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맛의 색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인숙 Jul 27. 2019

힘을 내요 슈퍼파워 -엄마의 보양식

경상남도식 장어국

이야 임마 힘 윽수로 좋네~ 그래 이런 놈으로 무야제


저 구수한 사투리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엄마. 나의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이다.

공장 현장일을 해서 땅땅하고 다부진 몸을 갖고 있는 아빠와, 키 160이 채 안되는 키에 마른 몸을 가진 

엄마 사이에서 나는 태어났다. 

목소리 크고 힘 센 아부지에 비해 움직임이 크지 않고 작은 목소리를 지녔던 엄마. 


그런 우리 엄마가, 유독 슈퍼우먼 같은 힘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바로 요리를 할 때. 특히 여름이 되어 ‘짱어국’(장어국)을 ‘한다라이’(한가득) 끓일 때이다.

흔히 장어는 구워 먹곤 한다. 하지만 마산에선 구워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으로도 끓여 먹는다. 

근처에 어시장이 있어 펄떡거리는 생선들이 가득하기에 여러가지 조리법으로 발달한 걸까?

특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 되면 엄마는 생으로 사와야 비리지 않다며 살아있는 장어를 가득 사오곤 했다.


그날도 여름이었다. 여느때와 비슷한 날 같았지만, 뭔가 달랐던 바로 그 날.

펄떡이는 장어를 사온 것 까지는 같았고, 커다란 솥에 물을 붓고, 깨끗이 씻은 장어들을 입수시킨 후 불을 켠 것 까지도 똑같았다. 

어린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식탁에 앉아 있었다. 

물끓는 소리가 조금씩 나고, 여느때처럼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장어들은 솥안에서 엎치락 뒤치락 하듯 냄비가 흔들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뚜껑이 들썩 들썩 하더니 장어가 솥 뚜껑을 머리로 박차고 솟아 올라 부엌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건. 

어린 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 올라서서 소리만 질러댔다. 

그러자 엄마는 침착한 얼굴로, 아니 오히려 기분 좋다는 듯이

이야 임마 힘 윽수로 좋네~ 그래 이런 놈으로 무야제
(해석:이야 힘이 정말 좋구나~그래 이런 놈으로 먹어야지)



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며 장어를 맨 손으로 집어서 다시 솥안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다시는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듯이 장어가 튀어올라오지 않게 뚜껑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날렵하게 바닥의 장어를 집어 다시 잽싸게 솥 안으로 던져넣는 엄마는 마치 한명의 킬러와도 같았다. 

솥뚜껑을 꽉 누르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마치 이런 포효가 들려오는 듯 했다. 

“니 놈이 아무리 힘세봐라! 우리 가족 보양식밖에 안되제!”


그 순간의 광경이 어찌나 강렬했는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장어국을 끓이는 과정은 꽤나 길어서, 어린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과정을 채 지켜보지 않고 방안에 들어가 TV만화를 보기 일쑤였지만 그때는 뭔가 신기해서 엄마가 요리하는 과정을 간간이 계속 지켜 보았다.


1시간 정도 푹 끓이면 장어가 야들야들해진다. 통으로 삶아냈기 때문에 이후 엄마는 뼈를 몇번이나 걸러 냈고, 살이 뽀얗게 우러난 진짜배기 장어물에 배추 시래기를 넣고 다시 또 국을 끓였다.

몇시간이 넘게 솥 앞에서 땀이 송글 송글 맺혀가며 고생해야 하는 장어국.

그렇게 고생한 장어국은 그날 저녁 우리 집 밥상에 올라왔다.

사실 나는 그 전까지 장어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번 끓이면 그야말로 한다라이(한가득) 끓이기 때문에, 몇일동안이나 장어국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만은 엄마를 향한 경외심 때문일까. 아무말 없이 조용히 국을 한숟갈 떠서 삼켰다. 

아빠도 그날 따라 유독 맛있게 국을 먹었다.


“오늘따라 국이 맛나네. 장어 좋은거로 했나보제?”

“그래, 오늘 장어는 힘이 윽수로 세더라. 여보 많이 드소”


다소곳하게 말하는 엄마. 그 모습은 탈출한 장어를 맨손으로 집어 들어 다시 솥안으로 던져넣었던 그 카리스마있는 때와는 또 달랐다.


스무살이 되어 나는 윗 쪽으로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집을 떠나 자취를 하게 되었다. 이후 엄마의 요리와는 멀어졌다. 윗지방의 보양식은 삼계탕이었지만, 내게 여름의 보양식은 엄마의 ‘짱어국’ 이었고 나는 간간이 그 맛을 그리워하곤 했다.

어릴 땐 몰랐지만, 내가 먹던 그 장어국은 ‘경상도식 장어국’ 이었고, 거기에 엄마의 노하우가 더해진 맛이었기에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음식점에선 먹을 수 없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의 엄마 아빠는 경상도 사람답게 무뚝뚝한 사람들이었다. 어릴 때 따뜻한 포옹,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점이 늘 아쉬웠고 사랑에 목말랐다. 하지만 엄마의 장어국을 돌이켜보면 그 오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요리를 한 그 모든 순간들에 사랑이 있지 않았나, 싶다. 손질되지 않은 펄떡이는 살아있는 장어를 사와 힘들게 요리를 한 것처럼, 가족이 좀더 건강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엄마는 그 일념하나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우직한 방식으로 요리를 하곤 했다.

힘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엄마가 유일하게 힘을 쓰는 순간이 바로 요리를 할 때. 지지고 볶고 굽고 삶아 우리 가족의 밥상에 올라온 그 모든 음식들 속에,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의 ‘사랑’ 이 깃들어 있었던게 아닐까.


그리고 나는 그런 요리들을 먹고 자라 어른이 되었다.

날씨가 더워지고 땀이 나는 여름이 되면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어릴 때 먹던 장어국의 맛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내가 어린시절 먹어왔던 그 장어국이 내 몸에 새겨져 남아 있는 것이리라.

요리의 힘은 이토록 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엄마의 사랑도 그만큼 세다. 

엄마가 내게 전해준 여름 보양식의 ‘슈퍼파워’ 는 어쩌면 지금도 내가 험난한 세상을 버텨나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남아있지 않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맛의 색깔]사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