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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gistory Apr 29. 2016

전투와 전쟁, 그리고 지옥문

창업과 이직에 대한 간접 경험

# 전쟁1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디자이너1이 몇 달 전 창업했다. 기존에 하던 유사사업의 형태가 아닌-물론 유사사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온라인 중심이 아닌 오프라인 중심의 회사를 차렸다.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었고, 단기와 중기 그리고 장기의 목표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합정동에 아담한 사무실도 얻었고, 몇 몇 필요한 장비와 인테리어도 세팅을 마무리할 즈음에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나러 가 보기도 했다. 며칠 전 그는,

매출이 0에서 만원이라도 버는 날이 오겠죠.


10년 가까이 디자인을 하면서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로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던 친구이고, 디자인 보다는 사실상 조금 더 다양한 안목을 가진 친구라 그의 결정을 불안해 했지만 응원하고 있다. 그는 이제 다른 누군가의 직원일 때 치뤘던 크고 작은 전투들 보다 직접 모든 것들 다 챙겨야 하는 전쟁을 몇 달 째 치르고 있다. 언제나처럼 그의 목소리를 밝고 힘이 있었지만, 전투가 아닌 전쟁을 매일 치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수 년을 함께 전투를 매일 치르다싶이하고 전투후에 얻게 될 꿈과 희망을 이야기했던 친구였는데, 그는 이제 매일 전혀 다른 세상에서 커다란 전쟁을 치르고 있다. 


# 전쟁2

와이프의 동기이자 후배인 디자이너2가 역시 몇 달 전 창업했다. 온라인 디자이너로써 갖는 한계를 직접 체험했고, 그래봐야 5~6년 정도의 경험이지만, 그 역시도 조금은 다른 분야에서, 다른 의미에서의 회사를 차렸다. 직접 물건을 떼오고, 가격을 고민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사진을 찍고, 모델을 섭외하고, 로케이션을 선정하고, 주변 가까운 지인에게서부터 홍보를 시작한지 이제 한 달이 조금 지났다고 한다. 그가 치르는 매일의 전투는 또 달라 보였다. 모니터를 통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또는 사용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에 그 일은 어찌 보면 그 다음 문제로 보인다. 생전 처음 만나는 환경에서의 사람들과 섞이며 흥정을 해야 하고,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는 제품을 집에 쌓아두고, 또 잘 팔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보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뭐라고 힘주어 딱 응원해 줄 말이 많지가 않았다. 


# 전쟁3

9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애정과 애증 그 중간 어딘가에 내가 머무를 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과 경험들, 그리고 못다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하지만,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고, 있지만, 4달 밖에 되지 않은 애기가 있지만, 나는 ‘회사’와 ‘조직’이 주는 테두리를 벗어났고, 앞으로 어떤 전투와 전쟁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으로 나왔다. 이 길이 지옥문일지 조차 감이 없을만큼 나는 한 곳에 꽤 오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제 나는 무엇으로 살아갈까. 이제 ‘우리’로 기억되는 테두리는 어떻게 될까. 그래도 나에게 주는 격려. 그동안 수고했어.


참 오랜만에 받아본 편지&쪽지. 고맙습니다.


* 더 많은 이야기 읽기 : http://www.sig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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