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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Nov 03. 2023

책 읽는 이웃

나는 결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슨 책이냐고 묻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책이 그 사람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와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현실에서 거의 만난 적 없음) 그 책이 어땠는지 질문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반대로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그 책 재밌죠?"하면 그 사람이 뇌리에 인상 깊게 박힌다. 


내가 아랫집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건 재작년의 초여름, 그 여자가 우리 빌라 정원에서 혼자 책을 보고 있던 모습 때문이었다. 2층인 우리 집과 1층인 아랫집은 거의 동시에 이사를 왔다. 어느 날 내가 주방 베란다 창문을 열었는데 그 여자가 우리 빌라의 길쭉한 정원에서 나무들에 둘러싸인 채 간이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걸까? 나도 저렇게 저기에 앉아서 책을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 표지를 흘끔흘끔 살폈다. 그리고 아랫집 여자와 한번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왠지 대화가 통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랫집 여자와 말 한마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오늘 차로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와 집 주차장에 들어왔는데 약간 부스스한 긴 머리에 안경을 낀 그 여자가 보였다. 청바지에 면 셔츠, 스니커즈 차림인 여자는 자기 차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랫집 여자를 뒤로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되도록 이웃과 마주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먼저 다가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혹시 내가 이웃과 독서 모임을 하게 되는 날이 올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지금으로 봤을 땐 안 올 확률이 높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책 읽는 사람이 귀한 시대에 책 읽는 이웃이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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