자들을 만나야 하는 나에게 기란은 아주 고마운 조력자이다. 최근 나는 그의 삼촌인 '람'씨와도 무척 가까워졌는데, 그가 운영하는 서점 건물 옥상에서의 소박한 잔치에도 벌써 여러 번 초대받았다.
그들은 직접 염소를 잡아 고기를 손질하고, 요리를 해 나누어 먹었다. 가볍게 술을 곁들인 잔치에서 나는 람씨의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매번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네팔인들은 정이 많다. 몇 마디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들은 나를 '가족'이라 부른다.
"람 다이(네팔에서 손위 남성을 부를 때 쓰는 표현)! 나마스떼!"
"버이니(여동생을 뜻하는 네팔어)! 웰컴! 하우 아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