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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곱슬머리앤 Jan 03. 2022

신발을 벗으면 눈물이 나올까 봐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전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일 년 동안 더 자고 싶은 아침과 더 놀고 싶은 밤들을 보낸 아이가 대견하여 겨울방학 며칠 만이라도 즐겁게 보내라고 준비한 여행이었다.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자고 일어난 아이는 매일 아침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서  “우리 오늘 어디 가요?” 하고 물었다. 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장난감 카메라로 한옥마을을 찰칵찰칵 찍으며 뿌듯해하고, 카페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내키는 대로 달리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다 배부르게 먹고 차에 타면 다르랑 다르랑 코를 골며 잠들었다. 밤이면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앉아 좋아하는 인형을 끌어안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실컷 봤다. 매일매일 신나고 재미있다고 새물새물 웃던 아이에게 근심이 생긴 건 마지막 날이었다. 


차 안에서도 연신 집에 안 가고 싶다던 아이는 집 앞에 오자 울먹울먹 하더니 신발을 벗자마자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집에 오기 싫을 정도로 즐거운 여행이었다니 밤마다 머리 맞대고 준비한 엄마, 아빠로서는 대단히 영광이지만 이렇게 울 것까진 없는데.

“여행이 너무너무 좋아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고 물었더니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신발을 벗으면 여행이 끝나 버릴 것 같았구나?” 

아예 엄마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하는 아이를 보며, 어쩌면 아이는 여행의 즐거움을 신발을 벗으면 꿈처럼 사라지는 마법같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아이의 머리카락을 오래오래 쓰다듬어 주면서 이 어린이가 긴 여행 끝에 집에 돌아오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으려면 앞으로 몇 번의 여행이 더 있어야 할까 가늠해 보았다. 


우리가 좀 더 오래, 좀 더 멀리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 현관문을 열고 무거운 가방과 함께 마음을 푹 내려놓게 되는 그런 여행, 빨랫감을 잔뜩 모아 세탁기에 털어 넣고 문을 닫는 순간 가장 큰 포만감이 밀려오는 그런 여행을 셀 수 없이 많이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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