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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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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jae Lee Jun 09. 2019

배트맨과 니체

다크 나이트에서 니체의 철학을 접하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와 각 인물들의 선택과 행동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철학적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따라서 영화의 스포일러와 주관적이고 미숙한 해석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이에 유의하며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2005년 배트맨 비긴즈를 시작으로 2008년 다크 나이트, 그리고 2012년에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완결된 영화 시리즈이다. 이 트릴로지는 어벤저스 시리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히어로 영화하면 떠오르는 1순위의 대명사 이기도 했다. 더욱이 어벤저스가 수익, 흥행 면서 역사에 없을 만큼 정점을 찍은 지금도, 영화의 완성도로 비교하면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에 손을 들어주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필자도 마블 영화의  크나큰 팬이지만, 아직도 다크 나이트를 최고의 히어로 영화로 뽑는다.

    배트맨 비긴즈부터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어려서 부모님을 강도에게 잃고, 전 세계를 방황하다 듀카드를 만나 그의 지도로 강력한 힘을 얻는다. 하지만 배트맨의 아이콘인 '불살 주의'를 보여주며 듀카드가 데려온 범법자를 처형하기를 거부했고, 그와의 대립 각을 세우게 된다. 고담 도시로 돌아온 브루스는 낮에는 바람둥이 재벌 2세로, 그리고 밤에는 '배트맨'이 돼서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지내게 된다. 하지만 듀카드가 고담 도시를 전복시키려 하고, 배트맨은 그것을 막으려 격전을 벌이게 된다. 종국에는 배트맨이 승리하게 되고, 영화는 배트맨이 고든 경장으로부터 조커의 카드를 받아 들고 고담 빌딩 사이를 날아가는 장면에서 끝난다.

    다음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경찰은 암묵적으로 배트맨에게 협조하고 배트맨은 새로운 검사 하비 덴트를 자기를 대체해 줄 정의의 백기사로 생각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다. 마피아들은 배트맨을 두려워하여 점점 활동 반경이 줄어들게 되고, 그 틈을 영화의 메인 악당인 조커가 비집고 들어온다. 마피아들의 지원을 뒤에 업고 조커는 배트맨과 고담 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배트맨과 하비 덴트, 그리고 경찰은 그에 대항하지만 결국 배트맨과 덴트가 사랑하던 레이철을 죽게 만들고, 하비 덴트는 조커에 의해 악당 '투페이스'로 타락한다. 배트맨은 조커를 잡는 데 성공했지만, 타락한 하비 덴트를 구하지 못하고 죽는 것을 지켜만 보게 된다. 죽기 전까지 경찰을 비롯한 사람들을 죽인 하비 덴트였지만 배트맨은 사람들이 하비 덴트에게 걸었던 희망을 꺼뜨릴 수 없어 자신이 그 죄를 대신 뒤집어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영화는 경찰에 쫓기는 배트모빌을 뒤로한 채 끝이 난다.

    시리즈의 마지막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편으로부터 7년 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트맨은 악당이 되어 도시에서 잠적했지만, 고담에서 하비 덴트를 기린 하비 덴트 법으로 범죄자들의 가석방을 금지시키며 평화를 유지한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악이 일어나 고담을 파괴시키려 들고 배트맨은 다시 나타나 도시를 구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노쇠햐진 몸은 강력한 악당을 이기기에 무리였고, 패배 후 폐인이 된 상태로 머나먼 외지의 구덩이 속 감옥에 갇히게 된다. 허리가 부러진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그는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워 탈출하고 고담에서 경찰들과 함께 도시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으로 핵폭탄을 도시에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그는 배트모빌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 바다 위에서 폭파와 함께 영원히 잠적하게 된다. 배트맨은 다시 브루스 웨인으로 돌아와 새 연인과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고, 고담은 배트맨을 기리며 계속해서 도시의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하기로 다짐한다.

    위의 세 영화의 줄거리를 읽어보면,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영웅의 탄생과 각성, 그리고 숭고한 희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기본 플롯만 살펴본다면 영웅이 탄생하고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성숙해지고 마지막에 도시를 구해내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그저 흔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히어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영화 속에 들어있는 여러 가지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요소들을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한 점을 높게 평가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시리즈의 시발점이다. 불완전하고 미숙하지만 동기가 타당하고 능력이 충분한 영웅의 탄생을 무탈하게 보여준다. 다크 나이트는 이 시리즈의 모든 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미숙했던 영웅을 한 단계 더 각성시키고 평면적인 영웅상에서 보다 더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영웅으로 표현해 내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초반에 영웅의 노쇠화와 추락을, 그리고 후반에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잘 보여 주었다. 배트맨 비긴즈는 시리즈의 시작을 잘 끊었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기대치가 높았던 시리즈의 완결을 잘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좋게 평가해 주고 싶다. 하지만 시리즈에서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다크 나이트를 뽑고 싶다.

    다크 나이트는 2008년에 개봉하여 전 세계에 크나큰 반향과 충격을 준 영화이다. 이전 히어로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세계 최초로 아이맥스 카메라를 상업영화에 사용한 점, 그리고 조커로 열연한 히스 레저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많은 점에서 이슈가 되었던 영화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다크 나이트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있는 철학적 면모를 꼽고 싶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배트맨은 고담의 평화를 위해 분투하는 영웅이지만 자경대가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까지 가지고 있는 양면적 모습의 흑기사이다. 배트맨이 유명해지자, 시민들은 그를 따라 배트맨 코스프레를 하고 자경단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배트맨이 총기를 사용하는 그들을 붙잡아 놓았을 때, "우리가 너랑 다른 게 뭐지?"라는 자경단들의 질문에 배트맨은 "나는 스키마스크 같은 거 쓰지 않아"라고 농담 식으로 넘기며 떠난다. 하지만 그 질문은 배트맨이 가진 불안정성과 한계를 보여준다. 배트맨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자신과 달리 법 테두리 안에서 범죄자들을 처벌하고 있는 하비 덴트라는 백기사의 존재에 집착한다. 

배트맨만큼이나 도시를 위했던 백기사

    백기사 하비 덴트는 자기의 운은 자기가 만든다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정의를 위해 일했던 고담의 능력 있는 검사이다. 법정에서 범죄자가 총으로 저격하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에, 배트맨이 사랑했던 레이철을 연인으로 두고 있는, 배트맨이 진정으로 되고 싶어 했던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과 의로운 경찰 고든의 노력은 한 미치광이에 의해서 물거품이 되고 만다. 자신을 혼돈의 대행자라고 칭하는 광대 조커는 배트맨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그저 마피아 말단들을 괴롭히며 미미한 존재로 있었다. 하지만 배트맨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그의 존재감도 더 커지게 된다. 물질적 욕구가 충만하고 잃을 것이 많았던 마피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배트맨에게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반대로 아무런 물욕이 없고 잃을 것도 없었던 조커는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오히려 배트맨이 조커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이 왔다.

 

임팩트가 엄청났었던 조커의 첫 등장 씬

    조커의 첫 등장부터 이 영화는 니체의 사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니체가 가지고 있던 초인과 허무주의 사상을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은행을 약탈하는 동시에, 자신의 동료들을 하나씩 죽이던 조커를 마피아 소속이자 은행 경호원인 직원은 비웃는다. "우리 시대에는 범죄자에게도 낭만이 있었지, 명예, 존중. 너는 무엇을 가지고 있지?"라고 일갈하는 그에게 조커는 얘기한다.  "너를 죽이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널 더 이상하게 만들 뿐이야". 니체가 말한 유명한 원문에서 "강하게"를 "이상하게"로 뒤틀어 말한 그의 이야기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일반 사람들은 어떤 역경과 상황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더 굳건하고 강한 사람을 발전하고자 한다. 하지만 조커는 그런 목표나 의식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쳐오든 그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향으로 점점 변화해 갈 뿐이다.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니체

    조커는 니체가 말한 허무주의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를 담당하고 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사회가 규정한 그 어떤 목적이나 가치, 그리고 의미들을 부정한다. 조커 또한 그러하다. 마피아에게 대가를 받고 임무를 완수했지만, 그 대가마저 무시하고 불태워 버린 후에 오히려 그것을 아까워하는 마피아들을 조롱한다. 어느 면에서는 조커 또한 니체의 초인에 걸맞은 캐릭터처럼 보일 수 있다. 니체의 저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오는 초인은 모든 사회적 가치와 도덕성을 부수고 새롭게 자신만의 것들을 구축한다. 조커도 고담 사회를 대상으로 모든 규범을 깨뜨리고 휘저어 놓았다. 하지만 그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이 될 수 없다. 이유인즉, 조커는 사회를 혼돈에 휩싸이는 것 만을 추구할 뿐, 그 이후에 자신만의 정돈된 규범을 세울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비 덴트에게 말했듯이 그는 계획이 없이 그저 차를 쫓는 개와 같다. 차를 따라잡은 후에는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계획도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가 저지른 일이 미치는 여파와 같은 건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조커는 그저 아무런 고민 없이 바로 앞의 행동으로 옮길 뿐이다.

    취조실에 있을 때 조커는 배트맨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사회가 허락해주는 선에서만 항상 올바르게 행동한다고. 다른 장면인 병원에서는 하비 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광기란 중력과도 같아서 그저 조금의 손짓 만으로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조커는 자신이 혼돈의 대행자이며 혼돈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공평함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어째서 혼돈이 공평하다고 믿고 있을까? 왜냐하면 아무것도 계획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는 승리나 패배할 확률이 50:50 이기 때문이다. 이 혼돈의 공평함은 덴트가 가지고 있는 행운의 동전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운은 스스로 만든다"라는 신념을 가졌던 하비 덴트는 양면이 똑같은 동전을 사용하면서 항상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신념에도 자신의 연인 레이철을 지켜내지 못했고, 결국 조커의 현혹에 타락하고 만다. 그 후 한쪽 면이 타버린 동전을 가지고 공평함을 내세우며, 동전 던지기로 레이철의 죽음에 연루됐던 사람들의 운명을 심판하고 다닌다.

    이렇듯이 조커는 자신이 보기에 진실되고 무결해 보이는 것들을 무너뜨리고 타락시키려 든다. 그는 돈이나 사람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그의 가늠할 수 없는 혼돈 성은 자신의 얼굴에 큰 흉터가 생긴 이유를 말할 때마다 뒤바뀌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불살 주의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자라도 일단 잡고 나서 법의 심판을 받도록 경찰에게 인도한다. 조커는 바로 그 규칙을 무너뜨리고자 영화 내내 배트맨을 유혹하고, 공격한다. 만약 배트맨이 자신이 정한 선을 넘는 순간, 그의 인격은 무너져버릴 것이라고 조커는 생각한다. 마치 하비 덴트가 무너져버리며 투페이스가 되었듯이.

    조커는 선과 악에 뚜렷한 경계선이 없다고 믿으며, 배트맨과 자신이 결국 동질의 존재 임을 설파한다. 배트맨이 가징 강한 선과 자신이 가진 강한 악 사이에서는 절대 결판이 날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만들고 의지하는 관계라는 말이다. 

    니체의 저서 심연의 저편에서 그는 말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그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조커를 비롯한 고담 도시의 마피아들과 싸우던 하비 덴트는 결국 그들처럼 심연으로 빠져 들어갔지만, 배트맨은 끝까지 그 유혹을 이겨내고 자신의 규칙을 지킨 상태에서 도시를 구해낸다.

    하비 덴트가 빌런 투페이스로 타락한 후, 대치 상황에서 추락 후 사망했을 때, 배트맨은 조커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거의 성공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 고담시 최고의 백기사 하비 덴트는 존재하지 않고 살인자 투페이스만이 남았다. 시민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도시에 더 이상의 정의는 없다고 믿을 것이고, 그나마 도시가 붙잡고 있던 최소한의 도덕성마저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 상황에서 배트맨은 결단을 내린다. 투페이스가 저질렀던 모든 살인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고 그를 순결한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투페이스는 백기사 하비 덴트인 채로 도시를 구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고, 시민들은 그를 본받아 도시의 악과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이다. 이렇게 보면, 배트맨은 자기 스스로 자신이 정한 가장 중요한 규칙을 깨뜨린 것이다. 실제로 살인을 행하지 않았지만, 사회가 그렇게 간주하게 되었고, 배트맨이 대표하던 고결한 영웅적 존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장면에서 나는 배트맨이 진정한 히어로, 다크 나이트이자 니체가 이야기하는 초인이 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믿고 행해왔던 기존의 가치들을 져버리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초인.

    니체는 초인이 되는 과정이 세 단계로 나뉘어 있다고 말한다.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 낙타는 타인의 삶을 사는 존재이다. 즉, 사회가 정한 굴레 안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낙타는 그중 가장 무거운 것을 견뎌내고자 한다. 니체가 말한다. "무엇이 가장 무거운 것인가? 내가 그것을 등에 짐으로써 나의 강인함을 확인하고 기뻐할 것이다." 낙타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스스로를 시험하고, 그것의 성취를 기뻐한다. 낙타가 나아가는 정신은 당위의 정신이며, 이 세상이 종용하는 도덕적 가치를 믿고 따르는 것이다. 사자는 거기서 나아가 다른 선택을 내린다. 사자는 자유정신을 의미한다. 기존의 가치나 관습, 규범과 같은 것들을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가치를 위한 부정이자 파괴이다. 진정한 본인의 의지는 타인에 의해 생성되지 않는다. 완전한 본인의 의지를 가졌을 때, 사자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간다. 마지막 단계인 어린아이는 순진무구하며, 새로운 시작,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을 의미한다.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순수한 바탕에서만이 진정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경외를 잃지 않고, 기존의 낡은 것들을 부정하고,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존재를 뜻한다.

    영화 초반의 배트맨을 보면 그는 니체의 낙타와도 같다. 도시의 수호자로서 고담의 범죄자들을 처단하지만 그 당위성은 사회가 정한 규범에서 나온다. 조커와 대결을 진행하면서 배트맨은 니체의 사자처럼 기존에 자신이 가졌던 규범이나 규칙을 깨뜨린다. 한 예로 그는 조커의 행방을 알기 위해 도시의 모든 통신기기를 해킹하고 도청한다. 이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무거운 중죄지만 배트맨은 개의치 않는다. 조커의 위치를 알아낸 후에 그는 그 장비를 미련 없이 파괴시킨다. 보통의 영웅이라면 악을 잡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 틀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배트맨은 니체가 말하는 어린아이로 발전하여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투 페이스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상징성과 고결함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 자기가 그렇게 혐오하던 범죄자의 신분으로 전락해서 온 도시에서 쫓기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럼으로써 그는 도시를 새롭고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듯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배트맨을 1차원 적인 영웅에서 고뇌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잘 보여주었다. 다크 나이트 속에서 담겨 있던 철학적 메시지들은 그저 유치한 히어로 영화에서 주는 교훈이라고 치부하기엔 아쉬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영화 안에 녹아들어있는 메시지들을 각자의 지식과 견해로 해석해 보는 것도 소소하지만 재밌는 활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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