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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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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gistory Sep 01. 2021

우리의 미니미가 곧 나온다.

이루 말하기 어려운 설레이는 감정에 휩싸였다.

와이프가 입원을 했다. 원래 오전에 예정 진료가 있던 날이었지만, ‘이슬’이 비춰졌다는 정황으로 조만간 뽈링이가 태어날 것을 대비해서 입원하기로 결정. 입원 수속을 밟고, 병원복으로 갈아입은 와이프를 보면서 아직은 어떤 실감이 나지 않고, 그저 아직 와이프가 건강하게 웃고, 살랑살랑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어디 휴가를 나온 것 같은 여유로움만 느껴졌다.


한참 배가 고플텐데, 진료 때문에 식사를 거른 와이프를 뒤로 하고 회사에 들러, 집에 들러 짐을 챙기고 나설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아빠가 된다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다만, 병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서 뽈링이를 막 낳은 와이프에게 머리를 쓰다 듬어 주면서, 너무 고생했어. 와이프. 하는 고마운 마음과 표현을 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순간 뭐랄까. 이루 말하기 어려운 설레이는 감정에 잠깐 휩싸였다. 와이프를 병원에 눕히고, 편하게 집에서 자라는 와이프를 뒤로하고, 차 시동을 거는 순간, 함께 있을걸 하는 후회와, 여전히 즐겁게 웃으며 뽈링이를 기다리던 와이프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마음이 더 불편했다.


내일이면, 혹은 며칠 뒤면 우리의 DNA를 가진 아기를 만난다. 평생을 엄마라는 가족 밖에 모르고 살았던 나였는데, 오히려 결혼이라는 절차는 너무 즐겁게 알콩달콩 해냈고, 어느새 나는 우리의 아기를 기다리며 새로운 가족의 테두리를 다시 만들고 있다. 10개월 가까이 뽈링이를 배에 안고 지내던 와이프도 너무 안쓰럽고, 대단하고, 미안했는데, 막상 이제 우리의 아기를 만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와이프를 보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는 다른 애착이 생기는 것은 이제 살아가는 것이라는 의미를 단순히 직장을 다니고, 엄마와 아들, 지인들에 둘러쌓인 삶만 살다가 이제서야 또 다른 삶을 직접 느끼게 하는 때가 온 것일까. 지난 10개월은 와이프의 배속에 있는 뽈링이의 움직임에 매일 놀랐고, 심장 소리에 놀라고, 우리의 피와 살과 뼈를 닮아서 나올거라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것들을 내가 직접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시간대에 느끼고 있다는 것에 놀랐으며, 생명이라는 신비로움에 여전히 놀라고 있다.

‘뽈링이 낳으면 뽈링이가 내 뱃속에서 있던 느낌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 아쉬울 것 같아…’

와이프의 서운함 섞인 설레임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들어 있던 말. 괜찮아. 괜찮아. 우리는 이제 곧 더 큰 설레임과 행복을 느끼며 살거야. 우리 와이프야. 고마워. 많이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하며 살자. 이제는 뽈링이와 함께 말야. 고마워.


July 31, 2015 /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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